[[분류:1844년 출생]][[분류:1924년 사망]][[분류:파리 출신 인물]][[분류:프랑스의 소설가]][[분류:프랑스의 시인]][[분류:노벨문학상 수상자]] [include(틀:역대 노벨문학상 수상자)] ||<-2> '''{{{+1 아나톨 프랑스}}}[br]Anatole France'''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Anatole_France_young_years.jpg|width=100%]]}}} || || '''본명''' ||프랑수아 아나톨 티보[br]François Anatole Thibault|| ||<|2> '''출생''' ||[[1844년]] [[4월 16일]]||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 ||<|2> '''사망''' ||[[1924년]] [[10월 12일]] (향년 80세)|| ||[[프랑스]] 생시르쉬르루아르|| || '''직업''' ||작가|| || '''종교''' ||[[무종교]]([[무신론]])[* “[[https://www.nndb.com/people/996/000031903/|Anatole France]],” NNDB: Tracking the entire world, 2023년 2월 28일 접속함.]|| || '''서명''' ||[[파일:Signature_Anatole_France.gif|width=150]]|| [목차] [clearfix] == 개요 == 아나톨 프랑스는 19세기 후반에 활동한 프랑스 작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일원이었고, 노벨문학상의 수상자였다. == 생애 == 농부, 하급 장교 출신이었던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딴 "프랑스 서점"의 주인이었고, 프랑스 혁명에 관한 책을 애독했다. 아나톨은 명문 고등학교인 스타니스라스에 입학했으나 학창 시절 동안 성적이 빈약했다. 테오필 고티에가 개창한 파르나스(고답파)주의 [* 순수한 시적 아름다움과 형식을 숭상하는 사조]에 영향을 받은 첫 소설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범죄"를 1881년에 출판했다. 1888년에 카바이에 부인과 연애를 시작하고, 그 감정을 로맨스 소설 붉은 백합에 담아낸다. 1908년 출판한 "펭귄섬"에서 펭귄으로 변화한 인간들을 통해 인간 본성을 해학적으로 풍자하고, 1912년에 쓴 "신들은 목마르다"는 프랑스 혁명 공포정치 동안 파리의 생활을 그려낸다. [[드레퓌스 사건]] 시절 에밀 졸라를 지지했고,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했다. 192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가 죽은 후 [[뇌]]를 꺼내서 무게를 측정했더니 겨우 1017g에 불과했다고 한다.[* 평균적인 성인 남성 뇌 무게는 약 1300~1400g이다] 이 가벼운 뇌를 가지고도 시대의 지성으로 인정받았으니 뇌의 무게와 지능에 별 연관이 없다는 사례로 꼽힌다. == 주요 저작 == 1881년, 실베스트르 보나르의 범죄 (Le crime de Sylvestre Bonard) 1893년, 붉은 백합 (Le Lys rouge) 1908년, 펭귄섬 (L'île des Penguins) 1912년, 신들은 목마르다 (Les dieux ont so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