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하위 문서, top1=쌍방울 레이더스/2군)] [include(틀:KBO 리그/과거 참가 구단)] [include(틀:쌍방울 레이더스)] ---- ||<-2>
[[파일:PKPuIYF.png|width=200]] || ||<-2> {{{#000000 {{{+1 '''쌍방울 레이더스''' }}}}}} || ||<-2> {{{#ffc81e {{{+1 '''SBW Raiders'''}}}}}} || || {{{#000000 '''창단''' }}} || [[1990년]] [[3월 31일]] || || {{{#000000 '''해체''' }}} || [[2000년]] [[1월 7일]][* 법인 청산일은 2002년 12월 31일.] || || {{{#000000 '''법인명''' }}} || ㈜쌍방울레이더스 || || {{{#000000 '''모기업''' }}} || [[쌍방울|[[파일:쌍방울 로고.svg|width=75]]]] || || {{{#000000 '''구단명''' }}} || {{{#!html 쌍방울 레이더스}}} (1990~1999) || || {{{#000000 '''연고지''' }}} || [[전라북도|[[파일:전라북도 구 휘장(1997-2009).svg|width=25]] 전라북도]] (1990~1999) || ||<|2> {{{#000000 '''홈구장''' }}} ||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10,000명),, || || [[월명 야구장]],,(12,000명),,[* [[제2 홈구장]]으로 사용했다. 현재는 [[KIA 타이거즈]]의 제2 홈구장으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2> {{{#000000 '''마스코트''' }}} || [[파일:external/s20.postimg.org/Bangwool_i.png|width=200]] || || '''방울이''' || || {{{#000000 '''워드 마크''' }}} || [[파일:쌍방울 레이더스 워드마크.svg|width=200]] || ||<-2> '''{{{#ffc81e 포스트시즌 진출}}}''' ,,{{{#ffc81e (2회)}}},, || || {{{#000000 '''플레이오프''' }}} || [[KBO 플레이오프/1996년|1996년]] || || {{{#000000 '''준플레이오프''' }}} || [[KBO 준플레이오프/1997년|1997년]] || ||<-2> '''해체 당시의 [[프런트|{{{#ffc81e 구단 프런트}}}]]''' ,,(1999년),, || || {{{#000000 '''구단주''' }}} || 이의철[* 창단 당시 구단주였던 이봉녕 쌍방울 창업주의 아들이다.][* 다만 1990~1998년에는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용일]] [[쌍방울그룹]] 부회장이 구단주 대행을 맡았다.] || || {{{#000000 '''대표이사''' }}} || 박효수 || || {{{#000000 '''단장''' }}} || 유은수 || || {{{#000000 '''감독''' }}} || [[김준환]][* 1999년 올스타전 이후 [[김성근]] 감독의 해임으로 감독 대행을 맡아 시즌을 마무리했다. 2000 시즌 감독으로 내정되었으나, 구단의 해체 후 SK 수석코치가 되어 1시즌을 보내고 해임된다.] || ||<-2> '''프랜차이즈 팀 기록''' || || '''{{{#000000 최고 승률}}}''' || '''0.573''' [br] 1997년 126경기 71승 2무 53패 || || '''{{{#000000 최저 승률}}}''' || '''0.224''' [br] 1999년 132경기 28승 7무 97패 || || '''{{{#000000 최다 승}}}''' || '''71승''' [br] 1997년 126경기 71승 2무 53패 || || '''{{{#000000 최다 패}}}''' || '''{{{#blue 97패}}}''' [br] 1999년 132경기 28승 7무 97패 || || '''{{{#000000 최다 관중}}}''' || '''265,918명''' [br] 1996년[* 경기당 평균 4,221명] || || '''{{{#000000 최소 관중}}}''' || '''{{{#blue 49,956명}}}'''[* 코로나19로 제한적 입장할 수 있던 시즌을 제외하고 KBO 역사상 가장 적은 연간 관중 수] [br] 1999년[* 경기당 평균 757명] || [목차] [clearfix] == 개요 == >'''"내가 소싯적에 쌍방울이란 팀이 있었는데 말야..."''' >'''"정말 그런 팀이 있었어요?! 설마 팀 이름을 그렇게...?"''' >---- > [[최훈]], [[프로야구 카툰]]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24530&no=300&weekday=sun|추억은 쌍방울 방울...]]’ 편 [[1991년]]부터 [[1999년]]까지 [[KBO 리그|한국프로야구]]에 참가한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 프로야구 원년 6팀 이후에 창단된 2번째 신생팀으로, 8구단 시대를 연 팀이다. 홈 구장은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이었으며 [[제2 홈구장]]은 [[군산시]] 사정동에 있는 [[월명 야구장]]이었다. 팀의 상징색은 {{{#!html 노란색}}}. [[연고지]]는 [[전라북도]] [[전주시]]. 구단이 존재할 당시만 하더라도 [[KBO 리그]]의 연고지 운영 방식은 '''광역연고제'''였다. 특정 도시로 연고지를 국한하는 '도시연고제'로 바뀐 것은 쌍방울이 해체된 후인 2000년부터다. 따라서 [[전주시]]로 연고 권역이 국한됐다기보다는 [[전라북도]] 전역이 레이더스의 연고 권역이었다고 볼 수 있다.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 외에 [[월명 야구장|군산 월명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나눠 치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전북 연고팀임에도 홈경기가 열렸던 [[전주시]]와 [[군산시]], 이들 지역과 연담화된 [[익산시]] 등 3개 도시 이외 지역에서는 [[공기(은어)|공기]] 취급 받았다. 그나마 [[부안군]], [[김제시]] 등 [[전라북도]] 북부권은 [[월명 야구장|군산]] 시리즈 때문에 나름 팬들이 몰리기라도 했지만[* 그래도 전북지역의 시장 수요 대부분이 이 지역에 거주했다. 전북 인구가 200만명선에 턱걸이하던 1990년대 중반 당시 도내 인구의 70%에 육박하는 약 140만명이 전주-완주, 익산, 군산, 김제 등 전북 북서부에 거주했다. 물론 지금도 전북 인구의 대부분은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전북 남부권인 [[고창군]], [[정읍시]], [[남원시]] 등 [[해태 타이거즈]]의 연고지인 [[광주광역시]]에 가까운 지역일수록 영향력이 약했다. 더구나 [[무진장(지명)|무진장]]으로 일컬어지는 전북 동부권은 여러 영향으로 더더욱 영향력이 약했다. 어쨌든 [[전주시|전주시민]]을 중심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1997년 외환 위기]]의 여파로 빠르게 쇠락하면서 손 쓸 새 없이 해체되었다. 또한 역대 KBO 리그 참가구단 중 현재까지 유일하게 한국시리즈 우승은 물론 정규리그 1위 경험도 없이 해체된 비운의 팀이다. == [[쌍방울 레이더스/역사|역사]]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쌍방울 레이더스/역사)] == 쌍방울의 유산 == === 주요 기록 === * 5년 연속 구단 피홈런 1위: 1991 ~ 1995년[* 한술 더 떠서 1992년에는 140피홈런, 1999년에는 '''187피홈런'''으로 한 시즌 최다 피홈런 기록도 갈아치운 전력이 있다.~~ 홈런공장~~ 이 기록은 다음해에 이 팀을 대신하여 창단된 SK가 '''195개'''란 다시 나오기 힘들 기록으로 경신했다.] * 한 시즌 최다패 기록: 97패 (28승 7무)[* 2002년에 롯데가 [[8888577|타이기록을 세웠다]].] * 역대 최소관중 기록: 54명 (1999년 10월 7일 vs 현대, 전주구장)[* 쌍방울이 치른 1999년 페넌트레이스 마지막 홈 4연전 중 (사실상) 세 번째 경기이자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경기(상세한 내용은 다음 각주에 후술). 이날 쌍방울은 2-3으로 패했는데 이 패배로 1995년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 이후 4년 만에 [[정민태]]가 '''단일시즌 선발투수 20승''' 기록을 세웠다. 참고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인한 무관중 경기를 제외하고 KBO 리그 역사상 한 경기 100명 이하의 관중이 들어온 적은 총 네 번이다.][* 쌍방울은 1999년 10월 8일 전주구장에서 LG와 경기를 치렀고 이날 7:5로 승리를 거뒀는데, 이 경기는 원래 10월 6일에 치렀어야 할 더블헤더 2차전이었다. 10월 6일 대낮에 열린 1차전 개최에는 무리가 없었지만, 저녁 시간대에 편성된 2차전이 시작되자마자 전주구장의 낡은 조명탑이 고장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경기를 일단 [[서스펜디드 게임]]으로 처리하고, LG가 다음 날인 10월 7일 잠실 롯데전이 예정되어있어서 일단 그 경기를 먼저 끝내고 다음 날인 10월 8일 다시 전주로 돌아와 6일 경기를 재개한 것이다. 그래서 공식 기록으로는 17연패 이후 6일 DH 2차전에서 1승을 거두며 연패를 끊고, 7일 마지막 경기인 현대전을 패배하며 시즌을 마무리한 것으로 남았다.] * 홈경기 최다 연승기록[* 재밌는 점은 이 기록이 원정팀들이 묵었던 전주 코아호텔의 귀신 목격담과도 관련있다는 것이다. [[쌍방울 홈 17연승의 비밀]] 문서 참조. 당시 쌍방울을 맡았던 김성근 감독은 SK의 감독을 맡던 2009년 시즌 막판과 2010년 시즌 초에도 22연승 기록을 달성한 적이 있다.]: 17연승 (1996년 8월 14일 ~ 1997년 4월 13일) * 한 시즌 최다 완봉승(영봉승 포함): 1996년 19회 * 한 시즌 최다 구원승: 1997년 44회[* 이 해에 쌍방울 불펜의 핵심이던 [[김현욱(야구)|김현욱]]이 '''구원승으로만 20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했다.] === [[연고지]] === 쌍방울 레이더스의 연고 지역이었던 [[전라북도]] 지역은 쌍방울이 창단할 당시에는 거의 연고 공백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프로야구 원년부터 쌍방울이 참가하기 전인 1989년까지 호남지역 연고는 [[해태 타이거즈]]에 할당되어 있었고 전주에서도 해태 홈경기가 분산 개최됐지만 엄연히 해태의 핵심 본거지는 [[광주광역시]]였고 [[전라북도]]는 사실상 비어있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그 빈틈을 쌍방울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쌍방울이 있었다면 [[KIA 타이거즈]]와의 [[시리즈(야구)/KBO 리그#s-3.2|호남 시리즈]]가 확고하게 자리잡아 리그의 흥행 요소가 더 많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아쉬운 점이다. 쌍방울 레이더스 말년 때는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의 시설 노후화 문제로 [[군산시]] [[월명 야구장]]에서 경기가 자주 열렸다. 그러던 것이 2000년부터는 [[월명 야구장]]에서 프로야구 경기가 한 경기도 열리지 않았다가 2001년부터 2013년까지 [[KIA 타이거즈]]의 군산 경기가 다시 열렸다. 하지만 이후 2014년부터 기아의 홈구장이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로 바뀌면서 군산 경기는 중지되며, 군산상고와 전주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1차 지명권을 갖게 된 [[NC 다이노스]]가 군산 홈경기를 유치할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1차 지명권 행사와 제2홈구장 경기는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기에 조용히 접었다. 쌍방울의 해체는 전북지역 아마야구에도 타격을 주었다. 군산상고와 전주고 모두 타 지역으로 전학하는 선수들이 속출하며[*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KBO 리그 선수 중에서 전북에서 태어났지만 타 지역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나와 타 지역 연고팀의 지명 선수로 입단한 사례가 꽤 있는데 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시점 내지는 고학년이던 시절 쌍방울이 해체되고 도시연고제 전환으로 광주 연고팀으로 한정된 해태의 우선지명도 어려워지면서 서울 등 수도권 학교로 전학을 간 이들이 많다. 대표적 사례가 군산 태생의 [[오지환]]과 전주 태생의 [[강지광]] 등이 있으며 자세한 내용은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 참조.] 야구부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그 후유증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다. 군산상고는 그나마 사정이 좀 낫지만 전주고는 아예 중학교 선수들이 전주고 야구부로 입학을 기피한 나머지 한동안 '''선수 부족으로 선수권 대회나 고교 리그에 참가조차 못할 정도'''로 심각한 흑역사를 보내야만 했다. 2010년대 들어 새로운 아마야구 팀들이 속속 창단하고 있지만 전북 지역은 정읍시와 고창군, 그것도 읍면 지역에 속한 학교에서만 창단했을 뿐[* 정읍이평중학교, [[인상고등학교 야구부|정읍인상고]], [[영선고등학교 야구부|고창영선고]] 등 3개교가 야구부 창단을 했으나 전라북도교육청과의 갈등으로 고창영선고는 2019년을 끝으로 해체되었다가 2023년부터 다시 운영을 재개했다.] 정작 전주시, 군산시, 익산시에는 단 한 팀도 창단 소식이 없다.[* 특히 익산시는 초중고팀이 전혀 없다.] === 선수 === 전주시민들에게 남겨진 추억이나 좋은 기록이든 나쁜 기록이든 범접하기 어려운 기록들도 눈여겨 볼 만하지만, 쌍방울이 야구계에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은 역시 선수들일 것이다. 비록 팀은 해체되었지만 돌격대에서 발굴(혹은 부활)한 선수들은 이적한 팀에서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며, 일부는 지도자로 변신하여 지금 이 순간에도 [[KBO 리그]]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쌍방울 선수 출신 지도자들은 현대야구에 역행하는 행보와 쌍방울 시절 구시대적 사고로 그다지 좋은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케이스가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서 우승을 선물했지만 말년에 악평을 받은 김기태. 심지어 박경완도 SK 감독 대행 시절 구단에서 장기적으로 지도자감으로 믿고 키워줬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야구에 역행하는 투수관리 및 혹사로 비판을 받았으며, [[윤재국]]도 김성근 사단에서 영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 비단 지도자뿐만 아니라 프런트에서도 [[고형욱]]과 [[송구홍]]이 부실한 선수 영입 등으로 비판받고 있다. 다만 [[김원형]]은 투수코치 시절의 평가가 무난했고, 2022년 내내 정규리그를 순탄하게 이끌어서 한국시리즈까지 통합 우승을 이뤘으니 더 지켜볼 일.] 2011년 기준, 쌍방울 출신 선수는 [[김원형]], [[박경완]], [[오상민]], [[이진영]] 이렇게 4명이 남아있었다. 그러나 2011 시즌 초에 오상민은 도박사건으로 방출되어서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났고, 2011년 시즌을 끝으로 김원형은 은퇴했다. 2013년 10월 22일 [[박경완]]이 은퇴를 선언하고 2014년 4월 5일 [[한화 이글스|한화]]와의 경기를 끝으로 은퇴를 하면서 마지막 쌍방울 선수는 이진영이 되었다. [[군산상업고등학교 야구부|군산상고]]를 [[졸업]]하고 1999년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한 [[이진영]]은 쌍방울 레이더스에 입단한 마지막 신인 선수다. 1999년 드래프트에서 [[이진영]]만 계약했고, 당시 [[쌍방울|모기업]]에서 '''계약금으로 줄 돈도 부족하여''' [[김성근]] 당시 감독이 일부 보조했다고 한다. 2018년 정규시즌이 끝난 뒤 [[10월 19일]] 이진영의 은퇴가 공식 기사화되어서 쌍방울에서 1년이라도 뛰었던 선수는 전원 추억 속으로 떠났다. 굳이 쌍방울에 지명되거나 연습생 시절을 거치고 현역으로 있는 선수를 찾자면 [[이대수]](SK 연습생)가 있었는데, 2018년 정규시즌 종료 시점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따라서 유일하게 [[박정권]](2000 지명, SK) 한 명만이 남아있었다. 박정권은 쌍방울의 지명은 받았으나 바로 [[동국대학교]]로 진학하였고, 졸업 후에는 쌍방울의 지명권을 가져간 SK에 입단하게 되었다.[* 참고로 당시 [[동국대학교 야구부]] 감독은 말년을 쌍방울에서 보냈던 [[한대화]].] 결국 2019년을 끝으로 [[박정권]]도 은퇴하면서 이제 쌍방울 출신 현역 선수는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쌍방울 레이더스/사건사고|사건사고]]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쌍방울 레이더스/사건사고)] == 선수단 == === 선수단 목록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쌍방울 레이더스/선수단)] === 등번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쌍방울 레이더스/등번호)] === 프랜차이즈 === ||
{{{#ffffff 이름}}} || {{{#ffffff 등번호}}} || {{{#ffffff 포지션}}} || {{{#ffffff 소속년도}}} || || '''[[김기태(1969)|김기태]]''' || '''10''' || 내야수 || 1991~1998 || || '''[[조규제]]''' || '''18''' || 투수 || 1991~1998 || || '''[[김원형]]''' || '''16''' || 투수 || 1991~1999 || || [[박경완]] || 28 || 포수 || 1991~1997 || || [[김기덕(1968년 6월)|김기덕]] || 30 || 투수 || 1991~1999 || || [[최태원(야구)|최태원]] || 7 || 내야수 || 1993~1999 || || [[김현욱(야구)|김현욱]] || 46 || 투수 || 1995~1998 || || [[김광림(야구)|김광림]] || 33 || 외야수 || 1994~1997, 1999 || || [[김호(야구)|김호]] || 5 || 내야수 || 1990~1999 || || [[성영재]] || 17 || 투수 || 1993~1999 || || [[조원우(야구)|조원우]] || 36 || 외야수 || 1994~1999 || || [[심성보]] || 35 || 외야수 || 1995~1999 || || [[박성기(야구)|박성기]] || 31 || 투수 || 1991~1998 || || [[박진석(야구선수)|박진석]] || 11 || 투수 || 1991~1999 || || [[김성근]] || 91 || 감독 || 1996~1999 || === [[쌍방울 레이더스 2군]]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쌍방울 레이더스/2군)] === 주요 선수 === ||
[[파일:attachment/쌍방울 레이더스/SBWRaiders2.jpg|width=100%]]|| || [[최의민|불암갑]]이 그린 리즈시절 쌍방울의 스타 선수들 || * [[강길룡]] - 1991~1993 쌍방울의 또다른 우완 선발투수. OB 베어스 트레이드 이전까지 쌍방울에서 2-3선발급 활약을 하던 선수였다. 그러나 OB 가서 항명사건에 연루되더니...[* 은퇴 후 [[경기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로 부임했으며 곽연수 감독의 퇴임 후 감독으로 승진했다. 현재는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 [[김광림(야구)|김광림]] - [[OB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출신이었으나 1994년에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고 1995년에 타격왕을 먹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1996년 미스터 올스타가 되기도 했으나, 1997 시즌 중 현대로 트레이드되어 1998년에 우승반지를 끼고 시즌 후 방출되어 다시 돌아왔다. 1999 시즌 후 은퇴. 은퇴 후 해설자로 마이크를 잡았다가 친정팀 두산 타격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해 2017년에 [[kt wiz]]의 타격코치를 지냈고 이후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있다. 지도자로서의 평은 괜찮은 편이다. * '''[[김기덕(1968년 6월)|김기덕]]''' - 김현욱, 성영재와 함께 또다른 잠수함 트로이카중 한 명. 사실 김현욱의 후덜덜한 포스에 가렸지, 쌍방울 노예의 시초는 김기덕이었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선발, 중간, 마무리 어디든 안 가리고 나와도 평균 이상은 뽑아내는 마당쇠. 2002 시즌 후 은퇴했다. 2020년 현재 [[한양대학교 야구부|한양대]] 감독. * '''[[김기태(1969)|김기태]]''' - 돌격대의 형님이자 해결사. '''왕방울.''' 쌍방울의 주장이자 팀을 대표했던 강타자. 이승엽 등장 전까지 좌타자 최다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신인 최다홈런 기록도 그의 것이다. 또한 1997년에 .344의 타율로 타격왕까지 먹은 적이 있었다. 쌍방울 부도로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도 유일하게 버틴 선수였으나, 1999년에 [[김현욱(야구)|김현욱]]과 함께 삼성에 팔려갔다가 2001년 말 [[김응용]] 감독과의 불화로 쌍방울 선수단을 계승한 [[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되어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팀의 최고참으로 활약하며 2004년 지명타자 골든 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은퇴 이후에는 지도자로 변신, [[LG 트윈스]] 감독을 맡아 팀을 10년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5년에는 [[KIA 타이거즈]] 감독으로 부임하며 고향인 광주로 돌아왔고 [[2017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며 탄탄대로를 달리는가 했지만 각종 기행과 선수 기용에 대한 안팎의 불화 등이 겹치면서 2019년 불명예 퇴진했다.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코치와 2군 감독을 거쳐 [[kt wiz]]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선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레전드임은 확실하고 레이더스에 있어서 '''최고의 스타이자 레전드'''라고 할 수 있다. * '''[[김원형]]''' - 영원한 '''어린왕자''', 돌격대의 처음이자 마지막 에이스. 최연소 [[노히트 노런]] 기록 보유. 쌍방울 레이더스 선발투수관련 각종 통산기록 1위[* 통산 최다승(70승), 최다패(73패), 최다이닝, 최다완투, 최다완봉, 최다 탈삼진 등등 여러 기록보유.] 그 후 쌍방울 선수단을 이어받은 SK에서 활동하다가 2011년 은퇴, 통산 134승 144패라는 성적을 거두었다. 은퇴 후 SK, 롯데 코치를 거쳐 2020년 [[두산 베어스]]의 투수 코치로 활동중 [[SK 와이번스]]의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기게 되었으며, [[SSG 랜더스]]의 초대 감독이 되었고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감독이 되었다. 지도자로서의 평은 보통.[* 2군 코치 시절 육성 쪽에서는 괜찮은 평을 들었으나 1군 투수 코치를 맡은 뒤에는 투수 교체 타이밍 쪽에서는 평가가 나쁜 편이다. 1군 투수코치 김원형의 경우 롯데, 두산 모두 1년차에는 괜찮으나 2년차에는 투수들이 망가져서 나쁜 평을 받았으며, 2021 시즌은 한 팀을 이끄는 감독의 포지션이 되었으니 책임이 막중하다.] '''김기태, 조규제와 더불어 레이더스의 상징성을 가진 대표적인 세 선수로 꼽힌다.''' * [[김현욱(야구)|김현욱]] - 삼성 출신 선수로 1995년 쌍방울로 이적한 뒤 1997년 구원으로만 20승...을 따냈으나 투수 부문 골든글러브는 [[이대진]](17승), MVP는 [[이승엽]](홈런 - 최다안타 - 타점)에게 빼앗겼다.[* '''만들어진 기록'''에는 상을 줄 수 없다는 기자들 사이의 불문율에 의한 것이었다. [[김영덕|비난은 순간이고 기록은 영원하다]]에 대해서 기자들은 기록은 영원해도 상은 영원히 없다라고 맞불을 놓았다.] 1999년 친정 팀인 삼성에 팔려서 돌아갔다. 그리고, 삼성에서도 혹사당하다가(...) 2005년에 무릎 부상으로 35세에 은퇴했다.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를 맡았다가 2018년부터 [[류중일]] 감독을 따라 LG 트레이너를 맡게 되었다가 류중일과 같이 물러났고 2023년부터는 [[롯데 자이언츠]]에 몸 담고 있다. * [[박성기(야구)|박성기]] - 초창기 쌍방울 암흑기 시절 좌완 에이스. 1991년부터 1994년까지 4년간 41승으로 이 기간동안 쌍방울 팀 내에서 [[박성기(야구)|박성기]]보다 더 많은 승수를 거둔 투수는 없었다.[* 이후 2년간 다소 폼이 떨어지긴 했지만 초창기 벌어들인 승수 덕택에 1996년까지는 팀 내 유일 통산 50승 이상 투수였다. 이후 김원형이 50승 돌파와 함께 꾸준한 활약으로 팀내 선발투수 관련 모든 기록 1위로 올라간다.] * [[김호(야구)|김호]] - 수비형 유격수로 1991년은 .233 11홈런 22도루를 했다. 구단 해체 이후에는 해태, 두산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2018시즌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주루코치였고 2019시즌 부터는 [[류중일]] 사단에 함류하여 [[LG 트윈스]]의 1군 수비코치를 맡았다. * '''[[박경완]]''' - '''포도대장.''' 돌격대의 안방마님. '''크보 역사상 최고의 포수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레전드'''. * [[박노준]] - 말이 필요 없는 '''선린상고의 독일병정.''' 1994년 .303에 43도루를 했다. --그리고 [[인사이드 파크 호텔|훗날...]]-- * [[석수철]] - [[성균관대]] 시절 활약으로 국가대표에 뽑히고, 계약금 1억 5천에 1996년 1차지명으로 입단한 3루수. 첫 해의 나름 쏠쏠한 성적과 근성있는 모습으로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그러나 2년 차부터 고관절 부상으로 1군 경기에 아예 나오지 못하며, 결국 데뷔 첫 해 성적이 프로 마지막 성적이 되고 말았다.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야구부|성균관대]] 코치를 거쳐서 [[군산상고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다. * [[성영재]] - 김기덕, 김현욱과 같이 잠수함 투수로 활약했던 투수, 선발로 나오든, 구원으로 나오든 든든한 투수였다. 그 뒤 쌍방울이 해체되고, SK가 창단되고도 SK에 남았지만 이호준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해태로 이적했으며, 중간에 병역비리로 구속된 일이 있고 기아, 두산, LG를 떠돌아야 했다. 그리고 마지막 현역 팀인 LG에서 은퇴하고 코치를 거쳐 LG의 [[프런트]]로 있다가 2017년 [[광주일고 야구부]] 감독을 맡았다. * [[심성보]] - '맘보'라는 별명으로 큰 인기를 얻었던 좌타 외야수이자, 타선에서는 유일하게 김기태를 받쳐 주던 또 다른 강타자. 김성근 재임 시절 포텐이 터졌지만, [[당뇨병]]으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했던 비운의 스타. 1998년 외야수 최다보살(20개)...한국판 원조 가르시아이자 '강견의 3심' 중 한 명. 나머지는 [[심재학]], [[심정수]]. 2020년 현재 [[천안북중학교]] 야구부 감독. * '''[[조규제]]''' - '''전주 특급'''. 쌍방울의 핵심 마무리. 킬인식의 감독초기시절 은근히 혹사당했다. 그 여파로 1995시즌에는 부상으로 사실상 개점휴업했고 그해 쌍방울은 초반 선두를 달리다가 역전패가 속출하며 최하위로 처졌다. 그 후에도 전주의 수호신으로써 잘 하다가 팀이 부도로 어렵던 시절 [[박경완]]과 함께 현대에 팔려갔다. 이후 2001년 SK로 재트레이드되어 2년간 있다가 2003년 현대, 2004년 KIA로 이적했고[* 2001년 [[조웅천]]과 함께 당시 신생팀이었던 SK의 전력 보강 목적으로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으나 2003 시즌을 앞두고 FA 박경완의 보상 선수로 현대 유니콘스에 돌아와 그해 우승 반지를 하나 더 끼고 KIA로 이적했다.] 거기서 은퇴했다. '''김기태'''와 함께 레이더스의 두 축이라고 할 수 있다. * [[조용호]] - 천안북일고 출신으로 빙그레에 있었다가 별 활약을 못하고 1991년 쌍방울로 트레이드 된 첫해에 .318의 좋은 타율로 활약을 했다. * [[조원우(야구)|조원우]] - '''돌격대장'''. 400경기 이상 무실책은 한국 최고 기록일 뿐더러 메이저리그 기록마저도 뛰어넘는다. 쌍방울 해체 이후 SK-한화에서도 뛰다가 은퇴 후 한화, 롯데, SK의 코치로 재직하다가 2016년 [[롯데 자이언츠]]의 감독이 되었다. 2021 시즌에는 SK-SSG의 퓨쳐스 리그 감독으로 현장에 복귀. * '''[[최태원(야구)|최태원]]''' - '''철인'''. 1009경기[* 기록 정정으로 1014경기에서 1009경기로 수정. 대주자로만 출장한 경기가 있었기 때문.] 연속출장으로 KBO에서는 이 부문 1위. 다만 1009경기 연속경기 출장 기록 중 369경기는 쌍방울의 후신 격 팀인 [[SK 와이번스]]에서 소화했다. 쌍방울 유니폼을 입은 기간으로 국한하면 1995년 4월 16일 [[무등 야구장|광주]] [[해태 타이거즈|해태]]전부터 1999년 10월 8일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전주]] [[LG 트윈스|LG]]전까지 635경기 연속 출장. 물론 635경기 연속 출장도 단일 구단 소속 연속경기 출장 기록으로는 1위다.[* 2위는 [[OB 베어스]]에서 뛰었던 [[김형석(야구)|김형석]]의 622경기, 현역 중 1위는 500+ 경기를 연속 출전한 [[황재균]].] [[삼성 라이온즈]]의 1군 수석코치를 맡았고 나름 제 몫을 했지만 감독이 바뀌면서 물러났다. 현재 지도자로써의 평가는 과거보다 굉장히 개선되어 호평을 받고 있는 중. * [[최한림]] - '''국내 최초의 좌완 사이드암.'''[* 사이드암 투수 자체가 우완일 경우 우타자에 강하기 때문에 기용되는데, 좌완 사이드 암은 우타자에게 약하다라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결국 김현욱을 상대로 트레이드 되어 삼성에서 은퇴한다. 은퇴 후 [[전라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오래 있다가 2018년부터 [[인상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있다. === 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멤버들 === * '''투수''' : [[가내영]](18) 고승환(48), [[고형욱]](41), 김경진(39), [[김기덕(1968년 6월)|김기덕]](30), [[김원형]](16), 김유진(20), [[박정현(투수)|박정현]](21), [[박주언]](28), [[박진석(야구선수)|박진석]](1), 박창현(38), [[성영재]](17), [[오상민]](34), 유현승(11), 이광섭, 이병수, [[윤형배]](31), 정명수, 최승민(66), 최정환(24) * '''포수''' : [[양용모]](26), 유환진[* 선수은퇴후 삼성 라이온즈의 불펜포수로 취직했다가 현재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불펜포수로 재직중], [[장재중]](43), 정원배(22) * '''내야수''' : 곽재성, 김상호, [[김성래]](9), [[김호(야구)|김호]](5), 박경호(2), [[송구홍]](6), [[오충원]](29), [[이근엽]](14),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12), [[이민호(1969)|이민호]](3), 이병수, [[최태원(야구)|최태원]](7) * '''외야수''' : 강민규(45), 김갑중(4), [[김광림(야구)|김광림]](33), [[동봉철]](32), 박재용(27), [[심성보]](35), [[윤재국]](8), [[이계성]](19), 이연수(37), [[이진영]](10), 장용대(50), [[조원우(야구)|조원우]](36) 얼핏 보기엔 괜찮은 멤버 같지만 [[송구홍]], [[김성래]], [[박정현(투수)|박정현]] 등 과거의 스타플레이어들은 이미 선수생활의 황혼기, [[심성보]]는 당뇨병 투병, [[조원우]]는 부상, [[이진영]]은 고졸 신인이었으며 [[김원형]]은 [[장종훈]]의 타구를 얼굴에 맞은 후 이때까지 재기 못했다. === 외국인 선수 === * [[제이크 비아노]](Jacob Viano, 미국) 당시 쌍방울이 1라운드서 지명했던 선수다. 2만 달러에 영입되어 시범경기서는 나름 잘 던졌지만, 컨트롤 문제와 팀의 사정이 겹쳐 퇴출당했다. 28경기 3승 3패 7.06(중도퇴출) * [[마이클 앤더슨]](Michael James Anderson, 미국) 2라운드서 지명된 LG 출신의 선수, 선발로 보직이 바뀌어 자신감을 드러냈으나, 최악의 팀 사정으로 인해 좋지 못한 성적을 내고 돌아갔다. 19경기 2승 9패 6.75. 1998년에는 외국인 선수를 들여오지 않았으며, 1999년에는 투수용병으로 이들을 영입했다. 다만 성적이 신통치 않아서 문제. 김성근과의 갈등관계도 한 몫을 했다. === 그 외의 선수 === * 정학원 내야수(유격수, 2루수). [[정명원]]의 동생. [[군산상업고등학교]]-[[원광대]]를 졸업하고 1990년 쌍방울 2차 1순위로 지명될 정도의 유망주였지만, 군 입대 후 복귀해서 성적이 별로여서 1995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현재 [[군산대학교]] 앞에서 식당을 운영중이다. 카운터 앞에 친형 정명원 코치와 선수시절 맞대결했던 신문기사와 군산상고 경남고 레전드매치때 기사가 붙어있기도. 가게 이름은 라이스 스토리. * 강창남 재일교포 출신의 투수로 일본명은 코야마 마사오(小山昌男)다. 그 당시 강호였던 나라현의 덴리고교를 졸업하고 1981년에 긴테쓰 버펄로즈의 드래프트 2번으로 입단했다. 통산성적은 86경기 23승 21패 4.81의 방어율을 기록하고 1992년에 같은 재일교포인 긴테츠의 황태호와 같이 쌍방울에 입단했다. 그러나 찢어지게 가난한 구단 살림으로 인해 생겨난 식사와 숙소 문제를 도저히 인간적으로 적응하지 못하겠다며 '''시즌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계약을 어기고''' 돌연 일본으로 귀국하고 말았다. 쌍방울의 흑역사 선수 중에 하나. * 류동효 [[태평양 돌핀스]]에서 이적, 쌍방울의 창단 멤버가 된 선수로 3루수가 주 포지션이었다. 선수생활 동안 특별한 성적은 남기지 못했으며 이후 롯데로 이적해 은퇴했다. [[이말년]]이 [[https://comic.naver.com/webtoon/detail.nhn?titleId=103759&no=155|딸아이 이름짓기 편]]에서 상품으로 내건 싸인볼이 이 분의 싸인볼이다. 이후 삼성 라이온즈 프런트에 합류했으며 2020년 기준 스카우터로 재직중이다. * 황태호 위의 강창남과 같은 재일교포에 같은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 출신의 투수이다. 일본명은 히야마 야스히로(檜山泰浩)다. 후쿠오카현 도스쿠고교 출신으로 1985년에 긴테쓰 버펄로즈 드래프트 1번으로 입단했는데, 그 당시 [[PL학원고등학교]]의 듀오였던 [[키요하라 카즈히로]], [[구와타 마스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특급 유망주였다.''' 그 이후 미국으로 연수를 가서 '''루키리그에서 29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게 되지만 정작 일본에서는 1군에서 뛴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긴테츠에서는 흑역사 취급당하고 있다. 어쨌든 1992년에 강창남과 같이 재일교포로서 입단하게 되지만 강창남은 시즌을 한 번도 못 뛰고 먹튀를 한 반면 황태호는 1경기 무승 무패 81.00의 기록만 달랑 남기고 6월에 퇴단하고 말았다. 일본으로 귀국한 후 운동선수 출신으로는 아주 드물게 '''법무사 시험에 패스,''' 현재는 '''와세다세미나 전임강사'''로 야구선수 때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http://www.data-max.co.jp/2010/04/1_255.html|관련 일본 기사]] == 유니폼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쌍방울 레이더스/유니폼)] == 마스코트 == ||
[[파일:external/s20.postimg.org/Bangwool_i.png|width=100%]]|| 마스코트는 방울이였다. ||
[[파일:external/www.1101.com/ball.jpg|width=100%]]|| 방울이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1992년부터는 '자빗' 이라는 토끼를 사용한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공식 마스코트였던 "배트에 탄 소년(バットに乗った少年)"의 표절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닮았다. 사실 [[야구공]] 머리의 인간형 마스코트는 1960년대부터 [[뉴욕 메츠|미스터 멧]]이나 [[신시내티 레즈|미스터 레드]] 같은 사례가 메이저리그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으므로 요미우리 마스코트 역시 완전한 오리지널 창작 캐릭터라고는 할 수 없다. ||
[[파일:VRGvINx.jpg|width=100%]]|| 구단 해체 이후 마스코트 방울이 인형탈은 [[전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 버려져 있다. 이 사진은 [[2006년]] [[3월 26일]], 어느 [[야빠]]가 전주구장을 지나가다 우연히 발견하여 [[http://sweetspot.tistory.com/20|촬영한 사진]]이다. 언뜻 보면 진짜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 같기도 해서 괜히 소름끼치기도 하다. 이 사진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3집 앨범커버에 사용되었는데, 해당 포스팅에는 이미 고인이 된 달빛요정의 사진 사용 문의 댓글이 가장 먼저 달려 있어 더욱 쓸쓸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던가? 쌍방울의 선수단을 이어받은 SK 와이번스가 창단 되고 21년 후, 야구단이 신세계로 넘어간 이후 마스코트 또한 [[http://mlbpark.donga.com/mp/b.php?p=1&b=kbotown&id=202102260052236321&select=&query=&user=&site=&reply=&source=&pos=&sig=h6jzSg2AhhTRKfX2h6j9Gg-A4hlq|비슷한 운명]]을 맞았다. == 여담 == * 음원으로 남겨진 구단 정식 응원가가 없었던 팀이다. 동시대에 있던 다른 팀들은 구단 차원에서 제작한 응원가가 한 개 이상이라도 있었지만, 무슨 사연 때문인지 쌍방울은 응원가가 따로 없었다. 다만 팬들이 관중석에서 부르던 응원가는 따로 있었는데 [[https://youtu.be/hrzwYpP04Ao|"방울 방울 방울 방울~ 쌍방울~ 쌍방울~"]][* 축구 응원가로 잘 알려진 Ole Ole Ole 노래의 음정이다.]과 [[https://www.youtube.com/watch?v=npJF95yTD60| "힘내라 힘"]]이 있었고 호남 연고의 구단답게 [[남행열차]]를 지역 연고 응원가로 쓰던 시절도 있었다.[[https://youtu.be/mGhTNBpZgcc|#]] * 레이더스를 대신하여 창단한 [[SK 와이번스]]는 당초 연고지로 서울을 원했으나, [[현대 유니콘스]] 측이 중간에 끼어드는 바람에 연고권을 54억 원에 구매하고 인천으로 입성했다. 이후 쌍방울 선수로 구성된 팀이란 이미지를 지우는 것을 최대 과제로 삼으며 '인천 SK' 문구의 강조, [[김경기]] 등 인천 연고지 시절 현대 출신 스타 선수 영입, 2002년 [[삼미 슈퍼스타즈]] 올드 유니폼 행사 등 메모리얼 이벤트를 하며 새 연고지인 인천에 정착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보여줬다[* 이는 동시에 현대의 인적 승계팀인 히어로즈와의 마찰을 일으켰다. 2008년 [[SK 와이번스]]가 '''[[태평양 돌핀스|태평양]]데이 행사를, [[넥센 히어로즈|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벌이면서''' 이 논란은 더욱 커졌다.]. SK 와이번스 창단 당시에는 쌍방울 팬덤에서 넘어온 사람들과 인천에서 새로이 팬이 된 사람들이 섞여 있었는데, 이러한 구단 분위기 속에서 옛 쌍방울 팬들은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 기존 인천 지역 팬들 외에 타 지역 팬들한테까지 집단적으로 배척을 당하면서[* 인천시민들은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 이전과 새로 생긴 [[SK 와이번스]]의 정착 때문에 혼란스러워서 옛 쌍방울 팬들까지 받아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타 팀 팬들이야 자신들과 무관한 옛 구단의 팬들과 친할 이유가 더욱 없었고...] 팀에 이어 팬들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한편 [[현대 유니콘스]] 해체 이후 재창단한 [[키움 히어로즈|히어로즈]] 역시 처음에는 현대 색을 지우고 선을 그으려고 했었다. 이에 맞춰 현대 출신 고액 연봉 베테랑들을 트레이드하려고 시도했고, 현대 시절 마지막 감독인 [[김시진]]이 아닌 이광환을 감독으로 선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트레이드는 실패했고, 또한 이광환 체제는 안정적이지 않았으며, 이러한 현대의 외면은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구 현대빠들을 흡수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으며 처참한 인기와 관중 동원에 그친다. 여기에 SK와의 정통성 경쟁 문제도 있었던 탓에 2009년부터는 전략을 바꿔 자신들의 전신격 팀인 [[현대 유니콘스]]와 [[삼미 슈퍼스타즈|과거]] [[청보 핀토스|인천]] [[태평양 돌핀스|연고 구단]] 시절의 팬들을 끌어안으려 애쓰게 된다.] 그래서 이 당시 소수의 쌍방울 골수 팬들이나 타 팀 팬들에게 배척당한 팬들은 [[KIA 타이거즈]]로 팬고이전하거나[* 여기서도 오랜 기간 동안 [[광주광역시|광주]][[전라남도|전남]] 팬들에게 경멸과 왕따를 당하며 살아야 했다. "니네 팀은 어디갔냐?", "걍 야구팬 관두지 그랬냐? 우린 니네들 필요 없어."라고 조롱을 듣는 건 흔한 일.], 지역 내 다른 스포츠팀들인 [[전북 현대 모터스|전북 현대]], 2001년부터 들어선 [[전주 KCC 이지스|전주 KCC]]로 갈아탔다. 또한 [[트라우마|이 때 왕따를 당했던 기억]] 때문에 아직도 자신들을 외면한 [[SK 와이번스|SK]], 이웃인 [[KIA 타이거즈|KIA]], 쌍방울의 주축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몰락을 앞당긴 [[현대 유니콘스|현대]](이후 히어로즈로 재창단)와 [[삼성 라이온즈|삼성]] 등의 타팀들을 원망하는 분위기가 전주 야구팬 정서에 많이 남아있다. * 요즘 야구팬들 사이에서 쌍방울은 [[SSG 랜더스]]의 정통성을 흠집내려는 핑계 내지는 옛 추억을 되살리기 위한 소재로 가끔 언급되는 것이 전부이지만, 아직도 이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많은 것 같다. 실제로 [[http://cafe.daum.net/sbwraiders|1,700명 가까운 회원이 모인 레이더스 팬클럽이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2011년]] [[7월 14일]]에 방송된 [[KBS 1TV]] 세상사는 이야기에서는 [[http://mn.kbs.co.kr/mobile/news/view.do?ncd=2324799|쌍방울 레이더스의 마지막 팬클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2012년 [[프로야구 제10구단 관련 논란|제10구단 관련 유치전]]이 벌어졌을 때도 옛 쌍방울을 기억하는 많은 시민들이 호응하여, 아직 전주에 남겨진 돌격대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KBO에서 10구단 창단 주체로 [[kt wiz|수원-KT]]의 손을 들어주면서 돌격대의 부활은 다시금 요원한 일이 되었다. 쌍방울 출신인 김기태 감독이 KIA에 부임한 이후 챔피언스 필드에 가끔씩 김기태 마킹을 한 쌍방울 유니폼을 입은 아재들이 보인다. * [[익산시|익산]] 출신의 만화가 [[이말년]][* 다만 출생지는 [[익산시|익산]]이나 실제 성장기를 보낸 곳은 [[안산시|안산]]이다.]과 [[전주시|전주]] 출신의 래퍼 [[데프콘(가수)|데프콘]]이 쌍방울 레이더스의 팬이었다고 인증한 바 있다. 특히 [[이말년]]은 같은 [[안산시]] 출신 선수 [[김광현]] 덕에 [[SK 와이번스|와이번스]]로 갈아탔지만, [[마구마구]]에서 쌍방울 올스타로 플레이를 하는 것과[* 게임 내 닉네임도 ''''복실이돌격대''''이다.] 트위터 등지에 올리는 멘션을 보면 과거 쌍방울에 대한 향수 역시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데프콘 또한 [[1박 2일/2017년#s-11|1박 2일 방송]]에서 이제는 [[SK 와이번스|SK]]의 팬임을 인증하였다. 그 밖에 [[아프리카TV]] [[KIA 타이거즈]] 편파중계 BJ [[소대수]]도 쌍방울 팬이었고, [[부안군]] 출신의 스트리머 [[셀옹]]이 [[온게임넷]] 방송 출연 당시에 쌍방울 유니폼을 입고 쌍방울 팬임었음을 인증한 바 있다. 쌍방울이 해체된 현재는 [[한화 이글스]]를 응원하고 있다고 한다. * [[KBO 올스타전|올스타전]]에는 동군 소속으로 참가했다. 사실 위치로만 따지면 서군으로 들어가는 게 타당하지만, 제7구단인 [[한화 이글스]]가 1군에 참가했을 때 팀간 전력 안배 차원에서 서군에 들어가는 바람에 쌍방울은 한 팀이 모자란 동군의 빈 자리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SK 와이번스]]가 인천을 연고로 하고 있음에도 서군이 아닌 동군에 들어간 것도 바로 이런 사정이 있어서였다. 쌍방울의 빈 자리를 채우는 팀이 SK인데 재창단 이후에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자레코]]사의 슈퍼 3D 베이스볼을 [[현대전자]]에서 현지화한 [[한국프로야구(게임)|한국프로야구 게임]]에는 이게 제대로 반영이 안 되어 있어서 쌍방울이 서군으로 나온다.[* 그 대신 한화는 동군으로 나온다.] * 같은 전라권 야구단인 [[해태 타이거즈]] 팬들에게는 아쉬움의 대상이다. 쌍방울이 창단되면서 신생팀 프리미엄으로 본래 연고지인 [[전라남도|전남]]은 물론, 과거 해태 왕조의 주축을 담당한 선수들을 대거 배출한 [[전라북도|전북]] 쪽 선수들이 대거 쌍방울로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김기태(1969)|김기태]], [[박경완]], [[조규제]], [[성영재]], [[김원형]], [[이진영]], [[정대현(1978)|정대현]] 등 본래 해태 연고지 내에서 우수한 선수들이 꾸준히 배출됐고, 비슷한 시기 연고지의 [[박재홍(야구)|박재홍]]도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지명을 거부한 사례가 있어 [[광주아재|해태빠]]들은 아쉬움에 입맛을 다셔야했다. 더욱이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선동열도 없고 이종범도 없던]] 해태 말년에 왕조의 몰락과 전력의 약화를 고스란히 실감했던 시기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전통적으로 좌타거포와 포수의 부재를 안던 해태에 "쌍방울이 창단되지 않고 그 선수들이 그대로 왔다면?"은 여전히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기있는 논쟁 거리. 기존의 [[이종범]], [[홍현우]], [[장성호]], [[이호준]]과 [[김기태(1969)|김기태]], [[박경완]] 등이 타선에 합류하고, 투수진도 만약 [[김원형]]과 [[조규제]]가 가세했다면 [[2000년]] [[현대 유니콘스|현대]]가 차지했던 위용을 해태가 그대로 흡수해 [[1980년대]] 이상의 지배적인 강팀으로 군림했을 가능성이 크다. * 소속 선수들은 쌍방울이 [[똥군기|군기가 꽤 엄격]]한 팀이었다고 회고했다. 다음은 그 증언의 일부. * [[최해식]]은 [[박동희(기자)|박동희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외야 플라이를 쳤는데 자신도 모르게 코치에게 인상을 썼다는 이유로 해당 코치에게 발로 얼굴을 맞았다고 증언했다. * [[심성보]]의 말에 따르면, 당시 쌍방울은 [[해태 타이거즈]] 다음으로 선후배 관계가 엄격했다고 한다.[* 현재는 구단이 [[KIA 타이거즈]]로 바뀌면서 구타, 똥군기 등 구시대적 문화들은 사라지고 있다. 해태 타이거즈에서부터 구타를 없앤 인물이 바로 [[이종범]].] 그 이유로 '''"초창기 쌍방울엔 [[해태 타이거즈|해태]] 출신 선배들이 많았으며, 해태 때 ‘매’로 후배들의 기강을 잡던 분들이 쌍방울이라고 조용히 있을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보단 은퇴를 앞둔 노장 선배들이 이 팀 저 팀에서 온 게 군기가 세진 가장 큰 배경이었다."'''라는 말을 했다. 오죽했으면 “고등학교 팀인 줄 알았다. 실제로 주변에서 '''‘쌍방울 고등학교’'''라고 불렀을 정도.”고 덧붙였다. *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한 [[오상민]]도 '쌍방울은 선배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어린 선수들은 숨조차 쉬기 어려운 분위기'였다고 술회했다. 선발투수 지명을 받고 트레이너실에서 마사지를 받다가[* 오상민이 받고 싶은게 아니라 트레이너가 해준 것] 지나가던 선배님한테 머리를 정말 많이 맞았고, 휴식시간에도 신참선수들은 헬스장 벤치프레스 의자에서 쉬었다고 했다. * [[1993년]] [[현대그룹]]이 야구판에 뛰어들기 위해 쌍방울을 '''400억원'''에 인수[* 결국엔 태평양 돌핀스를 470억에 인수했다.]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 역대 쌍방울 선수 출신 중 [[KBO 리그]] 1군 정식 감독을 맡았던 사람은 [[김기태(1969)|김기태]], [[조원우(야구)|조원우]], [[김원형]] 등 3명이다. [[LG 트윈스]]에서 [[6668587667|10년짜리 비밀번호]]를 종결해주고 [[KIA 타이거즈]]에 [[2017년 한국시리즈|V11]]을 안겨준 김기태는 호평과 혹평이 동시에 공존하며, 조원우는 계약 기간 중 [[롯데 자이언츠/2017년|2017년]] 한 해만 반짝 좋은 성적을 거뒀다. 김원형은 2021년 시즌이 첫 감독 시즌이며 2년 차에는 [[2022년 한국시리즈|SSG 랜더스 V5]]를 이뤄주었다. 정식 감독 외에는 [[박경완]]이 2020년 [[SK 와이번스]] 감독 대행을 맡은 적이 있지만, 성적이 워낙 좋지 못해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아마추어 지도자로는 [[한양대학교 야구부]] 감독을 맡고 있는 [[김기덕(1968년 6월)|김기덕]]이 있다. * 최해식이 술회하길 해태는 스스로 알아서 개인적으로 연습하는 문화가 배어있지만, 쌍방울은 코치 앞에서만 연습한다고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밝힌 바 있다. * 매우 어렵고 척박한 환경에 있었던 팀이었지만 선수들 간의 우애와 의리는 매우 돈독했다고 한다. 특히 어느 정도 구단의 기틀이 잡히고 성적을 내기 시작했던 1990년대 중반의 팀 컬러는 꽤 끈끈해졌는데 의리와 단결로 뭉쳐진 팀 분위기는 비극적이게도 [[1997년 외환 위기]]로 인해 와해되고 만다. 외환위기 이후 모기업 [[쌍방울그룹]] 계열사들이 부도를 맞고 구단의 살림살이도 극도로 어려워지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눈물을 머금고 [[박경완]], [[조규제]], [[김현욱(야구)|김현욱]], [[김기태(1969)|김기태]] 등 주력 선수들을 일제히 당대 최고의 부자 구단이었던 [[현대 유니콘스]]와 [[삼성 라이온즈]]에 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강제 이적을 당하는 선수 본인은 물론 선수단 전체가 매우 숙연하고 슬퍼했다고 한다. 박경완은 현대로 이적이 결정되자 평소 절친했던 타 구단 선배 [[조웅천]]에게 전화해서 "형, 나 현대 가기 싫어요" 라고 말하기도 했고 김기태는 쌍방울 구단 고위층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쌍방울 구단이 원망스러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들과 작별해야 했던 [[김원형]], [[심성보]], [[김호(야구)|김호]] 등 기존의 쌍방울 선수들이 멘붕에 빠져야 했던 것은 덤. [[https://youtu.be/ITBgM6vQVbY|당시 쌍방울 선수들의 회상]] == 역대 성적 == ||­ || 우승 || || ­|| 준우승 || || ­|| 포스트시즌 진출 || ||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9>드 = 드림리그, 매 = 매직리그[br]* = 공동순위|| || {{{#000000 '''연도'''}}} || {{{#000000 '''정규리그 순위'''}}} || '''{{{#000000 최종순위}}}''' || {{{#000000 '''팀이름'''}}} || {{{#000000 '''경기수'''}}} || {{{#000000 '''승'''}}} || {{{#000000 '''무'''}}} || {{{#000000 '''패'''}}} || {{{#000000 '''승률'''}}} || || 1991 || *6위 / 8팀 || {{{#white *6위}}} ||<|9> '''[[쌍방울 레이더스|{{{#ffcc00 쌍방울 레이더스}}}]]''' || 126 || 52 || 3 || 71 || 0.425 || || 1992 || '''{{{#red 8위}}}''' / 8팀 || {{{#white 8위}}} || 126 || 41 || 1 || 84 || 0.329 || || 1993 || 7위 / 8팀 || {{{#white 7위}}} || 126 || 43 || 5 || 78 || 0.361 || || 1994 || '''{{{#red 8위}}}''' / 8팀 || {{{#white 8위}}} || 126 || 47 || 5 || 74 || 0.393 || || 1995 || '''{{{#red 8위}}}''' / 8팀 || {{{#white 8위}}} || 126 || 45 || 3 || 78 || 0.369 || || 1996 || '''2위''' / 8팀 || 3위 || 126 || 70 || 2 || 54 || 0.563 || || 1997 || '''3위''' / 8팀 || 3위 || 126 || 71 || 2 || 53 || 0.571 || || 1998 || 6위 / 8팀 || {{{#white 6위}}} || 126 || 58 || 2 || 66 || 0.468 || || 1999 || '''{{{#red 매4위}}}''' / 4팀 || {{{#white 8위}}} || 132 || 28 || 7 || '''{{{#blue 97}}}''' || 0.224 || ||<-3> '''[[KBO 리그]] 통산''' || 9시즌 || 1140 || 455 || 30 || 655 || 0.410 || === 역대 포스트시즌 상대 전적 === || '''상대팀''' || '''개별 경기 전적''' || '''시리즈 전적''' || ||<#007f55> [[현대 유니콘스|'''{{{#fab93d 현대 유니콘스}}}''']] || [[KBO 플레이오프/1996년|96 PO]] : 2승 3패 || '''PO 1패''' || ||<#074CA1> [[삼성 라이온즈|'''{{{#white 삼성 라이온즈}}}''']] || [[KBO 준플레이오프/1997년|97 준PO]] : 1승 2패 || '''준PO 1패''' || || '''총합''' || '''3승 5패''' || '''2패''' || [각주] [[분류:쌍방울 레이더스]] [include(틀:포크됨2, title=쌍방울 레이더스, d=2023-01-11 21:2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