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독립운동가, rd1=신훤(독립운동가))] 申煊 / 莘萱 생몰연도 미상 [목차] == 개요 == [[후삼국시대]]의 [[도적]]이었던 [[기훤]]과 [[양길]]의 장수. == 생애 == 현존하는 기록에 2번 등장하는데 [[삼국사기]] 궁예 열전에서 申煊, 삼국사기 [[신라]]본기 [[효공왕]] 4년조에서는 莘萱으로 나온다. [[한자]] 표기가 다르지만 동일 인물로 보는 편이다.[* 각 사료의 원문과 해석은 이러하다. 箕萱侮慢不禮 善宗鬱悒不自安 潛結箕萱麾下元會申煊等爲友(기훤이 업신여기며 예로써 대우하지 않자 [[궁예|선종]]은 마음이 답답하고 불안하여 기훤의 휘하인 원회(元會), 신훤(申煊) 등과 비밀리에 결탁하여 벗을 삼았다.) / 四年 冬十月 國原菁州槐壤賊帥淸吉莘萱等 擧城投於弓裔(4년(서기 900) 겨울 10월, 국원(國原)ㆍ청주(菁州)ㆍ괴양(槐壤)의 도적 두목 청길(淸吉)과 신훤(莘萱) 등이 궁예에게 성을 바치고 투항하였다.)] 891년, 원래 [[안성시|죽주]]의 도적 기훤의 부하였는데 그 때 원회와 함께 [[궁예]]와 친하게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예가 기훤에게서 벗어나 양길에게로 갈 때에 같이 갔는지, 계속 기훤 휘하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입증할만한 기록이 없다. 899년, [[비뇌성 전투]]로 양길이 패배해 거의 몰락하고 900년 궁예는 [[태조(고려)|왕건]]을 시켜 [[청주시]], [[충주시]], [[괴산군]] 등지의 양길군 잔당을 토벌하게 했는데 이때 여기를 지키고 있던 신훤(莘萱), 청길(淸吉)도 궁예군에 항복한다고 나온다. 다른 한자로 기록되어 있지만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의 [[경기도]] 안성인 죽주에 있던 기훤의 부하 장수였다가 어떻게 국원(현재의 충주) 혹은 서원(현재의 청주) 혹은 괴산의 지도자급 인물이 되었는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없다.[* 안성과 괴산이 아주 먼 거리인 것은 아니다.] == 대중매체에서 == >'''[[유언/한국 창작물|북원의 도적 양길아, 내 칼을 받아라! 이랴!]]''' * 2000년 [[KBS]]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는 배우 박승호[*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미우라를 연기하였다.]가 연기했다. [[원회]]와 함께 원래 [[기훤(태조 왕건)|기훤]]의 부하였으며 궁예 일행과 함께하면서 궁예에게 감화되는데 기훤의 폭정과 비현실적인 전쟁 계획에 질린 신훤과 원회는 밤중에 기훤을 살해하고 죽주를 [[궁예(태조 왕건)|궁예]]에게 바친다. 이후 궁예가 [[양길(태조 왕건)|양길]] 휘하에 들어가자 신훤, 원회도 함께했으나 궁예 휘하에 [[환선길(태조 왕건)|환선길]], [[이흔암(태조 왕건)|이흔암]], [[복지겸(태조 왕건)|복지겸]], [[홍유(태조 왕건)|홍유]], [[배현경(태조 왕건)|배현경]] 등 쟁쟁한 장수들이 들어오면서 이들의 비중은 줄어버린다. 철원성 전투~[[후고구려]] 건국 시점까지 등장이 거의 없다가 비뇌성 전투에서 신훤이 양길과 일기토를 벌이다 끔살당하고 원회도 양길에게 당하여 신훤의 뒤를 따르게 된다. 실제 역사에서는 줄을 잘못 서 양길의 곁을 지키다 새파랗게 어린 [[왕건(태조 왕건)|왕건]]에게 치욕적 패배를 당하고 사망한 점을 생각하면 상당히 미화된 셈. [각주] [[분류:후삼국시대/인물]][[분류:몰년 미상]][[분류:태조 왕건/등장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