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정의당 상임고문)]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d1c6b4 0%, #c19e76 20%, #d1c6b4 80%, #c19e76)" {{{#white '''{{{+2 신학철}}}[br]{{{-1 申鶴澈 | Shin Hakchul}}}'''}}}}}} || || '''{{{#white 본관}}}''' ||[[평산 신씨]][* 34세 철(澈) 항렬.] || ||<|2> '''{{{#white 출생}}}''' ||[[1943년]] [[12월 12일]] ([age(1943-12-12)]세) || ||[[경상북도]] [[김천시|김천군]] [[감문면]] 삼성리[* [[https://adm.daarts.or.kr/handle/11080/135239|#]]] 오성마을 1082번지 || || '''{{{#white 국적}}}''' ||[include(틀:국기, 국명=대한민국)] || || '''{{{#white 직업}}}''' ||[[화가]], 교사[* 경기 화성 안용중학교 교사, 안양 금명중상업고등학교 교사, 남강고등학교 교사] || || '''{{{#white 학력}}}''' ||[[성의고등학교|성의상업고등학교]][* 現 [[성의고등학교]].] {{{-2 ([[졸업]])}}}[br][[홍익대학교 미술대학]] {{{-2 ([[서양화과]] 64 / [[학사]])}}} || || '''{{{#white 경력}}}''' ||[[안용중학교]] 교사[br][[근명중학교]]·[[근명고등학교|근명상업고등학교]] 교사[br][[남강고등학교]] 교사 || [목차] [clearfix] == 개요 == 대한민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 생애 == 1943년 12월 12일 경상북도 김천군(現 [[김천시]]) 감문면 삼성리 오성마을 1082번지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에 재능이 있었고, 주로 동네 풍경이나 달력의 그림을 따라 그리면서 실력을 길렀다. 하지만 화가가 될 줄은 몰랐다고.. 중학교 졸업 후 고향에서 농사지으며 살까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1960년 교사로 근무하던 이종사촌 형이 독일계 가톨릭재단에서 운영하던 [[성의고등학교|성의상업고등학교]](現 [[성의고등학교]])로 입학시켰다. 고등학교에서는 한복 입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세운 '한국식 성화(聖畵)'로 연하장 만드는 일을 도맡았다. 이후 [[서울시립미술관]]장을 스승으로 만나 현대미술에 관심을 가지면서부터 미술대학으로 진학을 꿈꾸게 됐다. 이 때 사랑방에 촛불을 켜놓고 독학으로 석고상을 그리면서 입시를 준비했다고.. 이후 1964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64학번)에 입학하였고, 대학시절 로버트 라우센버그에 영향을 받아 콜라주 형식의 그림을 시작했다고 한다. 1970년부터 1971년까지 [[화성시|화성군]] [[안용중학교]], 1971년부터 1974년까지 [[안양시]] [[근명중학교]]·[[근명고등학교|근명상업고등학교]](現 [[근명고등학교]]), 1974년부터 1989년까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강고등학교]] 등지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1969년부터 1975년까지 에 참여했으며, 1977년부터 1981년까지 <서울방법전>에 참여했다. 모노크롬회화가 주를 이루던 1970년대에는 사진몽타주나 콜라주를 이용하여 일상의 현실을 보여주고, 산업사회와 대량소비사회가 가져오는 물질만물주의를 비판하는 작업들을 진행하였다. 1980년대 이후에는 캔버스로 돌아가 콜라주 대신 포토몽타주와 포토리얼리즘 기법을 통해 현실에 보다 더 가까이 접근함으로써 역사를 관념으로서가 아닌 구체적 실체로서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때 <한국근대사> 시리즈와 90년대에는 <한국현대사> 시리즈 등 40여 점을 연작으로 발표하며 화단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1987년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제2회 통일미술전>에 출품한 <모내기>가 국가보안법에 위반된다는 혐의로 구속되었고,징역 10월에 선고유예를 받아 구치소 생활 3개월 만에 보석으로 나왔다. 이후 2000년에 사면복권됐다. 제1회 미술기자상(1982), 제1회 민족미술상(1991), 제16회 금호미술상(1999) 등을 수상하면서 1980년대 한국 민중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로 성장했다. == 작품 == === 모내기 === === 한국근대사 === === 신기루 === === 갑순이와 갑돌이 === == 여담 == * 작품 〈모내기〉는 작가가 돌려받지 못하고, 검찰에서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옮겨졌다. 검찰 보관시 A4 형식으로 접힌 채 수십년을 있어서, 작품은 훼손되어 있었다. 신학철은 이 작품이 훼손된 것도 하나의 역사이므로 복원하지 않고 작품을 그대로 두기로 결심했다고... * 2002년부터 13여년간 [[파킨슨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간병하다가 그녀를 떠나보내고 2016년 다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평산 신씨]][[분류:1943년 출생]][[분류:민중예술가]][[분류:성의고등학교 출신]][[분류:홍익대학교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