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고려 왕후)] [include(틀:역대 고려 왕태후)]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e6bd0e, #f9d537 20%, #f9d537 80%, #e6bd0e); color: #670000" '''고려 태조의 제4왕후[br]{{{+1 신정왕후 | 神靜王后}}}''' '''고려 성종의 조모[br]{{{+1 신정대왕태후 | 神靜大王太后}}}'''}}} || ||<|2> '''출생''' ||[[903년]] 전후 || ||[[태봉]] [[황주군|황주]] [[황보제공]]의 사저[br](現 [[황해북도]] [[황주군]]) || ||<|2> '''사망''' ||[[983년]] [[8월 19일]] || ||[[고려]] [[개성시|개경 개주]] [[명복궁]][br](現 [[경기도]] [[개성시]]) || || '''능묘''' ||[[수릉]](壽陵) || ||<|4> '''재위기간''' ||'''{{{#3F6864 고려 명복궁대부인}}}''' || ||미상 ~ [[981년]] [[8월 14일]] || ||'''{{{#670000 고려 왕태후}}}''' || ||[[981년]] [[8월 14일]] ~ [[983년]] [[8월 19일]] || ||<-2>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본관''' ||[[황보(성씨)|황주 황보씨]] || || '''부친''' ||충의공 [[황보제공]] || || '''배우자''' ||[[태조(고려)|태조]] || || '''자녀''' ||{{{#!folding 1남 1녀 [ 펼치기 · 접기 ] 아들 - [[대종(고려)|대종]] 딸 - [[대목왕후]] }}} || || '''종교''' ||[[불교]] || || '''작호''' ||명복궁대부인(明福宮大夫人) || || '''시호''' ||정평유명자경선덕의경정헌'''신정대왕태후'''[br](貞平柔明慈景宣德懿敬定憲'''神靜大王太后''') ||}}}}}}}}} ||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려]] [[태조(고려)|태조]]의 제4비. [[황주군|황주]] [[호족(한국사)|호족]]인 [[황보제공]]의 딸이다. == 생애 == 정확한 출생년도는 알 수 없으나 서기 903년경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성종(고려)|성종]] 즉위 초기인 983년에 사망했다. 궁으로 들어온 후에 그녀는 명복궁대부인(明福宮大夫人)에 책봉되었다. 또 제24비 소황주원부인(小黃州院夫人)에 "소(小)"가 들어가는 걸 볼 때 "대황주원부인(大黃州院夫人)" 또는 "황주원부인(黃州院夫人)"으로도 불린 것으로 보인다. 후에 황주원은 [[명복궁]]으로 개칭되었다. 태조가 승하한 후 40년 동안 고려 왕실의 웃어른이었던 그녀는 효덕태자(孝德太子)와 [[성종(고려)|성종]], 경장태자(敬章太子) 등을 직접 양육하였으며, 후손들의 양육에 관심을 많이 두고 애정을 쏟았다고 한다. 성종조((朝))에서 남긴 조문에 따르면 그녀는 덕이 많고 성격이 후덕했으며, 검소하고 슬기로워 백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다고 한다. 성종은 친모를 어릴 때 잃고 할머니의 손에서 자랐다. 이 때문에 성종과 남매인 [[헌애왕후]], [[헌정왕후]]는 정주 류씨인 어머니 [[선의왕후]]가 아니라 할머니 신정왕후 황보씨의 황주 황보씨 성과 세력을 물려받았다. 할머니가 사망한 후 크게 슬퍼하며 신정대왕태후란 시호를 올려서[* 《[[고려사]]》에는 '신정대왕태후'로 올렸다고 나온다. 그러나 정작 그녀를 소개할 땐 '신정왕태후'라고 했고, 《[[고려사절요]]》에서는 '신정왕태후'로 올렸다고 나오기 때문에 역사학계에선 보통 '신정왕태후'로 올렸다고 표기한다. 왕태후가 대왕태후의 줄임말이라서 큰 차이가 없는 것도 한 몫했을 것이다.] 그녀의 지위를 대왕태후(大王太后)로 격상시켰다. 이후 [[목종(고려)|목종]], [[현종(고려)|현종]] , [[문종(고려)|문종]], [[인종(고려)|인종]], [[고종(고려)|고종]]이 시호를 추가로 올렸기에 정식 시호는 정평유명자경선덕의경정헌신정대왕태후(貞平柔明慈景宣德懿敬定憲神靜대大王太后)다. == 가족관계 == 슬하에 성종의 아버지인 [[대종(고려)|대종 왕욱]](王旭)과 [[대목왕후]] 두 사람을 두었다. 따지고 보면 고려 [[경종(고려)|경종]] 이후의 모든 왕은 그녀의 후손이 된다. 자신의 딸 대목왕후는 [[광종(고려)|광종]]과 혼인하게 되는데, 이는 태조의 제22비 신주원부인 강씨(信州院夫人 康氏)의 손에 광종이 자랐고 신천 강씨 집안과 황주 황보씨 집안은 둘 다 패서호족으로서 본거지 간의 거리도 가까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광종의 즉위에는 광종을 밀어주던 패서호족 두 세력이 상당히 개입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친손주로 효덕태자(孝德太子), [[성종(고려)|성종]], 경장태자(敬章太子), [[헌애왕후]], [[헌정왕후]]를 두었고 헌정왕후가 왕건의 또 다른 아들인 [[안종(고려)|안종 왕욱]](王郁)과의 사이에서 고려 제8대 왕인 [[현종(고려)|현종]]을 보았다. 또 외손주로 [[경종(고려)|경종]], 효화태자(孝和太子), 천추전부인(千秋殿夫人), 보화궁부인(寶華宮夫人), [[문덕왕후]]를 두었다. 고려 초기 왕실족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근친혼]]으로 상당히 얽히고 설킨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태조 왕건의 호족 통합 정책의 일환이었다. == 대중매체 == * 2002년 [[KBS1]] 드라마 《[[제국의 아침]]》에서는 배우 안해숙이 연기했다. * 2009년 [[KBS2]] 드라마 《[[천추태후(드라마)|천추태후]]》에서는 [[반효정]]이 연기했다.[* 《[[제국의 아침]]》에서는 왕건의 제2비 [[장화왕후]] 오씨 역을 맡았다.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다른 드라마지만 태조의 제2비와 제4비를 연기한 독특한 이력이 있다.] 주인공인 천추태후 황보 수와 헌정왕후 황보 설을 경종의 비를 보냈다가 황보 수에게서 아들이 태어나자 그 [[경종(고려)|경종]]의 아들인 [[목종(고려)|목종]]을 왕위에 올리려 했지만 배신감에 [[성종(고려)|성종]] 왕치(王治)가 비밀리에 [[신라]]계 귀족들의 지원을 받아 왕에 오르자 격분하며 사망하는 것으로 나온다. * 2016년 [[SBS]] 드라마 《[[달의 연인]]》에서 [[정경순]]이 연기했다.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신정왕후, version=121)] [[분류:983년 사망]][[분류:황주 황보씨]][[분류:고려의 왕비]][[분류:왕대비]][[분류:황주군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