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수나라와 당나라 관련 문서)] [include(틀:송나라 관련 문서)] [목차] == 개요 == '''市舶司'''. 중세 중국에서 해외 무역을 관리하고 [[관세]]를 매기던 기구. 시박(市舶)은 외국 선박을 의미한다. [[당나라]] ~ [[청나라]] 초기까지 이어졌다가, 청나라 시기 해관으로 대체되어 사라졌다. == 상세 == [[당나라]] [[현종]] 때 [[파르시|페르시아인]] 상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광저우]](廣州)에 설치된 것이 것이 최초이며 이후 송, 명, '''청나라 초기까지도''' 축소, 재설립등을 반복하며 해외 무역을 관리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전술한 것처럼 당 현종 시대 서기 714년에 처음 설치된 것으로 전해지나 당시에는 [[절도사]]가 시박사 업무를 맡느라 전문성이 떨어졌고, [[송나라]] 시기에는 해상 무역이 크게 융성한 것을 계기로 [[항저우]], [[취안저우]], [[닝보]] 등에도 시박사가 설치되며 기능이 강화되었다. 당시 송나라에서는 쌀, 차 외에도 [[징더전]]의 [[도자기]]를 수출했으며[* 중세 당시 비단은 이미 중동 각지 및 [[동로마 제국]]에서 생산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방 민족과의 교역 외에는 그렇게 비중이 높은 교역품이 아니었다.] 대신 진주, [[상아]], 코뿔소 뿔 등의 사치품을 수입하였다. 본래 중국 중부, 남부에 서식하던 코끼리와 코뿔소가 멸종하는 와중에도 중국에서 상아와 코뿔소 뿔의 수요는 여전했고 이러한 수요를 결국 수입으로 땜빵한 것. 시박사는 주로 지방관이 통솔하였으나 시대에 따라 환관, [[절도사]]도 시박사를 통솔하였다. [[실크로드|비단길]] 이외의 해외 무역을 장려하던 [[북송]]시대에 가장 융성했다. [[고려]]와 송나라 사이의 무역도 시박사의 관리를 거쳤다. 이후 명나라에서 해금 정책을 펼치면서 밀무역이 흥하고 시박사의 기능이 상당부분 약화되었다가, 청나라 때 시박사 대신 해관이라는 관청이 설치되면서 해체되었다. 기구의 명칭도 여러차례 변천을 겪었으나, 현대에는 "시박사"라고 통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 대중매체 == 중국 사극이 대개 군웅들의 정치사 위주로 그려지기 때문에 이런 조직이 조명될 일은 드물지만, [[정화(명나라)|정화]]를 주인공으로 하는 <정화하서양>에서는 상당히 중요한 조직으로 등장한다. 거의 영락상사 해외사업부문(...) 같은 묘사인데, 문제는 극중에 등장하는 절강, 복건, 광동 시박사 시박사의 총책임자가 [[주고후]]라는 개망나니라는 것. 각종 이권사업과 사익을 위한 공금횡령, 갑질 등 깽판을 거듭하는 주고후를 보며 [[영락제|아버지]]와 [[홍희제|형]]이 골머리를 썩이지만, 정화가 한번 출항했다 돌아올 때마다 황제와 중신들이 겪은 스트레스를 메꾸고도 남을만큼 어마어마한 이윤을 챙겨오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굴러간다. 하지만 막북 원정으로 인해 재정난이 심해지면서 주고후의 횡령 및 착복 혐의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이를 고발하는 관료와 자신 밑에서 일하던 실무자를 살해하는등 패악질을 보다 못한 중신들의 고발로 인해 영락제도 더 이상 아들을 실드쳐주지 못하고 직위해제 후 산동에 위리안치한다. [[분류:중국의 역사]][[분류:수당시대]][[분류:오대십국시대]][[분류:송나라]][[분류:원나라]][[분류:명나라]][[분류:청나라]][[분류:동아시아의 경제사]][[분류:관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