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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fffff Stanley Druckenmiller}}}'''}}}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S D.jpg|width=100%]]}}} || || '''{{{#ffffff 이름}}}''' ||Stanley Freeman Druckenmiller[br]스탠리 프리먼 드러켄밀러|| || '''{{{#ffffff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width=28]]|| || '''{{{#ffffff 출생}}}''' ||[[1953년]] [[6월 14일]] ([age(1953-06-14)]세)[br][[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 || '''{{{#ffffff 학력}}}''' ||[[보든 칼리지]] ([[영문학]],[[경제학]]/학사) || || '''{{{#ffffff 직업}}}''' ||[[기업인]], [[투자자]], 자선사업가|| || '''{{{#ffffff 배우자}}}''' ||피오나 빅스[* 억만장자 [[펀드매니저]] 바튼 빅스(Barton Biggs)의 딸]|| || '''{{{#ffffff 재산}}}''' ||'''56억 달러 (한화 약 6조 3,300억 원)'''|| [목차] [clearfix] == 개요 == [[1953년|1953년 6월 1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 출생 [[기업인]]이자 [[투자자]]로 [[패밀리 오피스|듀케인 패밀리 오피스]][*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하기 전까지는 [[헤지펀드]] 였다. [[조지 소로스]], [[데이비드 테퍼]] 등 여러 [[펀드매니저]]들이 은퇴 후 자신들이 운용하던 헤지펀드를 패밀리 오피스로 전환하는 중이다.]의 창업자이자 회장이다. [[1988년]]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퀀텀펀드(Quantum Group of Funds)[* 조지 소로스가 설립한 Soros Fund Management(SFM)의 플래그십 펀드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에 이어 투자자에게 가장 많은 수익금을 돌려준 헤지펀드. 여러 유명 투자자를 배출한 펀드로도 유명한데, [[스탠리 드러켄밀러]], [[짐 로저스]], 빅터 니더호퍼 등이 퀀텀펀드 출신이다.]를 운용해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올린 펀드매니저로 조지 소로스, 줄리안 로버트슨, 마이클 슈타인하트와 함께 헤지펀드 업계의 황금기를 이끈 [[굇수]]. 세계 경제의 흐름을 바탕으로 투자하는 글로벌 매크로 투자 기법의 달인으로, 소로스에게 파운드화 [[공매도]]를 제안한 사람이 드러켄밀러다.[* 많은 사람들이 소로스가 주도한 거래로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소로스는 드러켄밀러에게 더 많은 [[레버리지]]를 사용해 공매도 하도록 자문 해준 자문자 역할이었다. 결국 소로스의 자문으로 15억 달러에서 100억 달러로 공매도 금액을 늘려 파운드화를 공매도해 일주일만에 10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드러켄밀러의 통찰력과 소로스의 대담함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세기의 거래인 샘.] 조지 소로스와 더불어 전세계 통화위기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투자자이다. 천재적인 분석 능력과 트레이딩 실력으로 30년간 연평균 30.4%의 수익률을 올렸으며, '''손실이 난 해는 단 한 해도 없었다'''. 이는 [[월스트리트]]를 포함한 전세계 투자 업계에서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간혹 [[증권사]]의 트레이더들이 1년에 수백%의 수익률을 올리긴 하지만 드러켄밀러 만큼의 큰 자본을 운용해 연평균 30%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한 투자자는 [[짐 사이먼스]]가 유일하다. 단타, 스윙 트레이딩의 귀재인 리처드 데니스와 마이클 마커스 또한 드러켄밀러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긴 했지만 운용자산은 수백, 수천억원 규모였으며, [[워렌 버핏]], [[조지 소로스]] 또한 20% 대의 수익률로 드러켄밀러의 수익률을 뛰어넘지 못했다.] 펀드매니저 스콧 베센트는[* Soros Fund Management의 [[CIO]]였던 인물로 이 사람도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천재.] 드러켄밀러를 [[짐 로저스]]의 분석능력과 [[조지 소로스]]의 트레이딩 능력을 갖춘 월스트리트 최고의 돈 버는 기계라 평가했다. == 생애와 커리어 == [[1953년|1953년 6월 14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태어났다. [[듀폰]]에서 화학 공업자로 일하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으며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해 [[필라델피아]]에서 아버지 밑에서 홀로 자랐다.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으며 어릴때 부터 총명해 [[기숙사립학교|보딩스쿨]]인 칼리지에이트 스쿨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보든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본래 영문학 교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으나 3학년 때 들은 경제학 수업에 매료되어 금융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훗날 [[조지 W 부시]] 정권의 경제 자문이자 미국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로렌스 린지(Lawrence B. Lindsey)와 함께 핫도그를 팔아 용돈벌이를 했다. 보든 칼리지 졸업 후, [[미시간 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하려 했으나 [[PNC 파이낸셜]]의 원유 [[애널리스트]]로 스카웃 제의를 받아 중간에 중퇴하게 된다.[* 박사 과정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중퇴 후 한말이 걸작이다. “These people are crazy. They’re trying to shove the economy into a math formula. It doesn’t make any sense” (이 사람들<미시간 대학교 교수, 학생들>은 미쳤어. 경제학을 수학 공식으로만 설명하려 하잖아. 그건 말도 안되잖아.)] 1977년, PNC 파이낸셜의 애널리스트로 취직해 일년만에 리서치 부서의 헤드가 된다. 1981년, 자신이 설립한 [[헤지펀드]]를 운용하고자 PNC에서 번 돈을 기반으로 듀케인 캐피탈(Duquesne Capital Management)을 설립한다. 이 후, 드뤠피스(Dreyfus Corporation)에 취직해 고객에게 투자 조언을 해주는 컨설턴트가 된다. 드뤠피스의 컨설팅 업무와 듀케인 캐피탈 운용을 병행하고자 [[피츠버그]]와 [[뉴욕]]을 오가며 생활하다 1986년 드뤠피스 펀드의 펀드매니저로 승진해 피츠버그로 완전히 거처를 옮기게 된다. 드뤠피스에서 최고 수익률을 올리는 펀드매니저로 단숨에 회사의 일약 스타가 된다. 드뤠피스 펀드 운용 중, [[조지 소로스]]가 집필한 금융의 연금술(The Alchemy of Finance)을 읽고 감명받아 소로스와 토론하고자 소로스를 찾아가게 된다. 소로스는 첫 만남 직후 드러켄밀러에게 스카웃 제의를 하지만 드러켄밀러는 드뤠피스에서 투자 성공에 대한 합당한 보수를 줄 것으로 생각해 소로스의 제안을 보류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드뤠피스 보수에 실망해 결국 소로스가 운용하는 플래그십 펀드인 퀀텀펀드에 빅터 니더호퍼를[* 미국의 전설적인 트레이더로 소로스 밑에서 최고 수익률을 올리는 펀드매니저 였으나 투자 실패로 펀드에게 큰 손실을 입혀 자진 퇴사했다. 퇴사 후, 자신의 트레이딩 실패를 기반으로 한 책을 집필하며 살고 있다. 여담으로 일본의 슈퍼개미 투자자 [[BNF]]의 이니셜이 빅터 니더호퍼의 이니셜을 꼬아 만든 것이다.] 대신하기 위해 입사한다. 입사 후, 소로스와 함께 파운드화 [[공매도]]를 이끌었으며 소로스와 함께 '''[[영란은행]]을 굴복시킨 사나이'''로 불리게 된다. [[독일]], [[스웨덴]] 등 여러 나라의 통화위기 가운데서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렸으며 퀀텀펀드의 황금기를 이끈 [[펀드매니저]]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천문학적인 수익률을 올리다 2000년에 기술주 투자에 실패해 펀드에 수조원의 손실을 입히게 되어 결국 소로스를 떠나게 된다[* 불과 3일만에 일어난 일로 자신의 감정적인 투자로 일어난 실수라고한다.]. 퇴사 후, 자신이 설립한 듀케인 캐피탈을 운용하다 2018년 [[헤지펀드]] 업계에서 완전히 은퇴한다. 듀케인 캐피탈을 운용하는 동안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올렸으며 손실을 기록한 해는 '''단 한 해도 없었다'''[* [[대침체]] 등 여러 조정과 경기 침체동안 계속해서 플러스의 수익률을 기록한 전무후무한 수익률이다. 특히, 드러켄밀러와 같이 공격적인 투자를하는 [[헤지펀드]]들은 불가능한 기록.]. 현재 안정적인 수익률을 추구하기 위해 [[가치주]]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으며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에도 투자하고 있다[* 또 다른 억만장자 펀드매니저 폴 튜더 존스(Paul Tudor Jones II)와 함께 [[암호화폐]]에 긍정적인 시각을 보이는 대표적인 투자자 중 한명이다.]. 2023년 11월 1일 복지와 전쟁 예신 관련하여 연방정부의 과도한 지출을 비판했다. [[코로나 버블]] 이전 시기와 비교해 보았을 때 [[GDP]] 대비 지출이 너무 과하다고 언급했다. 전날인 31일에는 경기 침체를 예상하며 2년물 미국채를 매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국채 가격과 반대로 움직이는 국채 수익률은 최근 [[대침체]] 이후 최고치에 도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빌 애크먼]]의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와 경기침체 우려로 인해 30년물 미국채에 대한 숏포지션을 청산한 바 있다. == 투자 철학 == 투자 스승인 [[조지 소로스]]의 영향을 받아 글로벌 매크로[* 기업의 [[펀더멘털]]보다는 세계 경제에 초점을 두는 투자 전략] 전략을 바탕으로 많은 양의 [[레버리지]]를 사용해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탑다운(top-down) 투자자이다.[* 다른 성격의 투자 방식으로는 기업인 펀더멘털을 분석해 투자하는 바텀엄(bottom-up) 투자 방식이 있다. [[워렌 버핏]], [[피터 린치]] 등 대부분의 유명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전략이다.]. 은퇴 후,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전의 공격적인 투자보다는 [[가치주]], 성장주[* 사실 성장주 투자는 공격적인 투자 방식이다. 하지만, 드러켄밀러가 주로 사용하던 많은 [[레버리지]]를 사용한 글로벌 매크로 투자 방식보다는 보다 안정적인 투자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위주로 투자 하고 있으며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닷컴]], [[스타벅스]], [[팔란티어 테크놀로지스]] 등에 큰 포지션을 가지고 있다. 외에도 [[비트코인]] 등 여럿 [[암호화폐]]에도 투자하고 있다. == 기타 == * [[조지 소로스]]의 [[오픈소사이어티재단]]을 비롯한 많은 기관에 활발한 기부를 하는 중이다. 2009년, 미국에서 가장 많은 액수를 기부한 사람으로 한화 약 8,000억원을 미국의 교육기관과 빈곤 퇴치 기구에 기부했다. 외에도, 모교인 [[보든 칼리지]]에 300억원 이상을 기부했으며 [[뉴욕 대학교]] 등 여러 대학에 연구비를 기부했다. * [[2024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반트럼프 인사인 [[니키 헤일리]] 지지를 선언했다. [[분류:미국의 남성 기업인]][[분류:1953년 출생]][[분류:투자자]][[분류:피츠버그 출신 인물]][[분류:보든 칼리지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