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광장]] [[분류:프랑스의 세계유산]] [[파일:1068_ho_00_p_1024x768.jpg]] [목차] [clearfix] == 개요 == [[프랑스]] [[그랑테스트]] 레지옹의 도시인 [[낭시]]에 위치한 [[광장]]이다. [[폴란드-리투아니아]]의 국왕이었다가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으로 물러나 말년을 [[로렌 공국]]에서 보낸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가 지었다.[* 제목은 "스타니슬라스 광장"이지만, 스타니스와프 1세가 지은 [[광장]]은 총 3개이다.] [[1983년]] '낭시의 스타니슬라스 광장, 캐리에르와 알리앙스 광장'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역사 ==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이후, 폴란드-리투아니아 왕위에서 물러난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가 [[1737년]]부터 [[로렌 공국]]의 [[공작(작위)|공작]]이 되어[* 스타니스와프 레슈친스키의 딸 [[마리 레슈친스카]]가 [[프랑스 국왕]] [[루이 15세]]와 결혼한 덕분에 사위가 장인이 말년을 보낼 곳으로 준 보상에 가까웠다.] 자신의 위용을 높이고, 국민의 요구에 부응할 새로운 근대식 [[수도(행정구역)|수도]]를 짓고자 하였다. 그래서 "엠마누엘 에레"라는 건축가를 통해 [[1752년]] 3월부터 [[건축]]하기 시작하여 [[1755년]] 11월에 광장이 완공하였다. == 스타니슬라스 광장 == [[파일:statue-of-stanislas-leszczynski-on-the-place-stanislas-in-nancy-picture-id1194071438.jpg]] 스타니슬라스 광장의 전경 스타니슬라스 광장은 기존에 있던 건축물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광장]]으로 "왕의 광장"으로 불리다가 [[프랑스 대혁명]] 이후엔 "국민의 광장"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1831년]] 스타니스와프 1세 레슈친스키(스타니슬라스 레친스키)의 동상[* 사진에서 광장 앞에 있는 동상이 바로 스타니스와프 1세이다.]이 세워지면서 지금과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 캐리에르 광장 == [[파일:architecture-place-stanislas-nancy.jpg ]] 개선문 스타니스와프 1세의 사위인 [[루이 15세]]를 위해 만들어진 [[개선문]]을 기준으로 스타니슬라스 광장과 이어진다. 원래 [[16세기]] 중반에 마상 시합[* 말을 타고 싸우는 시합]이 열리던 곳에 2개의 [[궁전]]이 세워지면서 [[광장]]이 되었다. [[파일:Nancy_Place_de_la_Carrière_BW_2015-07-18_14-01-09.jpg]] 캐리에르 광장의 전경 == 알리앙스 광장 == [[파일:14570201.jpg]] 알리앙스 광장의 전경 3개의 광장 중 가장 단순하게 생긴 [[광장]]이며, 전형적인 [[바로크]] 양식에 속한다. == 기타 == * 3개의 [[광장]]은 모두 [[중세]]의 [[도시]]와 [[근대]]의 [[도시]]를 이어주는 역할을 해왔고, 공공 [[집회]]와 [[축제]]에 자주 사용되었다. * [[1958년]]~[[1983년]]까지 [[광장]]이 [[주차장]]으로 사용된 적이 있다(...). 하지만 [[광장]]을 다시 [[복원]]하여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