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FFD700>[[고려청자|https://67.media.tumblr.com/d0ab98e78c55c6369f20b702ab560e77/tumblr_o9zoipyqmm1sqk8veo5_r2_400.png?width=50]][br] '''{{{+1 [[고려/왕사|{{{#800080 고려의 역대 국왕}}}]]}}}''' || ||<:> 11대 [[문종(고려)|문종]] 왕휘 ||<:> {{{+1 ←}}} ||<:><#FBEC5D> '''{{{#black 12대 순종 왕훈}}}''' ||<:> {{{+1 →}}} ||<:> 13대 [[선종(고려)|선종]] 왕운 || ||<:> '''[[묘호]]''' ||||<:> '''[[순종]](順宗)''' || ||<:> '''[[시호]]''' ||||<:> 영명정헌선혜대왕[br](英明靖憲宣惠大王) || ||<:> '''[[능묘]]''' ||||<:> 성릉(成陵) || ||<:> '''[[성]]''' ||||<:> 왕(王) || ||<:> '''[[휘]]''' ||||<:> 훈(勳) || ||<:> '''[[자(이름)|자]]''' ||||<:> 의공(義恭) || ||<:> '''[[왕후]]''' ||||<:> 정의왕후(貞懿王后), 선희왕후(宣禧王后) || ||<:> '''[[부왕]]''' ||||<:> [[문종(고려)|고려 문종]] || ||<:> '''모후''' ||||<:> 인예왕후(仁睿王后) || ||<:> '''종교''' ||||<:> [[불교]] || ||<|2><:> '''생몰년도''' ||<:> 음력 ||1047년 12월 9일 ~ 1083년 10월 23일 || ||<:> 양력 ||1047년 12월 28일 ~ 1083년 12월 5일 (37세) || ||<|2><:> '''재위기간''' ||<:> 음력 ||1083년 7월 18일 ~ 1083년 10월 23일 || ||<:> 양력 ||1083년 9월 2일 ~ 1083년 12월 5일(3개월 3일) || [목차] == 소개 == [[고려]]의 제12대 임금. [[문종(고려)|문종]]의 장남. 언제 태자가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그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 문종이 왕위에 오른 걸로 봐서 오랜 기간 동안 태자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태자 시절부터 몸이 약했던지라 이래저래 부왕과 신하들의 걱정을 많이 산 듯. 아니나다를까 문종이 죽자 너무 슬퍼한 것이 탈이 되어 안 그래도 원래 병약한 몸이 더 악화되어 4개월만에 결국 부왕의 뒤를 따라간다. 딱 조선의 [[인종(조선)|인종]] 필이다. ~~마침 둘 다 12대다.~~ 별다른 업적없이 죽어버려 그 동생 국원공 왕운([[선종(고려)|선종]])이 엉겁결에 왕에 오른다. 자식에게 물려준 것도 아니고 자식에 대한 기록도 없는 것으로 봐서 병약한 몸 때문에 후사도 낳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사]]》에 남아있는 기록도 엄청 짧다. || * 8월 * 갑신일. 문종을 경루에서 장사지냈다. * 경자일. 왕이 신봉루로 가서 사면령을 선포했다. * 겨울 10월 * 초하루 계유일. 회경전에서 사흘동안 도량을 열고 승려 3만 명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 갑신일. 왕이 자신의 동생인 왕운을 수태사 겸 정서령으로 올려주고 식실봉 1천호를 덧붙여주라고 지시했다. ○ 왕은 젊어서 지병이 있었는데 선왕의 장례를 치르면서 너무 애통해한 나머지 병이 더욱 심해졌다.(王小有疾 居廬哀毁 疾益篤) * 을미일. 친동생 국원공 왕운으로 하여금 국사를 임시로 맡아보게 하고서 다음과 같이 유언을 남겼다. 이게 다다. --그래도 39년을 재위했는데 기록은 고작 7줄인 [[개루왕]]보다는 낫잖아-- == 가족관계 == 비로는 정의왕후 왕씨, 선희왕후 김씨와 장경궁주 이씨가 있다. 정의왕후 왕씨는 순종과 사촌지간인데 이상하게도 여성임에도 왕씨로 기록되어있으며 이유는 불분명하다. 선희왕후 김씨는 경주 출신 김양검의 딸이다. 순종의 사랑을 받았으나 어찌된 일인지 [[문종(고려)|문종]]이 심하게 그녀를 미워하여 순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폐출되었다. 나중에 [[인종(고려)|인종]]의 명에 의해 복원되고 순종 사당에 모셔졌다. 장경궁주 이씨는 인주 출신 이호의 딸이다. 이호는 [[이자겸]]의 아버지기도 하니 이자겸과 순종은 처남 매부지간이 되는셈. 순종이 왕위에 오른 후에 왕비가 되었다. 하지만 곧 순종이 죽는 바람에 청상과부가 되었다. 이후 외궁에 거처하였고 장경궁주에 봉해졌으나 자신의 노비와 간통하다가 발각되어 궁주의 자리에서 쫓겨났으며 복원되지 않았다. 이 때 이자겸도 부정한 왕비의 오라비란 이유로 잠시 축출되기도 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순종, version=184)] [[분류:고려의 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