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다른 뜻1, other1=블루 아카이브에 등장하는 캐릭터, rd1=아지타니 히후미/수영복)] [include(틀:아시아의 수도)] [Include(틀:유럽의 수도)] ||<#000000><:>{{{#ffffff {{{+1 '''수후미 (압하스)'''}}}[br]{{{#ffffff '''Sukhumi'''}}}}}} || ||<:> [include(틀:지도, 장소=압하스 수후미)] || [[러시아어]]: Суху́м(и)(Sukhum(i), 수후미 또는 수훔) [[압하스어]]: Аҟәа(Aqwa, 아콰) [[조지아어]]: სოხუმი(Sokhumi, 소후미) [[아르메니아어]]: Սուխում(Sukhum, 수훔) [[튀르키예어]]: Sohum(소훔) ||<-2> [[파일:Gerb_Sukhum.png]] || || 국가 || (명목상)[[조지아]], (사실상)[[압하지야]] || || 인구 || 65,439명 (2018년 기준) || || 시간대 || UTC+3[* 압하지야를 인정하지 않는 조지아에서는 자국의 시간대인 UTC+4로 인식한다.] || ||<-2> [[https://www.sukhumcity.ru/|수후미시 홈페이지]][* 러시아 도메인인 .ru를 쓰고 있다.] || [목차] [clearfix] == 개요 == [[캅카스]], [[동유럽]] 사이 지역에 있는 [[미승인국]] [[압하지야]]의 [[수도(행정구역)|수도]]이며, [[흑해]]를 끼고 있는 [[항구 도시]]다.[* 명목상 [[조지아]]의 도시] 인구는 [[2011년]] 기준 62,914명. [[소련]] 말기인 1989년에는 12만 시민 중 [[조지아인]] 41.5%, [[러시아인]] 21.6%이고 [[압하스인]]은 12.5%에 불과했으나, 1992-93년의 압하스 전쟁을 거치고 난 2011년에는 주민의 67.3%가 압하스인이 되었다. [[아르메니아인]]도 2011년 기준 주민의 9.8%를 차지하여 압하스인과 러시아인 다음으로 많은 인구수를 차지하고 있다. == 명칭 == 외국에는 수후미로 알려져 있지만, 압하지야 정부에서 'ㅣ'는 접미사이기 때문에 수훔으로 불러달라고 요청하면서, 2008년 이후 러시아와 압하지야 쪽에서는 수훔이라고 쓰고 있다. 압하스어로는 '돌이 많은 해변'을 의미하는 아콰(Аҟәа)라고 불린다. == 역사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8/8f/Suhumi_Prokudin-Gorskii.jpg/1160px-Suhumi_Prokudin-Gorskii.jpg|1912년 수후미 전경 (컬러)]] 고대 기원전 6세기 무렵 건설된 고도이다. [[밀레투스]] 지역의 [[그리스인]]들이 흑해 동부 연안에 건설한 식민도시 '디오스쿠리아스'(Διοσκουριάς)가 그 기원이다. 그리스 로마 시기 [[콜키스]] 지역에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 중 하나였으나, 8세기 이슬람 세력의 침력으로 황폐화되었다. 이후 12세기 압하지야 공국의 중심도시가 되어 조지아 지역과 유럽을 잇는 항구도시로 다시 번성하였다. 중세 시대 이름은 '츠호미' 혹은 '츠후미'(ცხომი/ცხუმი)였는데, 이는 인근의 스반(Svan) 언어로 '서어나무'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오세티야]]의 수도인 [[츠힌발리]]의 어원도 이와 동일하다.] 이후 16세기 [[오스만 제국]]이 서부 조지아 지역을 점령하고 소훔칼레(Sohumkale)로 불렸다가, 18세기 [[러시아 제국]]이 [[카르틀리 왕국]]의 요청으로 조지아 지역을 점령한 이후 정식적으로 '수훔'(Сухум)으로 불리게 되었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멸망한 이후 [[조지아 민주 공화국]]에 속하였다. 1922년 소련이 조지아를 재합병한 이후 [[자캅카스 SFSR]] 내 구성국 중 하나인 [[압하지야 사회주의 소비에트 공화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931년 압하지야 SSR이 [[그루지야 SSR]]의 [[압하스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자치공화국]]으로 격하되면서 조지아의 도시가 되었다. 이에 따라 수훔이라는 명칭도 조지아어의 접미사가 붙은 '수후미'(Сухуми)로 불리어, 수후미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명칭이 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압하지야 전쟁]]의 격전장이 되었고, 압하지야가 조지아로부터 사실상 독립한 이후 압하지야의 수도로 기능하고 있다. 소련 붕괴 직전 1989년 수후미의 인구는 11만명으로 [[트빌리시]], [[쿠타이시]], 루스타비, [[바투미]]에 이은 조지아 제 5의 도시였으나, 압하지야 전쟁 이후 조지아인이 대규모로 추방되고 인구가 급감하여 2018년 기준 인구는 6만 5천명 수준이다. == 기후 == 최한월인 1월에도 평균온도 5도로 따뜻한 [[온난 습윤 기후]](Cfa)다. == 교통 == 수후미 기차역에서 시작해 소치를 거쳐 러시아로 갈 수 있는 기차편이 존재한다. 소련 시대에는 기차로 조지아, 아르메니아 등 캅카스 지역으로도 갈 수 있었지만 현재는 폐쇄되었다. 수후미 항구를 통해 러시아로 갈 수 있는 부정기 여객선 편도 존재한다. 1996년까지는 튀르키예 [[트라브존]]과 통하는 여객선 편도 존재했었다. 시가지에는 트롤리버스 노선가 존재한다. == 관광 == 흑해 동안의 온난한 기후를 갖춘 도시로, 러시아 제국 및 소련 시기부터 [[크림 반도]], [[소치]] 등과 함께 인기있는 휴양지였다. 비록 압하지야가 미승인국으로서 국제적으로 불안정한 지위에 있지만, 현재에도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압하지야를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구 소련 국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이다. 제3 국가의 국민이 관광을 위해 압하지야를 방문하게 된다면, 비자 신청을 완료하고 국경을 통과한 후 수후미 시의 압하지야 외교부 영사관을 방문하여 비자를 수령해야 한다. [[파일:3427.jpg|width=540]] 그러나 압하지야 전쟁으로 시가지의 상당부분이 파괴된 이후 아직 복구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압하지야 국회나 수후미 기차역 등은 압하지야 전쟁 이후 지금까지 복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다. 압하지야의 국경일에는 방치된 국회 앞 광장에서 대규모 행사를 하는데 방치된 건물의 쇠락한 모습이 대조를 이룬다. == 관련 문서 == * [[압하지야]] [각주] [[분류:아시아의 수도]][[분류:유럽의 수도]][[분류:압하지야]][[분류:조지아의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