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만 관련 문서)] [목차] == 개요 == 1914년 [[위안스카이]]가 발표한 [[중화민국 신약법]]에 의거한 황제적 총통제를 뒷받침하는 대총통선거법. 10년 무기한 연임제에 세습제까지 사실상 보장하는 어마어마한 법률이었다. == 내용 == 1914년 12월 29일 발표. * 제1조: 중화민국 국적이 있는 남자는 참정권을 향유한다. 만 40세 이상으로 만 20년 이상 국내에 거주한 자는 대총통에 선출될 자격이 있다. * 제2조: 대총통의 임기는 '''10년이며 연임할 수 있다.''' * 제3조: 대총통의 선거를 행할 때 대총통은 민의를 대표하여 제1조가 정한 바에 따라 '''대총통에 선출될 자격이 있는 자 3인을 추천한다.''' 전항의 추천된 자의 성명은 대총통이 기일 이전에 가화금간(嘉禾金簡)에 친히 기입하여 국새로 날인하고 금궤(金匱)에 넣어 대총통부에 특별히 설치된 금궤석실에 보관한다. 전항 금궤의 열쇠 관리는 대총통이 맡고, 석쇠의 열쇠 관리는 대총통 및 참정원원장, 국무경이 분장(分掌)하며 대총통의 명령없이 개봉할 수 없다. * 제4조: 대총통선거회는 다음 각원으로 조직한다. 1. 참정원 참정이 호선(互選)한 50인. 2. 입법원 의원이 호선한 50인 전항 각호의 호선은 연기명투표방법에 의해 득표가 많은 자를 당선자로 하며, 내무총장이 이를 감독한다. 대총통선거회를 조직시 입법원이 개회기내일때는 재북경의원에서 명차가 앞에 있는 자 50인을 대총통선거회회원으로 한다. * 제5조: 대총통선거회는 대총통이 소집하며, 선거일전 3일 이내에 조직한다. * 제6조: 대총통선거회는 참정원회의장을 회의장으로 하며 참정원 원장이 회장이 된다. 참정원 원장이 부총통을 겸임하거나 기타 사고가 있을 때 입법원 의장이 회장이 된다. * 제7조: 대총통 선거일에 대총통은 대총통에 선출될 자격이 있다고 추천된 자의 성명을 대총통 선거회에 선포하여야 한다. * 제8조: 대총통선거회는 추천된 3인에 대해 투표하는 것 외에 '''현임대총통에 대해 투표할 수 있다.''' * 제9조: 대총통선거는 회원 4분의 3 이상 출석하여 단기명(單記名)투표방법을 행하며, 투표인총수 3분의 2 이상 득표한 자를 당선자로 한다; 만약 당선표수가 부족하였을 대에는 다수를 득표한 2인으로 결선을 실시하여 다수를 득표한 자를 당선자로 한다. * 제10조: 대총통을 선거하는 해에 참정원 참정은 '''정치상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3분의 2 이상의 동의로 현임대총통의 연임을 의결할 수 있으며''', 대총통이 이를 공포한다. * 제11조: 대총통의 임기가 만료되기 전 사고로 인하여 사직하였을 때에는 3일 이내에 대총통임시선거회를 조직하여야 한다. 임시선거가 거행되기 이전의 대총통의 직권은 부총통이 약법 제29조에 규정에 의하여 대행한다. 만약 부총통이 동시에 사고로 인하여 사직하거나 현재 북경에 부재중일 때 및 기타 사고로 대행할 수 없을 때에는 국무경이 그 직권을 섭행한다. 단, 제3조, 제1항, 제2항에 규정한 직권은 대행하거나 섭행할 수 없다. * 제12조: 대총통의 직권을 대행하거나 섭행하는 자는 임시선거를 실시하는 날에 대총통임시선서회회장에게 공문을 보내 의원 10인을 지명하여 보관된 금궤석실을 개봉하는 것을 감시하고, * 제13조: 현임대총통이 연임하거나 당선된 대총통이 계임할 때 모두 취임시 다음의 선서를 하여야 한다: "나는 지성으로 헌법을 준수하여 대총통의 직무를 집행할 것을 선서합니다." 헌법이 공포되어 시행되기 이전에는 전항선서문에 반드시 약법을 준수한다는 것을 성명하여야 한다. * 제14조: 부총통의 임기는 대총통과 같으며, 임기가 만료되었을 때는 연임이나 계임된 대총통이 제1조의 자격이 있는 자 3인을 추천하여 대총통선거의 규정에 준해 선거를 행한다. 부총통이 임기가 만료되기 전에 사고로 인하여 사직했을 때 대총통은 전항의 규정에 따라 선거를 행한다. * 제15조: 본법은 공포하는 날부터 시행한다. * 본법을 시행하는 날 중화민국 2년 10월 5일 선포한 [[대총통선거법]]은 페지한다. == 역사 == [[계축전쟁]]에서 승리하고 [[중화민국 국회 해산]]까지 단행한 [[위안스카이]]는 눈에 뵈는 것이 없었다. 신약법과 이 수정대총통 선거법을 통해서 그야말로 황제적 총통제와 세습제까지 보장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로도 만족하지 못한 위안스카이는 불과 다음해인 1915년 [[홍헌제제]]를 단행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됨으로 이 법도 제정 1년도 못되어 다시 폐기되었다. 하지만 위안스카이의 황제 놀음에 반발한 혁명군이 [[호국전쟁]]을 일으키자 위안스카이는 1916년 3월, 제제를 취소하고 다시 황제적 총통제로 후퇴하려 했으나 혁명군의 요구가 강력하여 전전긍긍하다가 6월에 죽고 만다. 이후 부총통 [[리위안훙]]과 국무총리 [[돤치루이]]가 정권을 잡는데 돤치루이는 수정대총통선거법과 신약법을 그대로 유지하려 했으나 남방의 반발로 인하여 결국 이를 폐기하고 임시약법과 대총통선거법으로 회귀한다. 결국 거창한 법이었으나 이 법에 의거하여 선출된 대총통은 단 한 사람도 없는 비운의 법으로 남았다. == 참고문헌 == * 신승하, 중화민국과 공산혁명, 대명출판사. * 장옥법, 중국현대정치사론, 고려원. * 박준수, 임시약법 체제와 단기서군벌정권(1916~1920), 고려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분류:1914년/사건사고]][[분류:북양정부의 역사]][[분류:중화민국의 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