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cd313a 50%, #0047a0 50%)" '''[[독립유공자|{{{#ffffff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br] {{{#ffffff '''{{{+1 송학선}}}'''[br]'''宋學先[* 문헌에 따라 宋學'''{{{+1 善}}}'''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송학선 실물.jpg|width=100%]]}}} || || '''이명''' ||송인수(宋仁秀, 宋仁壽) || || '''본관''' ||[[은진 송씨]][* [[https://news.joins.com/article/1722670|#]]] || ||<|2> '''출생''' ||[[1897년]] [[2월 19일]] || ||[[한성부]] 서서 반송방(성외) 지하계 석교동[br](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 || ||<|2> '''사망''' ||[[1927년]] [[5월 19일]] || ||[[경기도]] [[경성부]] [[서대문형무소]] || || '''묘소'''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9호 || || '''상훈'''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목차] [clearfix] == 개요 == [[사이토 마코토]] [[조선 총독]]의 암살을 시도한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이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1897년 2월 19일 [[한성부]] 서서 반송방(성외) 지하계 석교동(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천연동]])에서 아버지 송성근(宋聖根)과 어머니 [[김(성씨)|김씨]](金氏) 사이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서대문공립심상고등소학교[* [[8.15 광복]] 후 서대문국민학교로 개칭되었다가 1973년 2월 28일 [[https://www.doopedia.co.kr/photobox/comm/community.do?_method=view&GAL_IDX=101012000700273|https://www.joongang.co.kr/article/1335246#home]].]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09년, 아버지의 사업이 파산해 한동안 궁핍한 삶을 살기도 했었다. 점차 직업을 가져 돈을 벌면서 살림은 나아졌으나 직장에서 받은 차별로 반일감정이 싹트고 있었으며, 1925년에 직장을 나온 이후로 [[안중근]]과 같은 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1926년 3월에 경성사진관에 들른 송학선은 서양식 칼이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이미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암살하고자 결정한 차에 하늘이 내려준 칼이라 생각해 칼을 챙겼다. 해당 칼은 길이가 15cm에 손잡이가 흰 고급 과도로, 그는 숫돌에 칼을 갈아 날을 세우고 창틀 위에 두었다. 그 무렵 [[순종(대한제국)|순종]]이 승하하고, 송학선도 망곡대열에 참가해 통곡한다. 그러다 순종의 빈소로 통하는 출입문인 [[창덕궁 금호문]]으로 총독부의 주요 인물들이 다니는 것을 보고 여기서 총독이 지나갈 때를 노려 암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해 4월 28일, [[창덕궁]] 안으로 일본인 3명이 탄 차가 들어간 것을 본 송학선은 차가 나올 때 뛰어들어 안에 타고 있던 2명의 일본인을 죽이고 달아났다. 쫓아오는 기마 순사와 서대문경찰서의 순사 오필환에게도 중상을 입히고 달아났으나 곧 따라온 일경들에게 붙잡혔다.[* 기마 순사와 오필환도 나중에 부상이 악화되어 죽는다.] 그런데 송학선이 죽인 인물들은 사이토가 아닌 다른 일본인이었다. 당시 송의사가 죽인 일본인은 국수회(國粹會) 지부장 다카야마 다카유키(高山孝行)와 경성부회 평의원 사토 토라지로(佐藤虎次郎)였다. 함께 탑승했던 평의원 이케다 나가지로(池田長次郎)는 중상에 그쳤다. 총독을 죽인 줄 알았던 송학선은 비슷하게 생긴 다른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했다. 재판에서 일본인 변호사가 사형만큼은 면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국 사형이 구형되었고, 1927년 5월 19일 결국 [[서대문형무소]]에서 형이 집행되어 순국했다. 196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되었다. 그의 유해는 1966년 5월 18일 [[국립서울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이장되었다. 미혼이어서 직계 후손은 없다. == 참고 자료 == * 정상규 저. <잊혀진 영웅들, 독립운동가>. 휴먼큐브. 2017년. 193~194p [[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은진 송씨]][[분류:서대문구 출신 인물]][[분류:1897년 출생]][[분류:1927년 사망]][[분류:건국훈장 독립장]][[분류: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