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57년 영화]][[분류:한국의 드라마 영화]][[분류:퍼블릭 도메인/영화]][[분류:없어진 영화]][[분류:12세이상관람가 영화]] [include(틀:자유부인 시리즈)] ||||||||||||<#cf1020><:> '''{{{#ffffff [[1957년|{{{#ffffff 1957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 || || [[1956년]][br][[자유부인(영화)|자유부인]] ||→|| [[1957년]][br]'''속편 자유부인''' ||→|| [[1958년]][br][[별아 내 가슴에]] || ||<-2>
{{{#ffffff {{{+2 '''속편 자유부인''' }}} (1957) [br] ''A Lady of Freedom (sequel)'' }}} || ||<-2>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속편 자유부인 포스터.jpg|width=100%]]}}} || ||<#cf1020><:> {{{#ffffff '''감독''' }}} ||[[김화랑]] || ||<#cf1020><:> {{{#ffffff '''제작''' }}} ||박구 || ||<#cf1020><:> {{{#ffffff '''제작사''' }}} ||반도영화사 || ||<#cf1020><:> {{{#ffffff '''촬영''' }}} ||강영화 || ||<#cf1020><:> {{{#ffffff '''조명''' }}} ||최상동 || ||<#cf1020><:> {{{#ffffff '''각본''' }}} ||유호 || ||<#cf1020><:> {{{#ffffff '''편집''' }}} ||김화랑 || ||<#cf1020><:> {{{#ffffff '''음악''' }}} ||김희조 || ||<#cf1020><:> {{{#ffffff '''출연''' }}} ||[[김정림]], [[박암]], [[주선태]], [[양미희(1931)|양미희]], [[윤일봉]] || ||<#cf1020><:> {{{#ffffff '''상영일자''' }}} ||1957.01.31[*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57013100239202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57-01-31&officeId=00023&pageNo=2&printNo=10678&publishType=00020|출처]]] || ||<#cf1020><:> {{{#ffffff '''개봉극장''' }}} ||[[국도극장]] || ||<#cf1020><:> {{{#ffffff '''관람인원''' }}} ||55,341명[* [[http://www.kmdb.or.kr/db/kor/detail/movie/K/00351|출처]] ] || [목차] [clearfix] == 개요 == 전작 [[자유부인(영화)|자유부인]]의 성공을 여세로 만들어진 1957년 작 영화. 안타깝게도 필름이 남아있지 않다. == 줄거리 == 대학교수 장교수([[박암]])의 부인 오선영(김정림)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고 가정으로 돌아오지만, 다시 집을 뛰쳐나가 백광진([[주선태]])과 놀아나면서 마침내는 가정을 파국으로 이끈다. 오선영은 70만환의 사채를 갚기 위하여 다방 마담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국문학사'에 낙제가 된 학생이 찾아와서 급제를 시켜주도록 간청하고서 과자를 놓고 간다. 이 속에는 3만환짜리 수표가 들어있었다. 선영은 이 돈을 집어들고 양장점에 뛰어가고, 남편이 쓴 답안의 채점한 답안지의 '30점'을 '80점'으로 고친다. 이것이 말썽이 되어 결국 남편은 대학을 물러나고, 오선영은 다방 경영자인 백광진에게 가 관계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