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파일:4-2.jpg]] [목차] == 개요 ==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금대리 [[치악산]] 인근에 위치했던 복지원 '소쩍새 마을[* 사건 이후 승가원에서 운영 중이고 [[2005년]]에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신필리로 이전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237013|#]]]'에서 [[사기]] 행각 및 부랑자/[[장애인]]을 학대해 왔음이 밝혀진 사건. == 사건 내용 == 맨 위의 [[사진]]에도 나오는 설립자인 일력스님 혹은 일력거사라는 사람은[*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3900946|이 기사]]에 나온 [[나이]]로 보아 대략 [[1944년]]생 정도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문경시]]가 [[고향]]으로, [[본명]]은 정승우다. [[1960년대]] [[수도승]] 시절부터 고아와 장애인, 부랑자들을 이끌고 서울 변두리 지역을 이리저리 전전해 오다가 1985년부터 강원도 치악산 금대계곡에 있는 舊 금대국민학교 일론분교 매각이 공고되자 이 건물을 사서 개조하고 [[비닐하우스]]까지 차려 '소쩍새 마을'을 세워 정착한 인물이다. 이 시설이 세워지고 꾸려지는 데에는 '엄마거사' 법신(법성) 등의 도움도 있었다. 그러다가 [[1991년]] 초부터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10800209217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91-01-08&officeId=00020&pageNo=17&printNo=21351&publishType=00020|일간지]]에도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1082000329120001&editNo=15&printCount=1&publishDate=1991-08-20&officeId=00032&pageNo=20&printNo=14146&publishType=00010|실리고]] [[10월 8일]], [[KBS2]] <[[11시에 만납시다]]>에 일력이 출연하는 등 점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알려진 기폭제는 [[1992년]] [[5월 9일]], [[SBS]]에서 [[https://www.nl.go.kr/NL/contents/search.do?srchTarget=total&pageNum=1&pageSize=10&kwd=%EC%86%8C%EC%A9%8D%EC%83%88+%EB%A7%88%EC%9D%84+%EC%82%AC%EA%B3%84|<소쩍새 마을 사계>]]가 방영되면서부터였다.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격려 전화와 후원이 빗발쳤고 [[1993년]] [[8월]]부터는 [[충청북도]] [[충주시]]에 진여원까지 세워 그 세를 넓히고자 했다. '''이때까지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진정한 문제는 그 이후부터였다.''' [[1995년]] [[7월 4일]], [[MBC]] [[PD수첩]] <소쩍새마을의 진실>[* 당시 취재는 훗날 울산MBC와 MBCNET 사장을 지내게 된 윤길용 PD가 맡았다.]이 방영되면서 그 추악한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된 것이다. 1달에 7~8억 씩이나 되는 기부금을 [[횡령]]하고, 복지원의 아동들을 폭행하고, 인근의 다른 복지원인 [[꽃동네]]에 버리기도 하고, [[성폭행]]까지도 했던 것. 심지어 [[절(불교)|절]]에 오는 여성 신자들을 성폭행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 사건이 발각된 뒤 일력은 [[중국]]으로 도망갔다가 이후 자진귀국했고 결국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5/1959945_19450.html|구속되었다]]. 구속 이후 어떤 선고가 내려졌는지는 불명이나 [[2005년]] PD수첩에서 방영한 15주년 특집에 의하면 [[중국]]을 떠돌다 약물 중독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http://www.imbc.com/broad/tv/report/1454527_1956.html|#]] 이 사건의 여파로 한동안 [[기부]] 문화는 주춤하게 되었으며 소쩍새 마을은 [[중앙승가대학교]]에 넘겨지게 되었다. 반면 [[아내]]였던 법신 거사는 [[1996년]]에 승가원 법인 설립 과정에서 일부 원생 30여 명을 이끌고 충주 진여원으로 돌아가 [[2002년]]까지 [[http://www.jinyuwon.org/page/view.php?m_id=10|주지로 재직했다.]][* [[http://news.donga.com/3/all/20000512/7534675/1|2000년 동아일보 기사]]] [[2017년]]에 [[이영학|이와 비슷한 사기 행각]]이 밝혀지면서 다시 주목받은 사건이다. == 더 드러난 추악한 실상 == 게다가 일력은 사실은 대한 [[불교]] 어느 종단에도 소속된 적도 없고 [[승려]] 양성 과정조차도 공식적으로 거친 적도 없으며 원래는 진짜 승려였다가 여신도와의 염문 문제로 승려직을 박탈당해서 [[땡추]]로 강등된 [[석용산]]과 달리 땡추조차도 아닌 완전한 가짜 승려이자 사기꾼이었다. 착복한 [[화폐|돈]]은 [[유흥]]과 [[도박]]으로 다 탕진하고 심지어 [[유흥업소]]를 이용할 때는 [[승복#s-1|승복]]이 아닌 평상복을 입고 나갔다고 한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그런 추악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사기꾼]]에 악질 [[범죄자]]일 뿐이다. [[PD수첩]]에서 잠입취재를 한 PD가 원생에게 "밥 맛있냐?"고 물어보자 [[정신지체]]를 가진 원생은 "맛있다."고 건성으로 대답한 뒤 기자를 끌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맛없다."고 [[하소연#s-1|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누가 들을까봐 겁을 내던 모습까지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일력이 평소에도 원생들에게 둔기로 무자비하게 폭행을 가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는데 이 원생의 급박한 모습에서 혹시 일력이 듣기라도 하면 죽도록 맞을까봐 두려워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는 따뜻한 [[스님]]인 줄 알았던 사람이 실제로는 원생들을 상습 구타, 학대, 성희롱에 기부금 착복으로 [[본인]]의 부나 축적하는 악랄한 [[악마]]였으니 대중들의 충격은 상당했을 것이다. 게다가 원생들이 지내는 숙소는 [[벌레]]와 [[쥐]]까지 들끓는 등 그야말로 비참할 수준의 거지 소굴이나 다름없었으며 심지어 이런 열악하고 지저분한 환경 속에서 병까지 걸려 죽은 원생을 자기 직원을 시켜 야산에 버리고 오라고까지 하는 것도 통화 내용으로 방송을 타는 등 당시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결국 이 사건 역시 철저히 검증도 안 거치고 미담거리부터 찾는 언론사와 잡지사의 [[황색언론|황색저널리즘]]의 적절한 케이스가 되어 버린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언론사와 [[기레기]]들의 행태는 이후에도통 고쳐지지 않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똑같은 실수를 자꾸만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 탓에 미담을 가장해 언론사를 이용해먹은 파렴치범들인 [[두타스님]], [[이영학]] 같은 악랄한 인간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인데도 말이다. 또 앞에서 언급한 세 명처럼 남을 해치지는 않았지만 대중들에게 불행한 인생과 암 투병을 강조하며 동정심을 유발해 사기를 친 [[최성봉]]도 바로 이런 케이스. == 사건 이후의 소쩍새 마을 == 사건 이후 이곳은 [[대한불교 조계종]] 예하 [[중앙승가대학교]]에서 인수했다. 승가대학은 사회복지법인 승가원을 설립하고 소쩍새 마을을 운영했다. 당시 시설이 너무 열악하여 기존 건물은 모두 철거하고 가건물 3개동을 신축하여 시설 개선을 하였다. 가건물로 지은 [[이유]]는 소쩍새 마을이 위치한 장소가 치악산 국립공원 안이라 건물 신축에 제한이 많았기 때문. 운영이 정상화되자 후원도 다시 시작되었고 아이들도 늘어났지만 국립공원 내부라 더 이상의 시설 개선은 힘든 상황이었다. 따라서 승가원은 2005년에 경기도 이천시 설성면 신필리에 터를 잡아 새로운 시설을 건립한 뒤 [[2006년]] [[10월 29일]]자로 소쩍새 마을은 그쪽으로 이전했고 이름도 "자비복지타운"으로 [[개명]]했다. == 여담 == 일력도 [[2017년]]에 [[어금니 아빠 살인사건]]으로 추악한 실상이 드러난 [[이영학]]과 마찬가지로 [[언론플레이]]에 능했고 선량한 거사인 것처럼 자신을 철저하게 포장했다고 한다. 심지어 양손 중지와 약지가 붙은 장애가 있다는 걸 이용해서 언론플레이를 하고 대중들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등[* 잡지사와의 인터뷰 땐 중지와 약지가 붙은 손을 은근히 촬영되게 보여주는 식이었고 TV에서 실시간 카메라를 돌릴 때도 은근히 이런 손을 보이게 하는 수법.] 그런 방법으로 상당한 기부금을 모으고 [[언론]], 잡지를 통해 꾸준히 언론플레이를 했다. 이영학이 [[본인]]과 [[딸]]이 [[거대백악종]] 환자임을 강조했듯이 일력거사도 어렵게 소쩍새 마을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고 사진을 찍을 때 [[장애]]가 있는 양쪽 검지와 중지를 일부러 보이도록 [[사진]]을 찍는 수법으로 동정심을 자아내는 등 언론을 이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 마디로 [[언더도그마]] 효과를 노린 수법이라고 할 수가 있으며 미담거리만 찾으면 된다는 식의 당시 언론들의 안일함도 이런 사기극을 부추겼다고 볼 수 있겠다. PD수첩 취재 당시 담당 PD[* 뒤에 [[울산MBC]] 사장을 지낸 윤길룡 [[PD(방송)|PD]].]는 목숨을 걸고 촬영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 일력이 힘센 정신지체아나 [[농아]]들을 부리면서 힘이 약한 원생들을 학대하는 데 동원하였고 소쩍새 마을 안에 일력을 따르는 힘센 원생들을 호출하기 위한 큰 [[종(악기)|종]]까지 설치돼 있었다고 한다. 일력 자신도 젊은 시절부터 가짜 의료 행위에 청부폭력을 일삼던 [[폭력배]]였으며 체구가 워낙 크고 힘이 장사였다고 한다. 양손 검지와 중지가 붙은 장애가 있긴 했지만 일상생활에는 전혀 문제 없는 수준이었고[* 수술을 통해 검지와 중지를 분리하면 바로 비장애인이 되는 수준이었다. 분리수술을 받지 않은 것도 자신의 그러한 장애를 이용하기 위해 일부러 안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PD수첩 촬영팀에 "내가 돌면 너는 죽어!"라고 하며 협박을 일삼기도 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영락없는 '''[[1990년대|90년대]]판 [[이영학]]'''. [[분류:1990년대 사건사고]][[분류:장애인 학대/대한민국]][[분류:원주시의 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