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남제 황제)] [include(틀:역대 소량 황제)] ||<-2>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115deg, #3797E8 50%, #00C499 50%)" '''{{{#FFFFFF 소제 추존 존령 [br] 소량 추존 존령}}}'''[br] {{{#FFFFFF {{{+1 '''淮陰府君 | 회음부군'''}}}}}}}}} || || '''묘호''' ||없음 || || '''시호''' ||회음부군(淮陰府君) || || '''성''' ||소(蕭) || || '''휘''' ||정(整) || || '''부친''' ||[[소예(서진)|소예]] || || '''생몰''' ||? ~ ? || [목차] [clearfix] == 개요 == [[자(이름)|자]]는 공제(公濟)였으며, 동해군(東海郡) 난릉현(蘭陵縣) 중도리(中都里) 출신으로, [[소예(서진)|소예]]의 아들이며 [[제(육조)|남제]]를 건국한 고제 [[소도성]]의 고조부, [[양(육조)|소량]]을 건국한 [[양무제]] 소연의 천조부였다. == 생애 == [[서진]] 말기 회음현령(淮陰縣令)을 역임했다. [[영가의 난]] 당시 강을 건너 아들 [[소할]]과 함께 진릉군(晉陵郡) 무진현(武進縣) 동성리(東城里)로 이주했으며, 이후 북방인이 강의 왼쪽, 이주인이 본토에 정착한 뒤 남난릉군(南蘭陵郡)이라 했다. 이후 소정의 자손들은 남난릉군의 관료 직위를 역임했다. 후에 증손인 [[소도성]]이 [[제(육조)|남제]]를 건국하자 '회음부군'(淮陰府君)으로 [[추존]]되어 남제의 [[칠묘]]에 위패가 안치되었고, 현손인 [[무제(양)|소연]]이 [[양(육조)|소량]]을 건국하자 '회음부군'(淮陰府君)으로 재추존되어 양나라의 [[칠묘]]에도 위패가 안치되었다. == 가족 == 그의 조부는 [[소표]]로 생전 [[서진]]의 광릉군승(廣陵郡丞)을 역임했고, 남제가 건국되자 '광릉부군'(廣陵府君)으로 추존되어 남제의 칠묘에 배향되었다. 소정에겐 세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각각 이름은 [[소준(즉구부군)|소준]], [[소할]], 소열(蕭烈)로, 소준은 동진의 즉구현령(即丘縣令)를 지냈고, 남제가 건국되자 '즉구부군'(卽丘府君)으로 추존되어 남제의 칠묘에 봉안되었다. 소할은 동진 시기 남난릉군(南蘭陵郡)의 제음군태수(濟陰郡太守)를 지냈으며 소량이 건국되자 '제음부군'(濟陰府君)으로 추존되어 양나라의 칠묘에 봉안되었다. 소열(蕭烈)의 행적은 전해지지 않는다. [[분류:서진의 인물]][[분류:칠묘 배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