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최남선]]이 발간한 [[대한민국]] 최초의 [[잡지]]. 잡지의 날은 이 잡지의 발행일인 11월 1일에서 유래했다. <소년>은 최남선의 주도 하에 1908년 11월부터 1911년 5월까지 통권 23호를 발행하였으며 역사, 지리, 어문학, 자연과학 등 다방면에 거친 근대적 지식을 전파함으로써 계몽에 기여했다. 근대 한국어 문체 선택을 둘러싼 논쟁을 일단락 짓고 한국어 통사구조를 충실하게 따르는 글쓰기를 견지했다. 또한 처음부터 '소년과 그 학부형' 을 타겟팅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신문이나 문학지와는 근본적인 차이를 두었으며 본격적으로 이들의 소비 욕망에 부응하는 편집 체제를 유지했다. <거인국표류기>, <로빈손무인절도표류기> 등 소년을 겨냥한 작품을 꾸준히 번역하였으며 소년의 계몽에 중점을 두었다. <소년>은 [[유길준]]과 [[이광수(소설가)|이광수]]의 국한문혼용체론을 창조적으로 발전시켜서 갑오개혁 이후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있던 우리글을 만들어 냈다. 한국어 구어체에 기반해 다양한 번역체들을 수입하여 [[문체]] 확립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소설에서 지문과 대화 내용을 구분하였으며 서구에서 띄어쓰기와 문장 부호를 본격적으로 수입하였다. <[[해에게서 소년에게]]>에서 의성어와 의태어를 순한글로 표현한 것 또한 혁명적이라고 할 수 있다. 번역에는 주로 [[코드 스위칭]]의 방법이 이용되었다. 일본어의 한자어 부분은 그대로 유지하고 한자어 부분들을 이어주는 조사 역할을 했던 [[가나(문자)]] 부분만 한국어의 조사로 적당히 고치는 것이었다. 이는 이미 자리잡혀 있던 일본어 문체와 일역본들을 활용하여 한글을 양적, 질적으로 풍성하게 하는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최남선]]은 [[톨스토이]] 문학에 주목하였다. 이는 슬라브 민족의 침통하고 신비적인 성격, 국가를 진동시키는 반항의 소리로서의 톨스토이 문학에 감명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종교적이고 평화주의적인 사상도 번역 작품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다. 1909년 7월호에 실린 <현시대대도사 톨스토이선생의 교시>에서 최남선은 톨스토이를 '현시대 최대의 위인'이자 '그리스도 이후의 최대 인격'이라고 상찬하면서 '대강 그의 행사를 아는 사람은 다 숭고하고 장엄한 입으로 말하기도 어렵고 붓으로 그리기도 어려운 특별한 감동이 일어나지 않은 이 없다'고 말한다. 1910년 12월에 간행된 '톨쓰토이선생하세기념' 특집호에서는 톨스토이를 기리면서 부활을 비롯한 명저를 조선어로 번역하지 못했다는 아쉬움과 함께 기존에 번역하였던 <사랑의 승전>, <조손삼대>, <어룬과 아해> 에 추가하여 <한 사람이 얼마나 땅이 잇서야 하나>, <차관>, <너의 니웃> 을 소개했다. 새로 소개된 번역들은 길이와 내용에서 볼 때 본격적인 단편 번역이라 할 수 있다. 이광수는 이렇게 확립된 문체를 통해 <헌신자> 를 창작함으로써 본격적인 우리 근대 문학의 문을 열었다. 출처 : 정선태, 「번역과 근대 소설 문체의 발견 - 잡지 『소년』을 중심으로」, 『대동문화연구』, 48, 2004, 73-97. [[분류:잡지]]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소년, version=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