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1 성혜랑}}}[br]成蕙琅''' || ||<-2>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dimg.donga.com/6897526.1.jpg|width=100%]]}}} || ||<|2> '''출생''' ||[[1936년]] [[1월 14일]][* 음력 1935년 12월 20일]([age(1936-01-14)]세) ||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계동]] || || '''본관''' ||[[창녕 성씨]] || || '''학력''' ||[[김일성종합대학]] || [목차] [clearfix]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43333.jpg|width=100%]]}}} || || [[1992년]] [[2월 16일]] [[김정일]]의 생일에 촬영된 사진. 왼쪽부터 성혜랑 본인, 조카 김정남, 모친 김원주, 딸 리남옥.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333989933.jpg|width=100%]]}}} || || [[1941년]] 등나무집 풀밭에서 [[성혜림]], 어머니 김원주, 사촌언니와 함께.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87811111.jpg|width=100%]]}}} || || [[1942년]] [[서울]] [[왕십리]] 집에서 성혜랑-[[성혜림]] 자매. || [[1936년]] [[서울특별시|서울]] [[종로구]] [[계동]] 출생. 성씨의 고향집은 그 유명한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 집의 바로 옆집([[현대그룹]] 사옥 뒤쪽)이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진명여자고등학교|진명여자중학교]]와 [[이화여자고등학교]]를 거쳐 1948년 부모를 따라 [[월북]]하였으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하고 교원 생활을 하다가 후에는 잠시 작가 활동을 했다. 남한에서 지내다가 피살된 [[이한영]]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들인 [[이한영]]이 남한으로 떠난 뒤 서로를 그리워했고 십수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전화 연락이 닿아서 [[북한]]을 탈출한 후 아들과 재회할 날을 기다렸으나 아들이 피살되어 끝내 만나지 못했다. [[김정일]]의 동거녀이자[* 일부 언론에서 첫째 부인이란 식의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김정일과 성혜림은 정식으로 결혼한 적이 없다.] [[김정남(북한)|김정남]]의 어머니로 유명한 [[성혜림]]의 언니다. 사고로 일찍 남편을 잃고 평양에서 아들 [[이한영]]과 딸 이남옥을 키우면서 살다가 김정남이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김일성의 집으로 들어가 김정남을 돌보고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김정남의 존재는 오랫동안 비밀이었기 때문에 학교 갈 나이가 되어도 입학을 할 수 없어서 이모인 성혜랑을 가정교사로 들여 공부를 시켰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성혜랑과 성혜랑의 어머니 김원주까지 모두 좋은 대접을 해 주면서 깍듯이 대했다고 한다. 한때 북한 주민이었으나 현재는 서방으로 망명했다. 남한에는 '성혜림의 언니', '김정남의 이모', '[[이한영]]의 어머니'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서방으로 망명한 후에는 <남한에서 수기 소식을 전합니다>, 회고록 <등나무집>을 출간했다. 이들 수기에는 소식을 알 수 없었던 월북 예술인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기도 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333432443.jpg|width=100%]]}}} || || 성씨의 딸 이남옥 씨가 공개한 사진. 1990년 김정남과 같이 사냥을 나간 모습이다.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44443534544.jpg|width=100%]]}}} || || [[1980년]] 원산해수욕장에서 조카 김정남, 어머니 김원주, 딸 리남옥과 함께. || == 망명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11111111181111111.jpg|width=100%]]}}} || || 아들 [[이한영]]씨. || 아들 이한영이 1982년에 스위스에서 먼저 남한으로 떠났고 1992년에는 딸 이남옥마저 서방으로 [[망명]]했으며 [[불어]]와 [[영어]]에 능통한 딸과 서방의 모 국가의 도움으로 1996년 1월 5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탈출하여 [[스위스]]를 거쳐 서방으로 망명했다.[* 한국과 서방의 언론은 한때 "[[성혜림]]까지 같이 망명했다"고 보도했으나 성혜림은 [[스위스]]까지 따라왔다가 심경의 변화를 느껴 다시 [[모스크바]]로 되돌아갔다고 하며 2002년 모스크바에서 지병으로 사망했다.] 서방으로 망명한 이유는 1982년에 이미 서방으로 탈출하여 [[대한민국]]으로 망명한 아들 [[이한영]]과 같이 살기 위해서였다. 성혜랑, [[성혜림]] 자매는 유독 [[모성애]]가 강했는데 그것은 어머니이자 당시 신여성이었던 [[김원주]]의 영향인 듯하다.[* 김원주는 자기를 따라 월북한 17살짜리 아들(성일기)을 북한 당국의 명령에 따라 남한에 내려보낸 후 두 번 다시 못 만나게 되자 그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언니 성혜랑이 아들 [[이한영]] 때문에 망명한 것처럼 여동생 성혜림도 아들 김정남 때문에 망명을 거부한 셈이다. 하지만 아들 이한영은 어머니가 탈출한 지 1년 후인 1997년에 [[이한영 암살 사건|북한 공작원의 총에 맞아 숨졌다.]] 당시 이한영은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 현대아파트에 살던 대학 선배 김모 씨에게 더부살이하고 있었는데 2월 15일 오후 9시 52분경 선배의 집 엘리베이터 앞에서 2명의 북한 공작원에게 총격을 받은 뒤 [[분당차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특히 그날은 [[김정일]]의 생일이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7021700289101001&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7-02-17&officeId=00028&pageNo=1&printNo=2805&publishType=00010|기사]][* 공교롭게도 [[황장엽]]이 망명을 신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하였다.] == 근황 == 1995년 10월 20일 오후 6시경 아들 이한영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13년만에 극적으로 연락이 닿게 되면서 정부의 주선으로 같은 해 11월 15일 오빠 성일기와 [[러시아]] 외진 곳의 코스모스 호텔에서 47년만에 극적으로 만나 [[망명]] 의사를 밝히고 이듬해 1월 5일 아들 이한영을 만나러 남한으로 가기 위해 일기장, 약, 그리고 작가 출신답게 [[안톤 체호프]]의 단편소설 몇 권을 가지고 당시 살고 있던 [[모스크바]]에서 서방으로 망명했다. 이때 북한에 자극을 주지 않기 위해 당장 남한에 오는 것이 아니라 1~2년 정도 서방에 살다가 남한으로 올 것을 아들 이한영에게 미리 밝혔다. 1996년 당시까지만 해도 이한영은 남한에서 연이은 사업 실패로 좌절을 맛보고 있었고 국가의 도움도 더 이상 받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인 성혜랑은 자서전 <등나무집>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내가 고향으로 간다면 그래도 당국이 내 아들 뒤 정도는 봐주겠지" 하는 생각으로 탈출하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후 이한영이 남한에서 암살당하면서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그녀는 서방의 모처에 머물면서 드문드문 [[서울]]에 살고 있는 친오빠 성일기와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고 한다. 대외적 활동은 전혀 하지 않고 있으며 그녀의 딸인 이남옥 씨가 드문드문 언론과 비공개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의 근황을 전하고 있다. 이남옥은 망명 후 [[프랑스]]에 정착할 수 있게 도움을 준 프랑스 정보기관요원의 아들인 [[프랑스인]] 남자와 결혼하여 아들 2명을 두고 남편과 함께 사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남옥의 남편은 현재는 대외적으로는 캄보디아에서 호텔 사업을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는 위장이며 실은 프랑스 정보기관의 동남아시아 담당자로 파악된다. 조카뻘인 [[김한솔]]의 [[김한솔/망명|망명]]에도 개입하였다고 알려져있다.[[http://biz.heraldcorp.com/military/view.php?ud=2017030900097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222222222222222.jpg|width=100%]]}}} || [[김정남(북한)|김정남]]은 그녀의 탈북 이후 북한 내에서의 입지가 약해졌고 설상가상으로 도쿄에서 밀입국을 시도하다가 강제추방되어 [[김정일]]의 눈 밖에 나면서 남동생 [[김정은]]에게 후계 다툼에서 밀렸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오히려 성혜랑의 탈북으로 김정남이 김정일의 신임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의견도 있다. 한편 조카 김정남은 2017년 2월 13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김정남 피살 사건|독극물 공격으로 피살당했다.]] [[분류:북한이탈주민]][[분류:종로구 출신 인물]][[분류:1936년 출생]][[분류:김일성종합대학 출신]][[분류:월북한 인물]][[분류:창녕 성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