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성충.jpg]] [[파일:성충(백제).jpg]] || 이름 || 성충(成忠), 정충(淨忠), 선중(善仲)[* [[일본]] 등씨가전의 기록.] || || 성씨 || 미상[*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는 백제 왕족과 같은 부여씨로 기록하고 있지만, 다른 사료와 교차되지 않는 부분이라 불명. 다만 좌평에 오른 점을 볼 때, 왕족 혹은 [[대성팔족]]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 || 생년 || 미상 || || 몰년 || 656년 || || 관등 || [[좌평]](佐平) || || 국적 || [[백제]] || [목차] == 개요 == [[백제]]의 군인, 장군, 관료이자 사망 직전까지 오로지 백제의 영광과 군사력 강화와 영토 팽창만을 위해 일하고 달렸던 [[충신]]. 정충(淨忠)이라고도 하며 [[일본]] 등씨가전에서는 선중(善仲)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의자왕 시대 백제의 대들보 역할을 했던 최고의 지략가이며,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대야성을 함락시킨 명장 [[윤충]]과 형제이다. 모든 서씨 시조 [[서신일]](徐神逸)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전 10시에 효양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산21(경기 이천시 부발읍 산촌리 329)에서 거행된다. [[서필]] (徐弼)선생,[[서희]] (徐熙)선생 시제는 매년 11월 첫째주 토요일 오후 2시에 경기 여주시 산북면 후리에서 거행된다. [[이천서씨]]는 통일신라 아간대부 [[서신일]](徐神逸),내의령 [[서필]](徐弼),내사령 [[서희]](徐熙),문하시중 [[서눌]](徐訥) 좌복야 [[서유걸]](徐惟傑),평장사 [[서정]](徐靖),우복야 [[서균]](徐均) 판대부사 서린(徐嶙), 평장사 [[서공]](徐恭) 추밀원사 [[서순]](徐淳) 등 7대가 연속 재상이 되어 고려의 최고 문벌 귀족 가문으로 성장한다. [[고려]] 초기에 나라의 기틀의 튼튼히 한 [[서필]](徐弼)이다. 이어 손자 [[서희]](徐熙)와 증손자 [[서눌]](徐訥) [[서유걸]](徐惟傑) [[서유위]](徐惟偉) [[서주행]](徐周行), 고손자 [[서정(고려)|서정]](徐靖) [[서존]](徐存),[[서균(고려)|서균]](徐鈞) [[서린(고려)|서린]](徐璘), [[서원(고려)|서원]](徐元) [[서공(고려)|서공]](徐恭) [[서성(고려)|서성]](徐成) [[서순(고려)|서순]](徐淳),[[서숭조]],[[서희찬]],[[서능]](徐稜),[[서효손]],[[서신계]], [[서린(고려1)|서린]](徐鱗),[[서성윤]],[[서념]],[[서원경(고려)|서원경]],[[서충(고려)|서충]],[[서신(고려)|서신]],[[서윤(고려)|서윤]],[[서후상]],[[서윤현(고려)|서윤현]] 등이 15대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대구달성서씨(大丘達城徐氏)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주행]](徐周行 달성군)-[[서한(고려)|서한]](徐閈 군기소윤 종3품.차관)-[[서신(고려1)|서신]](徐愼 이부판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무질]](徐無疾 밀직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진(고려)|서진]](徐晉 판도판서 정3품.장관)-[[서기준(고려)|서기준]](徐奇俊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영(고려)|서영]](徐穎 문하시중찬성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균형]](徐鈞衡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 [[서익진]](徐益進 판전객시사 종2품.부총리 재상)-[[서침]](徐沈 조봉대부 정3품.장관) [[서의(고려3)|서의]](徐義 호조전서 정3품.장관) 이다 [[연산 서씨]] 계보는 [[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직]](徐稷 연성군)-[[서준영(고려)|서준영]](徐俊英 연성군)- [[서보(고려1)|서보]](徐寶 공조전서.정3품 .장관) 으로 이어진다. [[부여 서씨]] 계보는 [[온조왕]](溫祚王)-[[근초고왕]](近肖古王)-[[무령왕]](武寧王)-[[의자왕]](義慈王)-[[부여융]](扶餘隆)-[[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춘(고려)|서춘]](徐椿 판내부사사 정2품.부총리 재상) [[서박]](徐樸 봉례공) 으로 이어진다. 남양[[당성 서씨]] 계보는 [[서간]](徐趕 태사.남양군. 종1품. 국무총리 재상)-[[서신일]](徐神逸 아간대부 정2품.부총리 재상)-[[서필]](徐弼 내의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희]](徐熙 내사령 종1품.국무총리 재상)-[[서유걸]](徐惟傑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존]](徐存 병부상서 정3품. 장관)-[[서청습]](徐淸習 판전의시사 정2품.부총리 재상)-[[서효리]](徐孝理 좌복야 정2품.부총리 재상)-[[서찬]](徐贊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희팔]](徐希八 정당문학 종2품.부총리 재상)-[[서적(고려)|서적]](徐迪남양군)으로 이어진다. [[서씨일가연합회]] [[https://band.us/@seosarang]] == 생애 == 기록에는 백제의 당시 최고 관직이었던 좌평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의자왕은 타락하기 전까지는 몹시 유능한 성충을 중용하며 몹시 아꼈으나, 656년 3월 부로 [[의자왕]]이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타락하여 정사는 멀리 한 채 사치 및 향락에 빠지자 적극적으로 말렸지만, 이에 의자왕이 분노해 끝내 투옥되면서 조정에서 의자왕에게 충언을 하는 자들은 다 사라졌다. 28일 동안 [[단식]]했고[* 스스로 단식한 게 아니라 의자왕이 [[음식]]을 일절 못 주게 하였다는 설도 있다.] 끝내 옥중에서 숨을 거두게 되는데, 사망 직전 자신의 [[피]]로 의자왕에게 [[혈서|마지막 간언을 지어 올리게 된다]]. >'''충신은 죽어도 임금을 잊지 않는 것이니 한 말씀 아뢰고 죽겠습니다. 신이 항상 형세의 변화를 관찰하였는데 반드시 전쟁은 일어날 것입니다. 무릇 전쟁에서는 반드시 지형을 잘 살펴 선택해야 하는데 상류에서 적을 맞아야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다른 나라 병사가 오거든 육로로는 침현(沈峴)을 지나지 못하게 하고, 수군은 기벌포(伎伐浦)의 언덕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여, 험준한 곳에 의거하여야만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의자왕은 이조차 듣지 않았고, 또다른 충신 [[흥수]]도 옥중에서 비슷한 간언을 했지만 이 또한 의자왕이 개무시해[* 다만 완전히 개무시했다기보다는 투옥되어 나라에 앙심을 품은 자의 의견이라 믿을 수 없다는 다른 대신들의 상소 때문에 결정을 내리는 게 늦어져서 저렇게 되었다는 추측이 있다. 실제 [[사료]]에서 흥수가 간언을 하자 무시하기는커녕 성충과 똑같은 얘기 아니냐면서 빨리 저대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의자왕이 다급해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중요한 건 자국에서 손꼽히는 [[브레인]]이자 충신 2명이 제시한 작전을 결국 못 써먹었다는 거다.] 결국 [[나당연합군]]이 쳐들어왔을 때 험한 지형에서 방어하는 대신 벌판에서 막으려다 끝내 참패했고, 의자왕은 뒤늦게 성충의 말을 듣지 않아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이 후회스럽다고 탄식했지만, 이미 지나간 버스. 당시 [[일본]]의 [[역사서]] 등씨가전(藤氏家傳)에서 등장한 평가를 보자면 '[[신라]]에는 [[김유신]], [[백제]]에는 성충, [[고구려]]에는 [[연개소문]], [[당나라]]에는 [[위징]]과 더불어 당대의 준걸로서 이름을 만리에 진동시켰다'라는 언급이 있다. 즉, 당대에 백제를 대표하는 명신으로 평가받았다는 뜻이다. 한국에서 비교적 묻혀서 그렇지 당대 [[네임드]]와 어깨를 견주는 위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지략이 무척 뛰어나서 단재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서도 그의 비범한 행적이 서술되어 있다. 어린 시절[* 다만 일설에 의하면 어린 시절이 아니라 중노년 시절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적국에서 선물로 음식을 보내자 사람들이 기뻐하며 열어보려는데, 적장이 갑자기 선물을 보낸 게 뭔가 수상하다고 생각한 뒤 다 불태우라고 지시하자 그렇게 했는데, 안에는 많은 양의 무서운 땡삐([[땅벌]])들이 불에 타 죽어 있었고, 그 다음에도 선물이 오자 또 속을 줄 아냐며 불 속에 집어던지려고 하자 이번엔 그냥 열어보게 했는데, 거기엔 [[폭발물]]들인 유황과 염초가 들어있었다. 그 다음에도 선물이 오자 이번에는 톱으로 켜게 했는데, 그러자 그 안에서 사람의 비명소리와 함께 핏자국이 나왔다. 그 안에 있던 것의 정체는 칼을 쥔 자객으로, 톱질로 인해 허리가 끊어져 죽어 있었다고 한다. 만일 멋모르고 열었다면 성충은 그 놈에 의해 개죽음을 당하고도 남았을 일.[* [[곽재우]]가 [[임진왜란]] 당시 이런 비슷한 작전을 썼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 단재 신채호가 참고한 [[야사(역사)|야사]]의 저자가 곽재우의 전설을 차용하여 성충의 일대기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신채호는 열정과 달리 가난한 형편으로 인해 정밀한 사료 비평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나 구한말에 발간된 야사들이 대거 조선상고사 등에 실리게 되었다.] == 기타 == * [[신채호]]의 [[조선상고사]]에 따르면 성충은 백제의 [[왕족]]인 부여씨(夫餘氏)로 [[윤충]]이 그의 동생이라고 한다. 연개소문에게 편지를 보내 설득시켜 [[태종 무열왕|김춘추]]를 난처하게 하는 등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지만 이후 [[임자(백제)|임자]]의 참소를 받아 의자왕에게 박대당해 뜻을 펴지 못했다고 전한다. * [[조선]] 말 [[청구영언]]에서 성충의 [[시조]] 2수가 나오지만 후대의 위작이라는 견해가 많다. * [[김동인]]은 성충에 대한 단편 [[소설]]인 좌평 성충을 저술했으며 현대에는 [[충청남도]] [[부여군]]의 [[부소산]]에 있는 사당인 [[삼충사]]에서 흥수, 계백 등과 함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모셔지고 있다. * 그가 막아야한다고 충언하였던 [[기벌포 전투|기벌포]]에서 신라가 당나라를 물리쳤다. 그의 작전이 맞았던 셈. == 대중매체에서 == [[백제]] 최후에 활약한 [[신하]]이자 마지막 [[충신]]다운 모습을 보이고 사망했기에 당대를 그린 작품에는 거의 빠짐없이 등장한다. * 1992년 [[KBS]] 드라마 <[[삼국기]]>에서는 배우 [[김갑수]]가 연기했다. 당대 [[귀족]]답게 [[칼]]을 잘 쓸줄 알면서도 백제의 지략가 역할을 잘 표현했고 [[연개소문]]과 직접 만나 여제 [[동맹]]을 성사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김유신]]이 준비한 [[미인]]계와 이간책에 당하며 [[감옥]]에서 숨을 거두는 것으로 묘사된다. 극 후반에 성충이 투옥된 것을 확인하고 군사를 몰고 오려는 [[계백]]([[유동근]] 분)을 말리는 충신의 모습을 보였으며 그가 옥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의자왕]]([[길용우]] 분)이 무척 슬퍼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의자왕 역의 [[길용우]]와 성충 역의 [[김갑수]]는 현재 같은 [[후너스엔터테인먼트]] 소속이다.] * 2011년 [[MBC]] 드라마 <[[계백(드라마)|계백]]>에서는 배우 [[전노민]]이 연기했다. 가잠성의 [[신라]]군에게 [[포로]]가 되어 있던 모습으로 처음 등장한다. 사택 [[가문]]과 맞서는 의자왕 친위 그룹의 역할을 감당했으며 주변 인물들간의 충돌을 잘 조율하는 진중한 성품으로 등장한다. [[은고부인|은고]]의 세작 혐의를 조사하던 중 그녀가 [[반역]]을 도모했다는 것을 밝혀냈으나 이를 의자왕에게 고하기 전에 살해당하며 퇴장한다. 첫 등장부터 퇴장까지 MBC [[사극]]답게 실제 [[역사]]적 [[고증]]과는 거리가 멀다. * 2012년 [[KBS]] 드라마 <[[대왕의 꿈]]>에서는 배우 김원배가 연기했다. [[태종 무열왕|김춘추]]와 연개소문의 회담에서 등장했지만 이 사료에서 보여준 조목조목 단점을 지적해 연개소문이 신라와 결렬시키는 것은 안 나오고 먼저 와서 동맹 이야기를 선수를 했지만 말빨이 뛰어난 김춘추에게 정면 승부에서는 밀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밝혀진 사실과도 많은 괴리가 있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 대체역사물 <백제의 이름을 잇다>에서는 역시나 무시당하고 사망하는건 똑같으나 [[주인공]]이 신라 및 [[당나라]]와의 1차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2차 전쟁에서 그의 계책을 채택해 당나라 [[수군]]을 성공적으로 격퇴하면서 죽어서나마 그 뜻을 이루게 되었다.[* 언급을 보면 몇 년 동안의 수위나 장마로 인한 변수까지 싹 다 고려한 철두철미한 [[방어]] 계획이었다. [[권력]] 불안이라는 이유로 채택 안한 의자왕과 당시 [[왕당파]]들이 한심해 보일 지경.]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성충, version=46, paragraph=2)] [각주] [[분류:656년 사망]][[분류:백제의 인물]][[분류:아사한 인물]][[분류:옥사한 인물]] [include(틀:포크됨2, title=성충(백제), d=2022-07-14 21:4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