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379년 출생]][[분류:422년 사망]][[분류:하동 설씨]] [include(틀:위서(북조))] [include(틀:북사)] [목차] == 개요 == 薛辨 (379년 ~ 422년) [[오호십육국시대]]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 [[북위]]의 관료로 자는 윤백(允白). == 생애 == 설변의 조상은 촉(蜀)에서 하동군(河東郡) 분음현(汾陰縣)으로 이주하여 이곳에서 살았으며, 설변은 설강(薛强)의 아들로 태어났다. 설강이 죽은 뒤 설변은 다시 부락을 거느리며 [[후진(오호십육국시대)|후진]]에서 상서랑(尙書郞), 건위장군(建威將軍), 하북태수(河北太守)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설변은 점점 교만해져서 민심을 잃어버렸다. 417년, [[동진]]의 [[무제(유송)|유유]]가 북벌을 단행하여 후진이 멸망했다. 설변은 이때 유유에게 항복하여 동진에서 영삭장군(寧朔將軍), 양평태수(平陽太守)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같은 해에 동진의 수도 건강에서 [[유목지]]가 죽자, 유유는 긴급히 장안에서 철수하여 건강으로 회군하였다. 이때 유유는 장안의 수비를 위해 자신의 아들 [[유의진]]을 남기고 [[왕진악]]과 [[심전자]]에게 유의진을 보좌하도록 명했는데, 왕진악과 심전자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이 폭발하고 외부에서는 [[북하]]의 [[혁련발발]]이 장안으로 침공한 가운데, 설변은 [[북위]]로 귀순하여 황하 유역에서 공을 세웠다. 설변은 [[명원제]]로부터 평서장군(平西將軍), 옹주자사(雍州刺史)로 제수되고 분음현후에 봉해졌으며, 422년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