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貧 생몰년도 미상 [목차] [clearfix] == 개요 == [[고대]] [[중국]]의 [[후한]] 말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인물이며 자는 덕림(德林). 본명은 불명으로 [[성씨]] 석씨(石)와 호인 한빈으로 전해진다. == 행적 == [[서량|양주]] 안정군 사람으로 본래 성은 석(石)씨이며, [[건안]][* 196년 ~ 220년이다.] 초에 [[삼보(중국)|삼보]][* 후한의 [[수도권]]이라 할 수 있는 경조윤, 우부풍, 좌빙익 일대를 말한다.]에 머물렀고 [[서안|장안]]의 유학자인 난문박에게 가서 배워 시경, 서경 등을 정밀히 하기 시작했으며, 후에 내사를 좋아하게 되어 난문박의 문도들 중에서 가장 현묘하고 묵묵했다. 211년 [[관중]]에서 [[삼보의 난|난리가 일어나자]] 남쪽의 [[한중]]으로 피난했으며, 생업을 하지 않고 처자를 거느리지도 않았다. 항상 노자오천문과 내서를 밤낮으로 읽었으며, 220년 한중([[장로(삼국지)|장로]])이 격파되자 무리를 따라 장안으로 돌아왔다. 맛을 따라 먹지 않고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 헤진 베를 꿰서 옷을 만드는 등 가난한 생활을 했으며, 몸은 더 나은 것이 없는 것과 같으면서 눈은 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았다. 홀로 궁벽한 작은 집에 살면서 친한 사람도 없었으며, 다른 사람이 옷이나 먹을 것을 줘도 받지 않고 [[군현제|군현]]에서 홀아비에 궁벽하다고 해 매일 5승의 곡식을 지급했지만 먹기에 부족했다. 비틀거리면서 구걸했지만 많은 것을 달라고 하지 않았으며, 다른 사람이 성과 자를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고 그리하여 그의 호를 한빈(寒貧)[* [[캐릭토님|호의 의미는 춥고 빈한함.]] 그야말로 [[은사]]인 그의 신조를 알 수 있는 [[작명]]이다.]이라 했다. 그를 본래부터 아는 자가 있어 가서 그를 살피고 구제하면 절하고 무릎을 꿇어 사람들이 그를 미치지 않았다고 했으며, 거기장군 [[곽회]]가 장하다고 여겨 그를 불러 원하는 바를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곽회가 육포와 건량, 의복 등을 지급했지만 의복은 받지 않고 육포 한 덩이와 건량 1승만을 받는 것에 그쳤다. == 창작물에서의 석한빈 == [[창천항로]]에서 은둔 명사로 나와 [[조조]]가 찾아가서 문답을 주고받는데, [[노자]]의 말은 인용해서 자신은 3개의 보물을 손에 넣고 죽을 것이라면서 타인보다 앞서지 않는 삶,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생활,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라고 얘기했다. 조조가 자신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하자 마찬가지라면서 자신이 살아가는 힘에 한 점 의문도 품은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얼굴이 [[순욱]]처럼 묘사된다.[* 조조로부터의 시각처럼 묘사된다.] 원래도 닮게 묘사된 편이며, 조조도 "방해를 했네, ~~자기가 죽여버린~~ [[순욱|좋아하는 친구]]를 조금 닮은 것 같아서 말야."라 이야기하기도 한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한빈, version=53)] [[분류:후한의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