釋聰[* 옛날 [[동아시아]] [[불교]]의 출가자들은 [[동진]]의 고승 석도안(釋道安)이 제안한 이래로 본래의 성씨 대신 [[석가모니]]의 정신적 후손을 의미하는 '석'을 성씨로 쓰는 관행이 있었다. [[베트남]]에서는 지금도 이 관행이 남아 있어 [[틱낫한]]이나 [[틱꽝득]] 같은 승려들 역시 한국식으로 이름을 옮기면 석일행, 석광덕 등이 된다. 석총이 출가하기 이전의 성씨는 전해지지 않아 알 수 없지만, 당시에는 성이 없는 사람이 많았으므로 석총도 본래 성이 없었을 수 있다.] ? ~ 911년[* [[동국통감]] 권 11권 신라기 참조.] [목차] == 개요 == [[신라]] 말기의 [[승려]]. == 생애 == 당대 [[미륵 신앙]]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법상종(法相宗)[* 유식론과 미륵신앙을 기반으로 성립된 종파. 유명한 고승으로 신라의 원측과 [[진표(신라)|진표]]가 있다. [[의상(신라)|의상]]의 화엄종과 함께 교종의 양대산맥을 구축했다.]의 고승이었다. [[미륵불]]을 자칭한 [[태봉]]국왕 [[궁예]]가 비구 200여 명에게 석가를 찬미하는 [[노래]]인 범패를 부르면서 자신의 뒤를 따르게 하고 스스로 [[불경|경전]] 20권을 지었는데, 궁예가 멋대로 쓴 이 경전이 꽤나 [[불쏘시개]]스런 것이어서 석총은 강설에서 [[궁예]]에게 그 경전들이 사악하고 괴이한 말로써 백성들에게 교훈이 될 수 없다고 간언을 올렸으나, 분노한 [[궁예]]의 [[철퇴(무기)|철퇴]]에 맞는 방식으로 처형되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궁예]]에게 살해당했다는 기록이 역사서에 남아 있는 만큼 당대에 명망 높은 고승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6년 뒤 죽은 [[형미]]보다 높은 승려는 아니었다. 하지만 미륵을 자칭한 [[궁예]]에게 직언을 하여 죽었다는 사실 때문에 꽤 많이 알려져 있으며, [[드라마]]의 영향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사실 드라마에는 후반부 나올때 형미도 제법 중요한 비중으로 나오지만. 석총과 [[궁예]]의 의견 대립에 대해, 당시 법상종의 분파 간 견해 차이로 이러한 대립이 발생했을 가능성을 제시하는 의견도 있다.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nh/view.do?levelId=nh_011_0050_0020_0010_0020|#]] == 대중매체에서 == [[파일:external/5d46deeaa5b9bc66e4e82c602837934eb5cf7690a5705c2fb5ff77feb84a7b07.jpg|width=400]]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석총(태조 왕건))] [각주] [[분류:911년 사망]][[분류:후삼국시대의 승려]][[분류:살해된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