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일:external/image.kobay.co.kr/1111B1WJD8S_2.jpg]] || || 석용산([[1946년]] [[11월 29일]] ~ [[2001년]] [[9월 19일]], 향년 54세)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前 [[종교인]]. [[충청남도]] [[논산시]] 출신으로, 한국 [[불교]]의 [[흑역사]]. 한국의 [[승려]]였다가 [[1996년]]에[* [[https://www.joongang.co.kr/article/3550072#home|당시 중앙일보 기사]]] [[대한불교조계종|조계종]]에서 [[멸빈]][* 이유는 여신도와의 염문이 확인되어서...]된 [[땡추]]. 그러므로 사망 시점에는 정식 승려가 아니었다. 속성은 [[석(성씨)|석씨]]가 아니라 책에서 스스로 밝힌 바 [[김(성씨)|김씨]]다. [[본명]]은 김영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4402948|참조]] [[법명]] 앞에 성처럼 석(釋)자를 덧붙임은 4세기 중국 [[동진]]시대의 고승 도안(道安, 312-385)이 증일[[아함경]]에서 출가하면 모두 석자(釋子)가 된다는 구절[* "또한 지금부터는 부모가 지어준 성을 쓰지 말고 석자사문(sakyaputtiya samanas)이라고 하라." (증일아함 37권 팔난품 제3경 중)]을 근거로 삼아 승려들은 모두 석(釋)자를 성처럼 써야 한다고 주장한 데에서 유래한 [[동아시아]] 불교계의 옛 관습이다. == 활동 내역 == || [[파일:external/image.kyobobook.co.kr/l7225211999148.jpg|width=350]] || [[1993년]] <여보게 저승갈 때 뭐 가지고 가지> 라는 수필집을 출간해서 인기를 끌었다. 제목만 보면 [[법정(승려)|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연상시키지만 실상은 무소유와는 비교도 상당히 민망할 정도로 글 솜씨가 상당히 형편없고 횡설수설했다.[* 이 책에는 [[윤웅렬]]과 [[윤치호]]에 대한 야사도 실려 있다. 윤웅렬이 전생에 [[석왕사]]라는 [[절(불교)|절]]의 [[승려]]였다는 이야기인데 실제로 윤웅렬이 이를 진지하게 생각해서인지는 몰라도 그 아들인 윤치호는 [[감리교]]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후 휴양지 삼아 석왕사에 상당히 자주 들렀다.] 그럼에도 이 책이 150만부나 팔린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지금은 망한 [[고려원]]이라는 출판사의 마케팅 능력과 그럴 듯하게 생긴 석용산의 외모 때문이다. 그는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각지로 설법하러 다녔는데 설법 내용은 그렇다 치더라도 [[내 외모에 반해 호기심으로 전화했다간 큰 호통을 들을 것이야|신도들이 외모에 홀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 [[파일:external/www.burimbook.co.kr/1213358773RUntitled-16.jpg|width=350]] || 이후에도 <여보게 이 땅에 다시 오려나>, <나의 사랑 나의 방황 나의 종교>, <진짜 나와 가짜 나>, <어찌 삶이 반짝이는 별 빛일 수만 있으랴> 등 책을 참 많이도 찍어냈다. 심지어 오디오 에세이 같은 이상한 형태로도 돈을 벌었다. 시집 <허공꽃>이나 소설 <등신불>[* [[김동리]]의 소설 [[등신불]]과는 다른 작품으로, 석용산의 등신불은 상하 2권짜리인데, 김동리의 등신불은 1권도 부족한 단편소설임을 통해 간단히 구별 가능하다.]도 집필했다. 거기에 동년 10월 13일 KBS2 [[https://youtu.be/Ns-1EbEfQxs|조영남쇼]]에 가수 [[양희은]], 정치인 [[신순범]] 등과 함께 게스트로 같이 나올 당시 얼굴까지 들이대며 홍보하면서 일약 유명인이 되었다. 그 외에도 1994년 [[TV는 사랑을 싣고]], 1995년 10월 25일 MBC '이야기쇼 열린아침' 등지의 여러 TV 프로그램들에 출연하며 연예인 같은 [[인지도]]를 얻었다. 자신이 [[서울대학교/학부/사회과학대학/정치외교학부|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 출신임을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 밝혀진 실체 == 1997년 11월 4일 [[MBC]] [[PD수첩]] 300회 특집편 1탄(윤길용 취재)을 통해 서울대학교 정치학과 출신이라는 주장은 거짓임이 밝혀졌다. 더불어 [[1990년대]] 후반에는 여러 가지 비리들로 말썽을 많이 일으켰는데, 자신을 따르는 신도들과의 성추문도 있었고[* 잡지사 여기자를 [[술]]을 먹이고 [[성폭행]]한 후 내연관계를 가진 적도 있다.] 자신이 교주로 있는 [[절(불교)|절]]([[대구광역시]] 공덕원과 [[부산광역시]]에도 지부가 있다.)에서 신도들의 자금을 유용하기도 했다. 당시 그의 실체를 밝힌 PD수첩 방송 부제조차도 이 사람의 책 이름을 [[패러디]]한 '''"석용산 스님은 뭘가지고 저승 가지?"'''였다. 게다가 그 절에서는 석용산을 비로자나불의 현신(아바타)라고 떠받들었다고 한다. 심지어 [[우즈베키스탄]]에 고려사라는 절을 차려 성금을 강요한 탓에 [[조계종]]에서 [[사이비]] 불교라며 강력하게 비판한 바 있다. PD수첩 방송으로 그의 실체가 밝혀지자 신도들이 여의도 본사에 들이닥쳐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런데 [[개신교]]계 비리 종교인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후에도 계속 모습을 비추는 데 반해 이 인간은 PD수첩 방영 후에는 사실상 언론과 불교계에서 사라져 [[잠수]]를 타 버린 줄 알았으나, [[1999년]] [[7월 15일]] [[서울남부지방법원|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 민사합의3부에서 불교 관련 신문기자 A씨(당시 34세)가 [[혼인빙자간음죄|혼인을 빙자한 간음]]으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며 석용산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하여 3천만원을 [[https://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215783|지급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1년 [[가을]]에 병으로 사망했는데, 남겨진 재산[* 대표적인 것이 사찰 공덕원 등. [[조계종]]에 등록된 사찰도 아니어서 가볍게 상속되었다.]을 두고 그의 동생 외 여러 사람들이 서로 상속을 주장하며 마지막까지 추태를 보였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이 사람의 책들은 전부 절판되어 [[헌책방]]이나 중고서점 같은 곳에서조차도 구하기 힘들고, 설사 [[국립중앙도서관]] 사이트에서 디지털 파일로 스캔 후 업로드됐다고 해도 시간을 들여서 협약 공공도서관의 원문검색용 컴퓨터로 접속해야 한다. 독서 애호가나 [[불교]]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나 승려들이나 [[불자#s-1|불자]]들 사이에서도 이 사람이 언급되는 일 또한 현재는 거의 없어졌으며, 90년대에 열풍을 일으킨 [[베스트셀러]] 저자라고 하기에도 믿기 힘들 정도로 완벽하게 묻혔다. 또 당연하겠지만 불교계 역시 불교의 수치라 여겨서 이 사람의 이름을 꺼내는 일도 극도로 꺼리고 있다. '''베스트셀러는 단지 많이 팔린 책일 뿐, 반드시 '좋은 책'을 뜻하는 건 아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꼽힌다. 물론 이 사람 외에도 비슷한 사례는 많이 있고 [[혜민|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분류:1946년 출생]][[분류:2001년 사망]][[분류:논산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승려]][[분류:충주 김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