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명 ||서상경(徐相庚) || || 생몰 ||[[1900년]] [[8월 22일]] ~ [[1962년]] [[12월 7일]] || || [[출생지]] ||[[충청북도]] [[충주시|충주군]] 신니면 신청리 || || 사망지 ||[[충청북도]] [[충주시]] || ||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 [목차] == 개요 ==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 생애 == 서상경은 1900년 8월 22일 충청북도 충주군 신니면 신청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청주농업학교에 재학하던 중 [[3.1 운동]]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2천만 동포에게 고함>이라는 제목의 격문 300매를 등사하여 배포하다가 3월 19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어 징역 5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즘]]을 받아들이고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에서 [[박열]] 등과 함께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했으며, 흑도회(黑濤會)에 가입하여 잡지 <흑도(黑濤)>의 발행에 참여했다. 이후 한국에 돌아온 그는 1925년 1월에 충주에서 [[서정기]](徐廷夔) 등 3명의 동지와 회합하고, 서울에서 무정부주의 독립운동단체인 흑기연맹(黑旗聯盟)을 조직하여 무정부주의 연구와 선전활동을 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출옥 후인 1929년 2월 18일 충주군 충주면 읍내리 금성여관(金星旅舘)에서 [[권오돈]], 권오순(權五淳), 안동규(安東奎), 김학원(金學元), 정진복(鄭鎭福), [[서정기]], 김현국(金顯國) 등과 함께 항일 비밀결사 문예운동사(文藝運動史)를 조직하고 잡지 <문예운동(文藝運動)>을 간행하려 시도했다가 또다시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서상경은 1930년 3월 1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지만 1930년 5월 2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가기되었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엔 일제의 감시를 받으며 곤궁하게 지내다가 [[8.15 해방]] 후에는 충주시에 안착했고, 1962년 12월 7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서상경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분류:나무위키 독립운동가 프로젝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아나키스트]][[분류:충주시 출신 인물]][[분류:1900년 출생]][[분류:1962년 사망]][[분류:건국훈장 애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