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파일:J2-20170926-184405112.jpg]] 범인 김태화(좌)와 조경수(우) [목차] == 개요 == [[1990년]] [[1월 28일]] [[서울특별시]] [[구로구]] 샛별룸살롱에서 10대 4명을 잔인하게 살해한 사건으로, 당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과 같이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범인은 23세[* 1966년 7월 29일생]였던 조경수, 21세[* 1968년 12월 1일생]였던 김태화[* [[전라남도]] [[나주시]] 출신으로 고향 선후배다.]며 [[연쇄살인]]의 첫 발생 시기는 1990년 1월 2일이다. [youtube(GbwYPk6cck4)] == 상세 == 2인조의 샛별룸살롱에서의 범행은 1990년 1월 28일에 일어났다. 1990년 1월 29일 새벽 1시경 서울특별시 구로구 구로2동 808-40[* [[도로명주소]] [[구로동로]] 77. 당시의 건물은 2017년경 재건축돼서 사라졌다.] 지하 1층 샛별룸살롱 안에서 술집 종업원 10대 3명과 인근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하던 10대 한 명(남성 2명, 여성 2명)이 예리한 흉기에 온몸이 난자 당하여 살해된 것이 목격되어 신고가 접수되었다. 신고자인 해당 건물 2층의 원미자에 의하면, 영업을 끝낸 후 잠자리에 들었는데! 지하에서 비명소리가 들려 20분 후 내려가 보니, 지하 출입문 앞, 홀 안, 내실 안에서 3명이 이미 쓰러져 숨져 있었고, 술집 여종업원 한 명은 생존해 신음하는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했으나, 이송 중 사망했다. 피살된 네 명은 모두 온몸이 4~14차례 잔인하게 칼로 찔려 살해당했고, 여종업원 2명은 옷이 모두 벗겨져 있었다. 룸살롱 주인의 증언에 따르면, 28일 밤 9시경 스포츠머리를 한 청년 2명(25세 전후로 추정)이 위에서 마지막으로 생존했던 여종업원 한 명과 1시간 가량 술을 마신 후 나갔다가, 밤 11시 40분경에 다시 룸살롱으로 와 외박을 요구했다고 한다. 해당 여종업원이 애인이 있다고 거절하자, 2명은 해당 여종업원에게 후환이 있을 거라는 협박을 한 후 술집을 나갔다. 29일 0시 30분 경 주인은 귀가한 직후 불안한 예감에 룸살롱에 전화를 걸었으나 전화를 받지 않아, 옆건물에서 [[당구]]를 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이 아르바이트생 역시 살해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서울구로경찰서]] 오봉파출소에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하고, 경상도 말씨를 사용하는 조경수와 전라도 말씨를 사용하는 175cm 전후의 김태화를 용의자로 지정하고 추적했다. === 장기간 도주 후 검거 === 범인은 범행 신고 하루만인 1990년 1월 30일에 1990년 1월 2일 [[광주광역시|광주]]에서 술집 여종업원을 살해한 조경수, 김태화 2인조로 특정되었다. 하지만 위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도 범인은 한동안 잡히지 않았다. 범행 후 1주일간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고, 1990년 2월 1일을 시작으로 택시 기사를 협박하거나 [[미용실]]에서 강도 행각을 벌이는 등 도주자금을 벌기 위해 범행을 계속했으며, 이 과정에서 그들을 목격했다는 증언은 계속해서 나왔지만, 경찰은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했다. 1990년 2월 10일 [[조선일보]] 3면 기사에는 <警察의 한심한 服務자세>[*번역 경찰의 한심한 복무자세]라는 제목으로 '경찰의 수사력'을 비판하는 사설이 게재되기도 했다. 2월 9일 조경수가 [[부산]]의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고, 2월 14일에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 [[자수]]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경찰에 모습을 드러내지는 않아, 이들이 부산에 잠입한 게 아니냐는 추정도 나왔다. (1990년 2월 15일 동아일보 12면 기사 <釜山잠입설에 잔뜩 긴장>) 그러다 1990년 2월 27일 샛별룸살롱에서 500m 정도 떨어진 [[카페]]에 나타났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때도 경찰은 한심하긴 마찬가지였는데, 잠복경찰이 6명이나 있는데 눈치도 못 채고, 신고자인 박양이 조경수의 애인 이모양과 김태화가 차에 타 데리고 간 걸 신고한 이후에야 알았다. 대담해진 이들은 1990년 3월 3일에는 [[대전]] 거리를 활보하면서 경찰을 가리켜 '나를 잡으러 왔다'는 농담까지 하기도 해, 경찰의 체면은 완전히 구겨졌다. 그리고 이 사실이 보도된 후 이틀만인 1990년 3월 5일 오후 조경수가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다. 그리고 3월 10일 나머지 한 명의 범인인 김태화가 조건부 자수를 하겠다고 전화한 것으로 덜미가 잡혀 체포되었다. 김태화는 자신의 범행 이유에 대해 '민주화를 위한 행동'이었다며 개소리를 시전하기도 했다. 그는 체포되기 이전 드라마 [[수사반장]]의 실제 모델이었던 당시 서울지방청 [[최중락]] 총경에게 직접 전화를 걸기도 했다. === 연쇄살인 === 범인 2인조는 체포된 후 3월 11일에는 [[특수강도강간]] 등 총 42건의 범행을 자백했다. 이 과정에서 1990년 1월 2일에 최초의 살인을 저질렀음이 드러나 연쇄살인 사건이 되었고, 김태화는 1990년 1월 27일에 관계를 가진 윤락 여성이 화대를 더 달라고 하자 칼로 찌르는 등 3곳에서 3명을 찔러 중상을 입힌 혐의를 받기도 했다. [youtube(_zhmVq6JA-o)] == 재판 == 조경수, 김태화는 1991년 2월 26일 [[사형]] 확정 판결을 받고, 동년 12월 18일을 기하여 처형되었다. == 여담 ==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청소년의 생활에 대해서 여러 말이 오갔다. 미성년자들이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사건의 피해자 중에 가출 청소년도 있어 "사회가 청소년들을 어떻게 보호하는 거냐", "어린애들이 유흥업소에서 아르바이트나 해서 뭘 배우겠느냐" 등 그런 쪽으로도 시끄러워지기도 했다. 2008년에 [[tvN]]의 [[범죄의 재구성(tvN)|범죄의 재구성]]에서 이 사건을 다뤘으며, 대중매체에서 다룬 사례는 이것이 유일하다. == 둘러보기 == [Include(틀:살인사건/한국)] [Include(틀:성범죄/한국)] [[분류:1990년 범죄]][[분류:제6공화국/살인사건]][[분류:구로구의 사건사고]][[분류:대한민국의 성폭력 사건]][[분류:연쇄살인]][[분류:대한민국의 강간살인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