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허난성의 지급시]][[분류:국가역사문화명성]][[분류:중국의 도시]][[분류:중국의 옛 수도]] [include(틀:허난성의 행정구역)] ||<-3> [[파일:중국 국기.svg|height=20]] {{{#000,#ddd '''[[중국|{{{#000,#ddd 중화인민공화국}}}]] [[허난성|{{{#000,#ddd 허난성}}}]]의 지급시'''}}} || ||<-3> {{{#ff0 '''{{{+1 [ruby(商丘, ruby=Shāngqiū)][ruby(市, ruby=Shì)] }}}'''[br]상추시 | Shangqiu City}}} || ||<-3> {{{#!wiki style="margin: -5px -10px" [include(틀:지도, 장소=商丘市, 너비=100%, 높이=100%)]}}} || ||<-2> '''{{{#ffff00 시정부 소재지}}}''' || [[허난성]] 상추시 쑤이양구 푸첸루1호[br]河南省商丘市睢阳区府前路1号 || ||<-2> '''{{{#ffff00 지역}}}''' || [[화중]] || ||<-2> '''{{{#ffff00 면적}}}''' || 10,704km² || ||<-2> '''{{{#ffff00 하위 행정구역}}}''' || 2시할구 1현급시 6현 || ||<-2> '''{{{#ffff00 시간대}}}''' || UTC+8 (北京时间) || ||<-3> '''{{{#ffff00 인문 환경}}}''' || ||<-3>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3px" ||<-2> '''{{{#ffff00 전체인구}}}''' || 7,816,831명 ^^(2020)^^ || ||<-2> '''{{{#ffff00 인구밀도}}}''' || 730.27명/km² || ||<-2> '''{{{#ffff00 서기}}}''' || 리궈성(李国胜) || ||<-2> '''{{{#ffff00 시장}}}''' || 바이샹양(摆向阳) || ||<|2> '''{{{#ffff00 GRDP}}}''' || '''{{{#ffff00 전체}}}''' || $459억 744만 ^^(2020)^^ || || '''{{{#ffff00 1인당}}}''' || $5,872 ^^(2020)^^ || ||<|2> '''{{{#ffff00 상징}}}''' || '''{{{#ffff00 시화}}}''' || [[월계]] || || '''{{{#ffff00 시목}}}''' || [[회화나무]] || ||<-2> '''{{{#ffff00 차량번호}}}''' || '''豫N''' || ||<-2> '''{{{#ffff00 행정구역 약칭}}}''' || '''商''' || ||<-2> '''{{{#ffff00 옛 명칭}}}''' || '''宋州'''[br]'''归德府''' || ||<-2> '''{{{#ffff00 행정구역코드}}}''' || '''41'''1400 || ||<-2> '''{{{#ffff00 지역전화번호}}}''' || '''0370''' || ||<-2> '''{{{#ffff00 우편번호}}}''' || '''476'''000 || ||<-2> '''[[ISO 3166-2|{{{#ffff00 ISO 3166-2}}}]]''' || '''CN-HA-14''' ||}}}}}}}}} || ||<-3> [[http://shangqiu.gov.cn|홈페이지]] || [[파일:201410221000055655000_910.jpg|width=450]] [목차] [clearfix] == 개요 == [[허난성]] 동부 [[산둥성]], [[안후이성]]의 경계에 있는 [[지급시]]. 인구는 870만 명. 시내 북쪽으로 옛 [[황허]]의 물줄기가 흐르는데, 운하를 통해 현재 황허와 연결되어 있고 동쪽으로는 [[안후이성]] [[쑤저우]], [[장쑤성]] 북서부 끄트머리에 위치한 [[쉬저우]]와 연결되어 있다. == 역사 == 전설에 따르면 [[순(삼황오제)|제순 유우씨]]가 [[상족]]의 수장 설을 여기에 봉하고 '상구(商丘)'라고 하였다고 한다. 실제 상나라 당시엔 박(亳)이라 불렸는데 [[상나라|상]](商)의 첫 수도라 상이라는 지명이 정착했고, [[춘추시대]]에는 상을 계승한 '''[[송(춘추전국시대)|송]](宋)의 수도였다.''' [[주공단]]이 [[삼감의 난]]을 평정한 후, [[주성왕]]은 상나라의 후예인 [[미자계]]를 상구에 봉하여 송나라를 세웠다. [[주난왕]] 29년(기원전 286년)에 송나라가 망한 후 경내의 대부분은 위나라가 차지하였다. 위는 상추에 대송군(大宋郡)을 설치하고 신릉(지금의 닝링현(宁陵县))에 공자 위무기를 봉했는데 이 사람이 바로 [[신릉군]]이다. 진나라때는 수양(睢陽)현[* 이 이름은 오늘날 상추시의 하위 행정구역 쑤이양구(睢阳区)의 이름으로 남아 있다.]이 되어 탕군(碭郡)의 치소가 되었다가, [[한고제]]가 이곳에 양(梁)국을 설치했다. [[후한]]말 [[조조]]가 영릉현(寧陵縣)에서 거병했다고 한다. [[삼국시대(중국)|삼국시대]] 당시 [[조비|위나라 문제]] 황초(黃初) 원년(220년)에 양국을 양군(梁郡)으로 고쳤다. 수당시대에는 양군을 고쳐 옛 송나라의 수도였다 해서 송주(宋州)로 이름 붙였다. 이후 조광윤이 세운 왕조 이름이 송이 된 것도, [[진교의 변]] 당시 [[조광윤]]이 중앙의 직책과 함께 이 송주 절도사를 겸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는 지방직인 [[절도사]]와 중앙직을 겸임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송주는 수도 [[카이펑시|개봉]]과 워낙 가까워 겸임이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마치 당 고조 이연에게 있어 태원([[타이위안]])과 같은 거병의 근거지로서, 왕조가 처음 출범한 곳으로 여겨져 경덕(景德) 3년(1006년) 남경 응천부(應天府)로 격상되어 북송 시대에 존중받았다. 정작 수도는 다른 곳에 두었으면서도 국호는 이 원래 근거지에서 딴 것도 당과 같다.[* 당(唐)이 통일왕조인데다 특히 한국사에 끼친 영향이 커서 한국인 입장에서는 떠올리기 힘들지만, 원래 唐은 진([[진(영성)|함양의 영성 秦]] 말고 [[진(희성)|산서성의 晉=晋]])의 별칭으로서 [[산서성]]의 별칭이기도 했다. 당 고조의 조부가 북주 때 태원 일대를 당국공이라는 이름으로 분봉받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중국사 역대 국호]]의 법칙을 따라 당국공 -> 당왕 -> 당제로 급이 올라가면서 唐이 왕조의 이름으로까지 격상된 것이다.] 이 일대가 [[정강의 변]] 당시 [[고종(송)|고종]]이 이곳에 피신했고 그해 황제로 즉위해 [[항저우시|임안]](臨安)으로 옮기기 전까지 [[남송]] 초기 임시 수도였다. [[금나라]]가 이 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이후 응천부를 귀덕부로 고쳤는데, 금나라가 멸망한 직후 남송의 단평 원년(1234년)에 [[남송]]은 귀덕부를 수복하고 다시 남경 응천부로 회복하였다. 이후 원나라가 들어서면서 다시 귀덕부가 되었으나 명나라에서 [[홍무제]]가 즉위하고 바로 강등되어 귀덕주가 되었다가 가정 24년(1545년)에 귀덕부(歸德府)로 다시 승격되어 상추현(商丘縣)을 두었다. 청대 연간에는 주집(朱集)라고 불리며 상업의 발원지이자 물자의 집산지로 유명해졌고 1916년 룽하이 철도가 개통된 후 주집에 역이 설치되었다가 상추 역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중화민국]]이 들어서면서 점차 현재 지명이 쓰이게 되다가 1948년 중국공산당이 이곳을 점령한 후엔 아예 지명을 이쪽으로 바꾼 현재의 상추시를 설립했다. 사실 현재의 시가지는 과거의 귀덕부에서 동쪽으로 몇 km 떨어져 있는 주집(朱集)이라 불렸던 장터였다. 명나라 시기 동쪽에 대운하가 건설되면서 서서히 몰락했던 상추는 농업생산력과 교통, 석탄 매장량을 앞세워 1990년대 급속히 발전했고 1997년 지급시가 된다. == 교통 == [[상항고속철도]], [[루차오고속철도]], [[쉬란고속철도]], 룽하이(隴海)철도[* 이 철도가 1905년 개통된 이후 주집이 귀덕을 앞질러 현재의 시가지를 형성했다.]가 [[상추역]]을 지나간다. == 기타 == [[도가]]의 학자 [[장자]][* 정확히는 송(宋)나라 몽(蒙)이란 곳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현재의 안휘성 몽성 또는 상추시로 추정된다.]와 [[초한쟁패기]] 때 한나라의 장군인 [[관영]]의 고향이며 [[한궈위]](韓國瑜)의 본적지가 이곳이다. 즉 한궈위는 [[외성인]]이다. 또한 [[화목란]] 전설 중에는 이곳이 화목란의 고향이라는 버전도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