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clearfix] {{{+1 [[三]][[道]][[水]][[軍]][[統]][[禦]][[使]]}}} == 개요 == [[정묘호란]], [[병자호란]] 이후 창설된 [[조선시대]] [[조선군]] [[수군]]의 [[무관]] 직책이다. [[삼도수군통제사]]가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수군을 이끌고 [[남해]]로 침입하는 외적을 경계한다면, 삼도수군통어사는 [[경기도]], [[충청도]],[* 충청수사는 남해안으로 외적이 침입할 경우, 삼도수군통제사의 지휘를, 서해안이나 북방으로 외적이 침입할 경우는 삼도수군통어사의 지휘를 받게끔 되어 있었다.] [[황해도]] 수군을 이끌고 서해안이나 북방에서 침입하는 외적을 경계하였다. 양대 호란 이후 위기 상황 시 조정이 강화도에서 농성하기로 결정하자 이에 따른 서해안 통합 방위가 필요해짐에 따라 신설된 직책이다. 품계는 통제사와 동일한 종2품의 무관이 임명되었으며, [[강화도]]를 관할하는 경기도 [[수군절도사]]를 겸임하였다. [[인조]] 시기에 삼도수군통어영을 교동도에 설치했는데, 통어영의 장인 삼도수군통어사는 처음엔 경기수사가 겸하다가 [[영조]] 39년인 1763년 [[어영청|어영대장]] 김한구가“경기수사가 [[교동도]]에 주둔하고 있어서 만약 [[영종도]]에 긴급한 상황이 발생해도 신속하게 대처할 수 없다.”라고 보고함에 따라 경기수군을 좌우로 나눠 교동도와 영종도로 방어사를 배속시키고 강화유수가 통어사를 겸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정조(조선)|정조]] 13년(1789년) 통어영이 강화도 방비에만 편중되어 있어서 삼도의 뱃길을 다 지킬수 없다하여 통어영을 다시 교동도로 되돌리고 교동부사가 경기수사, 삼도수군통어사를 겸하게 한다. 삼도수군통어사는 조선 중부의 수군을 총괄하는 [[총사령관]]으로써 조선 남부 수군 총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삼도수군통제사에 대비되는 조선 수군의 양대 필두였지만 임진왜란에서 대활약한 '''[[이순신]]'''의 역사적 위업으로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삼도수군통제사에 비해 별 인지도 없는 무관직.[* 사실 삼도수군통어사가 설치된 이후 더 이상의 대전란이 벌어지지 않아서 통어사가 활약할 기회 자체가 없었던데다가 조선 수군 전력 대부분이 삼도수군통제영 휘하에 있었고, 삼도수군통어영 휘하 경기수군과 황해수군은 다른 수영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다 보니 비중이 영 없을 수 밖에 없기도 하다. 현재로 치면 삼도수군통제영이 [[대한민국 해군]], 삼도수군통어영이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정도의 전력을 보유하는 수준이었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삼도수군통제사, version=170)] [[분류:조선군]][[분류: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