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조선군]][[분류:조선/건축]][[분류: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5>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30&height=30]]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ffffff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12호[* 13호부터 15호까지는 각각 해제되어 사적, 보물로 승격, 포함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1~100호]] 문서 참조.] ||<|2> ← || '''16호''' ||<|2> → || 18호[* 17호 옥천암 마애좌상은 2014년 3월 11일에 보물로 승격하면서 해지되었다.] || || [[청권사|효령대군 이보 묘역]] || '''삼군부 청헌당''' || [[수표교]] || ---- ||<-2>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width=28]]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ffffff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호}}}]]''' || ||<-2> {{{#fff {{{+1 '''삼군부 청헌당'''}}}[br]{{{-1 三軍府 淸憲堂}}}}}} || ||<-2>{{{#!wiki style="margin: -10px"; margin-top: -5px; margin-bottom: 16px" [include(틀:지도, 장소=삼군부 청헌당, 너비=100%, 높이=100%)]}}}|| || '''{{{#fff 소재지}}}'''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서울)|화랑로]] 574[br](공릉동) || || '''{{{#fff 분류}}}''' ||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 || '''{{{#fff 수량 / 면적}}}''' || 건물 1棟, 토지 283㎡ || || '''{{{#fff 지정연도}}}''' || [[1973년]] [[6월 18일]] || || '''{{{#fff 관리자[br](관리단체)}}}''' || [[육군사관학교]]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군부청헌당.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Samgunbu_Cheongheondang.jpg|width=100%]]}}} || || {{{#fff ''' 삼군부 청헌당[*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36087&ccbaKdcd=21&ccbaAsno=00160000&ccbaCtcd=11|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br][[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9/96/Samgunbu_Cheongheondang.jpg|두 번째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 [목차] [clearfix] == 개요 == [[삼군부]]의 청사 중 하나였던 건물이다. == 역사 == 삼군부는 [[조선]] 초기에 군정과 군령을 총괄하던 관서로, 정식 명칭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였다. 삼군부는 [[태종(조선)|태종]] 이후 군정 기능은 [[병조]]로, 군령 기능은 [[오위]]로 분할 및 귀속되며 사라졌다가, 1865년([[고종(대한제국)|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이 재설치했다. 자세한 내용은 [[삼군부]] 문서 참조. 청헌당은 재설치 3년 뒤인 1868년(고종 5년) 주당(主堂)인 중앙의 [[삼군부 총무당|총무당(總武堂)]], 건너편의 덕의당(德義堂)과 함께 건립되었다. 위치는 [[예조]]가 있던 곳으로 원래 예조가 들어오기 전에는 조선 건국 초 삼군부 관청 부지였으며, 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자리이다. 1880년(고종 17년)에 [[조정]]에서 [[삼군부]]를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면서 청헌당은 통리기무아문의 청사가 되었고, 1894년(고종 31년) 이후에는 [[시위대]]에서 청사로 이용했다. 1910년([[융희]] 4년)부터 1926년 [[순종(대한제국)|순종]]이 승하할 때까지는 조선 보병대에서 사령부로 사용했다. 이후 [[일본 제국|일제]]는 [[삼군부 총무당|총무당]]을 [[성북구]] [[돈암동]]으로 옮기고 덕의당을 헐었으나 청헌당만큼은 그대로 두었다. 1967년에 청헌당 일대에 [[정부서울청사]](당시 정부종합청사)를 짓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청헌당 건물을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겼다. 1977년에 보수하면서 모습이 다소 달라졌다. == 구조 ==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삼군부청헌당 (1).jpg|width=100%]]}}} || || {{{#fff ''' 삼군부 청헌당 현판[* [[http://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1636086&ccbaKdcd=21&ccbaAsno=00160000&ccbaCtcd=11|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 건물 전면에 '청헌당'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조선 후기 무신이자 [[강화도 조약]] 당시 조선 측 대표였던 [[신헌]](초명 신관호)의 글씨라 전해진다. *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 건물이다. 기단석 3벌 위에 4각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이며 [[공포(동음이의어)#s-2|공포]]는 초익공으로, 새 날개 모양이다. 지붕 위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지붕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 건물 전면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다. * [[조선시대]]에는 [[삼군부 총무당|총무당]]이 가운데에 있었고, 양 옆에 청헌당과 덕의당이 있었으며 두 건물 다 총무당과 복도로 이어져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