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1900년 출생]][[분류:1965년 사망]][[분류:통가 국왕]][[분류:오세아니아의 여왕]][[분류:누쿠알로파 출신 인물]][[분류:통가인]][[분류:투포우 가문]] [include(틀:역대 통가 국왕)] [[파일:Salote_Tupou_III_of_Tonga_in_coronation_robe-crop_(Colourised).jpg]] [목차] == 개요 == Sālote Tupou Ⅲ Sālote Mafile‘o Pilolevu 살로테 투포우 3세는 [[통가]]의 첫 여왕이다. 살로테는 Charlotte의 음차이다. == 생애 == 1900년 3월 13일 [[통가 왕궁]]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지 투포우 2세]]였고 어머니는 [[라비니아 베이옹고]] 왕비였다. 1902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통가 귀족 사회에서 힘을 잃은 집안 출신이어서 살로테는 어릴 적에 밖에 나가기도 어려웠다. 이후 아버지인 조지 투포우 2세는 재혼하여 자녀를 둘 더 낳았으나 둘 다 딸이었고 왕자는 낳지 못했다. 1909년 살로테는 [[뉴질랜드]]로 가서 5년간 현지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1914년 아버지가 귀국을 명령해 다시 통가로 돌아왔다. 1916년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빌리아미]][* 남편인 빌리아미는 1923년부터 사망한 1941년까지 통가의 총리를 지냈다. 당시 통가는 [[영국]]의 보호령이어서 실질적인 권한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와 결혼하였다. 빌리아미는 통가의 유력 귀족 집안이었고, 시아버지인 시아오시(Siaosi Tukuʻaho)는 1890년부터 1893년까지 통가의 총리를 지냈다. 1918년에 아버지 조지 투포우 2세가 [[스페인 독감]]으로 서거하면서, 왕위를 계승했다. [[파일:rf_history2.jpg]] 1918년 [[대관식]] 때의 살로테 투포우 3세. 뒤에 서 있는 남성은 남편인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이다. 1965년 12월 16일, [[뉴질랜드]] [[오클랜드(뉴질랜드)|오클랜드]]의 아오테아병원에서 서거했다. 통가 왕실의 장지인 말라에쿨라(Malaʻekula)에 묻혔다. == 재위 == 영국의 보호령이라 권한은 별로 없었다. 1940년에 독일에 선전포고했다. 1941년 [[진주만 공격]]이 있자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통가인들은 주로 뉴질랜드군에 입대해서 참전했다. 1953년에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에 참여하러 유럽을 방문했다. 1954년부터 65년까지 통가전통위원회 의장을 지냈고, 1945년부터 65년까지 통가적십자사 총재를 지냈다. == 가족관계 == * 남편 [[빌리아미 퉁이 마일레피히]](Viliami Tungī Mailefihi, 1888-1941) * 1남 [[타우파하우 투포우 4세|시아오시]](Siaosi Tāufaʻāhau Tupoulahi, 1918-2006) * 2남 윌리아미(Uiliami Tuku‘aho) * 3남 [[파타헤이 투이펠레하케|파타헤이]](Fatafehi Tuʻipelehake, 1922-1999)[* 통가의 귀족 직책 중 하나인 Tuʻipelehake의 5대를 지냈다.] == 여담 == *[[투포우 왕조|통가 왕실]]이 그렇듯 [[통가]] [[존 웨슬리|웨슬리안]] [[감리교]] 신도였다. 키가 어마어마하게 컸는데 191cm나 되었다. [youtube(Ve4YaJN-jI4)] 살로테가 영국을 방문했을 때와, [[엘리자베스 2세]]가 통가를 방문했을 때를 찍어둔 영상이다. 2분 28초 경을 보면 163cm 키에 힐을 신은 [[엘리자베스 2세]] 보다 훨씬 큰 키임을 알 수 있다. 옆의 남성은 [[필립 마운트배튼]](183cm)인데, 이로 보아 중년에는 180대 정도의 키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