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로마 카이사르)] ||<-2> '''{{{#fecd21 로마 제국 카이사르[br]{{{+1 Saloninus | 살로니누스 }}}}}}''' [[파일:살로니누스.jpg|width=100%]] || || '''{{{#fecd21 제호}}}''' ||푸블리우스 리키니우스 코르넬리우스 살로니누스 발레리아누스 카이사르[br](Publius Licinius Cornelius Saloninus Valerianus Caesar) || || '''{{{#fecd21 생몰 년도}}}''' ||미상 - 260년 || || '''{{{#fecd21 카이사르 재위 기간}}}''' ||258년 ~ 260년 || || '''{{{#fecd21 부모}}}''' ||[[발레리아누스]](조부)[br][[갈리에누스]](아버지)[br][[코르넬리아 살로니나]](어머니) || || '''{{{#fecd21 형제}}}''' ||[[발레리아누스 2세]](형)[br][[마리니아누스]](동생) ||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의 [[카이사르(칭호)|카이사르]]. 258년 아버지 [[갈리에누스]]에 의해 카이사르에 지명되어 라인 전선으로 보내졌으나 260년 [[포스투무스]]의 난으로 피살당했다. == 행적 == [[갈리에누스]]와 [[코르넬리아 살로니나]]의 차남으로, 형 [[발레리아누스 2세]]와 동생 [[마리니아누스]]가 있었다. 258년 먼저 카이사르에 선임되어 도나우 전선을 담당하고 있던 형 발레리아누스 2세가 의문사하자, 갈리에누스는 그를 카이사르로 선임하여 갈리아를 관리하게 한 뒤 자신은 [[잉게누우스]]의 반란으로 혼란에 빠진 발칸 반도를 수습하고자 출진했다. 이때 그는 근위대장 실바누스의 보좌를 받았다. 260년 여름,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사령관 [[포스투무스]]와 실바누스는 약탈을 한껏 벌인 뒤 본거지로 귀환하던 유퉁기족(Juthungi)을 공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전리품을 확보했다. 두 사람은 곧 리품 분배 문제를 놓고 다투었다. 포스투무스는 부하들에게 전리품을 나눠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실바누스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게 원칙이라며, 일단 갈리에누스의 차남 살로니누스에게 넘긴 뒤 살로니누스가 원주인에게 돌려주는 책무를 수행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병사들은 목숨 걸고 싸워서 쟁취한 전리품을 내줄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들은 곧 반란을 일으켰고 포스투무스를 지휘관으로 추대했다. 실바누스는 아직까지 자신을 따르는 몇몇 병사들과 함께 살로니누스를 모시고 쾰른으로 피신했다. 실바누스는 그곳에서 살로니누스를 [[아우구스투스(칭호)|아우구스투스]]로 추대했는데, 이는 갈리아 방면 로마군을 회유하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그러나 포스투무스를 받든 병사들은 이를 무시하고 쾰른을 포위 공격했고, 쾰른 시민들은 얼마 안가 백기를 들고 살로니누스와 실바누스를 포스투무스에게 넘겼다. 포스투무스는 두 사람을 곧바로 사형에 처한 뒤, [[갈리아 제국]]의 건국을 선포하고 황위에 올랐다. [[분류:카이사르]][[분류:260년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