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 Stefano Treaty([[영어]]) Сан-Стефанский мир, Сан-Стефанский мирный договор([[러시아어]]) Ayastefanos Muahedesi or Ayastefanos Antlaşması([[터키어]]) || [목차] == 개요 == 1877~1878년의 [[러시아-튀르크 전쟁]]에서 [[러시아 제국]]과, 러시아의 편을 든 발칸 반도 여러 민족의 독립군[* [[불가리아]],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등.]들은 [[오스만 제국]]에 승리를 거두고 오스만의 수도 [[이스탄불]] 코앞까지 진격했다. 오스만은 패배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전쟁 종결을 위해 [[1878년]] [[3월 3일]] [[이스탄불|코스탄티니예]] 서쪽에 위치한 [[오스만 제국]]의 산 스테파노(San Stefano)[* 터키어로는 아야스테파노스(Ayastefanos). 지금의 이스탄불 바크르쾨이 구에 위치한 예실쾨이(Yeşilköy)로 1926년 지금의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이곳은 현재는 화물전용공항으로 이용되지만 한때 터키의 관문이었던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이 위치해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스어]]로 아요스 스테파노스(Άγιος Στέφανος). 산 스테파노는 '아요스 스테파노스'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한 것이다. 터키어 이름 역시 '아요스 스테파노스'를 음역한 것이다.]에서 이 조약을 체결하였다. == 내용: 러시아의 과욕 == 조약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전쟁이 러시아 연합군의 대승리로 끝났으므로, 패전한 오스만에게 매우 가혹한 조약을 요구했다. * 명목상 오스만의 종속국이자 자치정부인 [[불가리아]] 공국을 세운다.[* 불가리아 같은 큰 나라를 이 전쟁 한 번에 완전한 독립을 요구하면 동유럽의 정세가 너무 크게 바뀌므로 일단 명목상 종속, 자치정부 같은 [[사족]]을 붙이긴 했지만 말이 좋아 자치정부이지, 자체적인 정부와 헌법에다가 독자적인 군대까지 보유한 사실상의 독립국이었다.] 또한 불가리아에서 오스만 군대는 철수하며 불가리아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러시아 군대가 2년 이상 주둔한다. * 오스만 제국은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루마니아]]의 독립을 인정하며 이들에게 역시 일부 지역을 할양한다.[* 특히 몬테네그로는 이 조약으로 인해 영토가 두 배로 늘어난다.] * 오스만 제국은 러시아 제국에게 북부 [[도브루자]] 지역과 [[바투미]], 올투, [[카르스]], 아르다한 등의 아르메니아 일부 지역을 할양한다. 이 때 루마니아는 러시아가 오스만이 러시아에게 할양한 북부 도브루자 지역을 루마니아에게 양도하는 조건으로 크림 전쟁 때 얻은 남부 베사라비아 지역을 러시아에게 반환한다.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 자치 정부를 수립한다. 이외에도 [[크레타]]와 [[에피루스]], [[테살리아]] 등지에 자치적인 지방정부를 세울 것을 허용하는 조약안이 명시된다. 또한 기존에 오스만 정부가 약속했던, 오스만 제국 내 [[아르메니아인]]들을 박해로부터 보호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수립할 것을 보장한다. * 오스만 제국은 전쟁 배상금으로 14억 1천만 루블을 러시아 제국과 그 동맹국들에게 지급한다. * [[보스포루스 해협]]과 [[다르다넬스 해협]]은 모든 중립국에게 개방된다. == 결과: [[베를린 회의]] 개최 == [[파일:산스테파노_베를린.jpg|width=800]] 산 스테파노 조약에 따른 각국의 영토 변화(왼쪽)와 [[베를린 회의]]를 통해 확정된 각국의 영토 변화(오른쪽) 전반적으로 러시아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약이었던만큼, 이 조약은 유럽 강대국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특히나 [[그레이트 게임]]으로 전세계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이 산 스테파노 조약의 결과에 가장 기겁을 했는데, 조약의 결과 러시아가 흑해를 거의 완벽히 장악했고 러시아가 사실상 러시아 영향권에 든 불가리아의 지중해 항구를 지중해 진출로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당시 영국 수상 [[디즈레일리]]와 외무장관 [[로버트 게스코인세실]]은 러시아에게 '당장 이 조약 수정 안하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단순히 영국 뿐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 유럽 강대국 모두가 [[러시아 제국|러시아]]에게 '너네 이 조약으로 너무 컸다?' 식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에 결국 러시아도 이에 굴복하여 발칸 반도에서의 세력 재조정을 위해 [[베를린 회의]]가 개최된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비롯한 발칸반도 일대에서 슬라브 민족주의가 고조되는 것에 영국만큼이나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였다. 알바니아인들이 상당수 거주하는 (현 영토 기준) 남부 몬테네그로와 동부 북마케도니아의 할양은 고조되던 오스만 제국의 일부였던 [[알바니아인]]들의 위기감에 불을 지폈고 알바니아 민족주의 발흥의 주요 기점이라 평가되던 [[프리즈렌 동맹]]의 체결을 불러오게 된다. == 여담 == * 역사가 중 일부는 '산 스테파노 조약이 그대로 실행되고 [[베를린 회의]]가 개최되지 않았더라면 보스니아가 실질적으로 독립했을 것이고[* [[베를린 회의]]를 통해 보스니아는 독립국이라는 지위를 잃고 오스트리아의 영역으로 편입된다.] 따라서 [[사라예보 사건]]과 두 차례의 [[세계 대전]]도 없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 불가리아에게는 무려 500년에 걸친 오스만 지배를 거의[* 상술했다시피 '''명목상''' 계속 오스만 땅이다.]종결시킨 역사적인 조약이니만큼 오늘날에도 열심히 기억되고 있다. 아예 산 스테파노 조약 수립일을 [[독립기념일]]로 지정했을 정도. 또한 [[러시아]]에 대한 인식도 보다 우호적인 편이다. == 관련 문서 == * [[러시아-튀르크 전쟁#s-13|12차 러시아-튀르크 전쟁]] * [[베를린 회의]] * [[범슬라브주의]] [[분류:1878년 협정]][[분류:러시아 제국의 역사]][[분류:오스만 제국의 역사]][[분류:러시아-튀르키예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