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대한민국의 진보정당]][[분류:사회민주주의 정당]][[분류:1948년 정당]][[분류:한국의 없어진 정당]] [include(틀:대한민국의 진보정당(제1공화국-노태우 정부))] [Include(틀:제2대 국회의 원내 구성)] [목차] == 개요 == 1948년 12월 [[조소앙]]이 [[한국독립당(1940년)|한국독립당]]을 탈당하고 창당한 정당. 조소앙은 원래 [[김구]]와 함께 [[남북연석회의]]에 참여했었지만 이후 남북에 단독정부가 수립된 현실을 인정하고 계속해서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정부수립을 주장하는 김구를 떠나 이 정당을 창당해 독자노선을 걷게 된다. 또한 자신의 [[삼균주의]]를 실천하는 정당을 만드려는 목적도 있었다. 창당 준비 과정에서 '한국사회당' 또는 '민족사회당'을 당명으로 하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굳이 '한국'이나 '민족'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필요는 없다 하여 당명은 사회당으로 정해졌다. 사회당 창당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공산당]]과 싸우는 나라에서는 사회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우익정당 일색인 마당에 사회당이 생긴다니 반갑고, 더구나 조소앙 선생이 이 당을 한다니 반갑다"'''며 축사를 했다.[* 말하자면 온건한 사회주의 정당을 수용함으로써 대중들이 극단적 공산주의에 빠져들지 않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1948년 [[조봉암]]을 농림부장관에 앉혀 1949년 [[농지개혁법]]으로 농민들의 지지를 얻고 공산주의 동조를 줄이고자 한 것과 유사한 맥락이다. 물론 조봉암을 사법살인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후의 행보는 이때 본인 말과는 영 다른 행보를 보여주는게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나 일부 사회당 소속 국회의원들이 [[국회 프락치 사건]]에 연루되어 경찰에 체포되면서 당의 위상이 흔들리기도 했다. == 활동 ==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8명이 입후보하였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선거구에 출마한 조소앙은 우익의 거물 [[조병옥]]을 제치고 '''전국 최다 득표로 당선'''되었고,[* 조병옥 측은 선거 전날인 5월 29일 '조소앙이 [[조선로동당|공산당]]의 정치자금을 받아쓴 것이 탄로나 투표일을 하루 앞두고 월북했다'는 [[찌라시]] 벽보와 전단을 성북구 일대에 뿌렸으나 참패하였다. --역사가 생각보다 유구한 가짜뉴스.-- 선거 유세 마지막 날 조소앙이 직접 모습을 보이며 유세하여 자신의 건재를 과시한 게 큰 영향을 끼쳤다.] [[조시원]]도 [[양주시|양주군]] 갑 선거구에서 당선되면서 총합 2석을 얻었다. 조소앙은 6월 19일 실시된 국회의장 선거 1차 투표에서 48표를 얻어 이승만이 민 [[오화영]](46표)을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고작 1달 만에 [[6.25 전쟁]]이 터지고 [[조소앙]]이 [[납북]]되는 바람에 해체되었다. 이게 한국 현대사 전체로 봐도 비극인게, 이때 조소앙을 비롯해 [[김규식]], [[윤기섭]], [[안재홍]], [[원세훈]] 등 당시 남한 정국에서 중도파를 이루던 핵심 인사들이 대거 납북되었고, 전쟁 이후 남한 정계는 극단주의 세력들이 판치기 쉬운 환경이 이뤄질 수밖에 없게 된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사회당(대한민국), version=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