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개요 == [include(틀:조선의 4대 사화)] '''사화'''([[士]][[禍]])[* 무오사화의 경우 史禍로도 불린다. 영어로는 Literati purges로 번역되는데, 로마자 그대로 Sahwa라고 써 놓으면 [[이슬람]]에 있었던 신앙 각성운동과 헷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란, [[조선]] 시대 관료 및 선비 계층이 정치적 반대파에 의해 공격 당해 화를 당한 일을 말하며, '[[사림파|사림]]의 화'를 줄여서 이렇게 일컫는다. 극단적으로는 [[암살]]과 그 성격이 일맥상통하지만, 사화는 정치적인 명분 싸움이었으며, 상대방을 제거할 때도 임금의 재가를 거치며 합법적인 과정을 밟았다. 군주가 손수 [[숙청]]한 경우도 있었다. 일반적으로는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 등 4번의 사화를 4대 사화라 칭하며, 그 외에도 [[정미사화]](을사사화 시즌2), 기사사화([[기사환국]]), [[신임옥사]][* 경종 - 영조 시기의 왕위 계승 문제. [[노론]]의 입장에서 기사사화와 함께 [[신임사화]]라고도 불리나 신임옥사라는 표현이 더 많이 쓰인다.] 등의 사화가 있으나, 정식 표현은 아니다. 외울땐 "무오가 갑자기 기묘년에 을사(死)했다." 또는 '''''무어'''? '''갑자''''''기 묘''''''를 사'''?"라고 외우면 좋다. [[연산군]] 때 1차로 [[김종직]]이 [[세조]]의 [[계유정난]]을 비판한 [[조의제문]]으로 발생한 [[무오사화]], 2차로 자기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죽음에 대한 복수로 훈구와 함께 썰려나간 [[갑자사화]], [[중종]] 때 3차로 [[주초위왕]]이라며 [[조광조]] 숙청으로 발생한 [[기묘사화]], [[명종]] 때 4차로 대윤과 소윤의 충돌로 대윤이 썰려나간 [[을사사화]](+그 여파인 [[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더 크게 숙청된 [[정미사화]])의 순서이다. 대립의 주축은 조선 건국 100여 년 후, 구 정치 권력을 대변하는 [[훈구파]]와 [[성종(조선)|성종]] 이후 신진 세력으로서 삼사에 등용된 대간을 주축으로 한 [[사림파]]였다.[* 보통 알려진 바와 다르게 대간에도 훈구 세력이 있었으며, 이들도 같은 훈구파인 대신들을 적극 탄핵하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훗날 사림이 집권한 뒤 학풍에 따라 갈라진 파벌간 다툼인 [[붕당]]과는 다르다. [[세조(조선)|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켜 [[단종(조선)|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를 때, [[신숙주]], [[정인지]], [[서거정]] 등 세조를 도운 관료와 학자들은 공신에 책봉되며 막대한 토지와 정치 권력을 얻었다. 이들은 국가적 서적 편찬 작업 등 다방면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들은 하나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으로 변모한다. 이들이 바로 [[훈구파]]이다. [[성종(조선)|성종]] 대에 이르기까지 훈구파와 사림파는 특별히 눈에 띄는 정치적 갈등관계는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성종이 대신 내의 공신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김종직 등 재야에 파묻혀 지내던 학자들을 등용하면서 양측은 서서히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양측의 갈등은 1498년 훈구파가 사림을 공격하며 [[무오사화]]로 비화했고,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사화를 거치며 사림은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 사화 이후 == [[선조(조선)|선조]] 대에 이르러 사림이 정국을 장악하면서 훈구파는 몰락하게 된다. 하지만 사림은 학풍에 따라 [[동인(조선)|동인]]과 [[서인]]으로 갈라지며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 관련 사항 == * [[붕당]] * [[환국(조선)]] [각주] [[분류:조선/살인사건]][[분류:숙청]][[분류:15세기 사건 사고]][[분류:16세기 사건 사고]][[분류:정치 사건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