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include(틀:서진의 계보도)] 司馬楙 (? ~ 311) [목차] [clearfix] == 개요 == [[서진]]의 인물이며 자는 공위(孔伟)으로 [[사마망]]의 막내 아들. 사례 하내군 온현 사람. == 생애 == 위나라에서 악릉정후에 봉해졌다가 사마 가문이 권세를 얻자 상국의 군사에 관여했고, 265년에 [[무제(서진)|사마염]]이 선양을 받아 서진을 세운 뒤 태시 원년 12월 정묘(266년 2월 9일)에 사촌동생 사마무를 동평왕(東平王)으로 봉해 식읍 3,097호가 주어졌으며, 산기상시, 상서에 임명되었다. 280년에 사마무는 동평상 왕창의 아버지 왕비가 처자식을 두고 있다가 중원에 출사해 나라가 조위와 동오로 나뉘어 전처와 헤어져 왕창의 어머니와 결혼했다고 상소했으며, 이에 왕창이 툉일된 후 이전의 어머니가 오래 전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의논을 요청했다. 사형이 왕비에게 두 명의 아내가 있지만 그 이유가 있으니 도덕에는 지장이 없지만 왕창이 애도해야 한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양준(서진)|양준]]에게 아첨해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도록 하는 등 인품이 좋지 않았다고 하며, 291년이 양준이 주살되자 연좌되었기에 본래는 죽어야 했지만 [[사마요]]와 친했기에 연좌되지 않았다. 대홍려로 옮겼다가 시중을 더했고 사마요가 조정을 마음대로 하려고 하자 [[사마량]]이 불평하면서 사마무를 사마요와 함께 면직시키고 국을 취하도록 했다. 사마무는 재화를 불려 사치스러웠고 301년에 [[사마륜]]이 제위를 찬탈하자 위장군, 도독제군사에 임명되었다가 사마륜이 패하자 면직되었으며, [[사마경]]이 정치를 보좌하면서 복야가 되었다. 사마요의 추천으로 평동장군, 도독서주제군사에 임명되어 하비를 진수했으며, 304년에 [[사마영]]이 정치를 보좌하면서 위장군이 되었다. [[사마월]]이 낙양을 장악하고 거기장군에 임명되어 도독의 직위를 예전처럼 해 사마영과 싸우기 위해 업으로 향하도록 했는데, 사마월이 탕음에서 패했지만 그를 들이지 않았다. 사마월이 병력을 동원해 서쪽으로 향하는 혜제를 맞이하자 사마무가 두려워했고, 왕수가 사마월에게 서주를 바치면 어려움을 면할 수 있을 것이라 하자 도독 연주자사, 거기장군을 스스로 계승해 혜제에게 표를 올렸고 혜제가 유건을 보내 임명했다. 사마무는 연주자사 [[구희(서진)|구희]]가 몸을 피하지 못한 것을 알고 조서를 사칭해 구희를 주살하도록 했는데, 구희가 이미 벗어났기에 사마무는 연주에서 징집을 해도 병력을 얻을 수 없었다. 사마효가 구희를 보내 연주로 돌아가도록 하고 사마무는 도독 청주제군사로 옮겼으며, 청주에서는 사마무의 명령을 듣지 않고 산동의 제후들은 그를 따르지 않으면서 예주자사 유교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사마효가 장수 전휘를 보내 공격하자 사마무는 격파당하면서 동평국으로 도주했으며, [[사마치]]가 낙양으로 가자 대궐로 갔다. 307년에 사마치가 즉위하면서 경릉왕, 광록대부가 되었다. 사마월이 예주를 공격하면서 머무르자 사마비, [[하륜(서진)|하륜]]이 궁성을 살펴보았고, 사마무는 사마치에게 사마월을 칠 것을 아뢰어 병력을 모아 하륜을 습격했지만 이기지 못했으며, 사마치가 죄를 사마무에게 돌렸지만 도망쳐서 죽음을 면했다. 사마월이 죽자 다시 나타났고 [[영가의 난]]으로 낙양은 혼란스러웠는데, 사마무는 병사들의 난으로 살해당했다. == 창작물에서 == [[토탈 워: 삼국]]의 DLC 캠페인 291년 팔왕의 난에서 마이너 세력인 사마무 세력의 지도자로 등장하며, 281년 시점의 나이는 47세. 유형은 감시자, 칭호는 교역상, 특성은 단호함, 우아함, 이해심, 능력치는 최대 200을 기준으로 전문성 90, 결의 54, 책략 64, 본능 32, 권위 50. 플레이어가 [[사마량]]의 세력으로 선택할 시 사마무의 부하가 처음에 나오는 적이기 때문에 사마량과 적대 상태로 시작한다. [[분류:서진의 인물]][[분류:서진의 황족]][[분류:311년 사망]][[분류:자오쭤시 출신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