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진서)] [목차] == 개요 == 謝朗 생몰연도 미상 [[동진]]의 인물로 자는 장도(長度). 명문가인 진군 사씨 집안 출신으로, 동진에서 재상을 지낸 [[사안(동진)|사안]]의 조카이다. 훗날 동진을 멸하고 [[송(남조)|송나라]]를 세우는 데 일조한 [[유유(유송)|유유]]의 측근 사회(謝晦)가 바로 사랑의 후손이다. == 생애 == 일찍이 아버지 사거(謝據)를 여의고 작은아버지 사안에게 거두어졌다. 사랑은 언변이 뛰어나 심오한 이치를 논했고, 문장도 잘 지어 그 뜻이 화려하고도 아름다워 이름을 널리 떨쳤다. 또, 여러 명사들을 집으로 초빙해 서로 담론하길 좋아하는 사씨 가문의 기풍 덕에 유명인들과 교류할 기회가 많았다. 보통의 아이들은 이렇게 어르신들이 모인 자리를 피했지만, 사랑은 오히려 그 자리에 적극적으로 참석해 명사들과 토론하면서 친분을 쌓았다. 사랑은 어린 시절부터 병을 앓고 있었다. 그가 총각이 되었을 무렵, 다행히 병세는 호전되어 기운은 왕성해졌으나 아직 몸이 무리한 일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때 사안이 승려 지도림(支道林)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본래 토론하기를 좋아했던 사랑은 지도림을 붙잡고 현묘한 이치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지도림이 사랑을 말빨로 쉽사리 제압하지 못하면서 두 사람의 토론은 장기간 이어졌고, 결국 서로 고통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옆방에 있던 사랑의 모친 왕씨는 아들이 행여나 무리할까 걱정해 그를 불러들이려 했으나, 토론을 끝까지 보고자 했던 사안이 그녀를 제지했다. 하지만 왕씨는 사안을 뿌리치고 방에서 나와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 "저는 신혼 때부터 온갖 괴로움과 고생을 겪어가며 일생을 오직 이 아이에게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토론하던 사랑을 끌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사안이 지도림에게 말했다. > "형수님의 저런 강개한 정(情)을 조정의 관리들에게서 볼 수 없다는 것이 한스러울 따름입니다." 왕씨의 개입으로 토론이 갑작스럽게 종료되고 지도림은 해가 질 무렵에서야 사씨 집안을 나와 길을 떠날 수 있었다. 이후 사랑은 동양태수에 임명되어 관직에 진출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행적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그의 아들로는 회계왕 [[사마도자]] 밑에서 거기장사를 지낸 사중(謝重)이 있다. [[분류:동진 및 오호십육국시대/인물]][[분류:진군 사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