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사건사고)] [목차] == 개요 == 東京佐川急便事件 일본의 거대 운송회사가 정치권에 광범위하게 일본정치권에 불법자금을 제공한 정치 스캔들. 같은 회사가 2001년에 나라현 경찰과 관련된 나라 사가와 규빈 사건과 구별하기 위해 '''도쿄 사가와 규빈 사건'''으로 부르기도 한다. [[자유민주당(일본)|자민당]] 정권에게는 4년 전에 일어난 [[리크루트 사건]]과 같이 치명적인 타격을 당한 사건으로 볼 수 있으며 이를 계기로 [[55년 체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후 집권한 첫 비자민당계 총리인 호소카와의 실각도 이 사건과 연관돼 있다. == 사가와 규빈 == 사가와 규빈(佐川急便)은 페덱스나 DHL과 비슷한 일을 하는 일본 최대 규모의 택배 회사다. 리쿠르트가 일본 사회의 전통적 고용 관행을 관리 감독하는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사가와 규빈은 일본의 우체국과 그 주무부처인 우정성에 위협이 되었다. 사업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허가가 필요했고 사가와 규빈은 그 허가를 받고자 사업을 방해하는 정치인들에게 뇌물을 준 것이다. 하지만 [[리쿠르트 사건]] 이후 지난 3년간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버블 경제가 그사이에 끝났고 더 이상 예전처럼 돈을 쉽게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1990년 버블이 끝나고 디플레이션이 시작되면서 일본 금융계의 썩은 속살이 속속 드러났다. 정계와 금융계의 부적절한 유착관계가 노출되었음은 물론, 특히 정계와 금융계의 최상위 단계에까지 범죄조직의 영향이 광범위하게 미치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상세 == 1992년 사가와 규빈[* 사건 이후에도 영업 중인 운송기업이다. 사가와 익스프레스로 불리기도 하며 [[야마토 운수]], 일본 통운과 함께 3대 택배회사로 손꼽힌다.]이 정치권에 대규모 정치자금을 공급한 사실이 불거졌다. 이 사건을 둘러싸고 자민당 계파인 경세회(현 [[헤이세이 연구회]])의 좌장 [[가네마루 신]] 부총재가 의원직을 사퇴하면서 정계를 물러났으며 이에 경세회 일원이자 당내 2인자 [[오자와 이치로]] 역시 사건에 연루돼 증인소환이 불가피한 위기 상황에 몰렸다. 결과적으로 당내 최대계파 경세회는 급속히 와해되어 계원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민당 내에서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개혁성향의 일부 의원들이 탈당했다. 그렇게 생겨난 당들이 [[일본신당]], [[신생당]], [[신당 사키가케]]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신당과 신생당의 주류는 사가와 규빈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경세회 출신들이다. 즉, 태생부터 이 사건과 자유로울 수 없었다.] [[https://blog.naver.com/oopmk/221203470948|#]]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가 [[구마모토현]] 지사 시절이었던 1982년 사가와 규빈으로부터 1억엔을 무이자로 빌린 사실과 이 자금을 유용해 구입한 아파트를 담보로 장인이 [[NTT]] 주식을 구입한 과정의 사실유무 등을 둘러싼 의혹으로 결국 1994년 호소카와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비단 실각의 원인은 이 의혹뿐만 아니라 호소카와 내각은 국민복지세 신설 철회로 인해 연립 파트너인 사키가케, 사회당과 심각한 내분에 휩싸있었고 그의 총리직 사퇴는 이미 시간문제였다. [[파발꾼의 훈도시]]라는 [[도시전설]]의 유래 중 하나로 이 사건이 거론되기도 한다. [[분류:뇌물 사건]][[분류:1992년/사건사고]][[분류:헤이세이 시대/사건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