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튀르키예의 행정구역)] [[분류:튀르키예의 행정구역]] [[파일:빈괼 터키.jpg]] [목차] == 개요 == [[튀르키예어]] Bingöl [[쿠르드어]] Çewlîg [[아르메니아어]] Ճապաղջուր [[튀르키예]] 중북부의 도시. [[디야르바크르]]에서 북쪽으로 100km, [[엘라즈]]에서 동쪽으로 90km, [[에르주룸]]에서 서남쪽으로 110km 떨어진 분지에 자리한다. 인구는 약 12만명으로, 빙괼 도의 주도이다. 빈괼 혹은 빙괼은 튀르키예어로 '천개의 호수'란 뜻으로, 1950년대 기존의 '물이 퍼짐'이란 의미의 아르메니아식 지명인 차팍추르 (Çapakçur)에서 바뀐 것이다. 다만 일대에 호수는 별로 없고 이웃한 엘라즈나 [[무슈]] 쪽에 많다. 13-19세기까지 일대는 쿠르드계 국가인 수베이디 후국과 팔루 후국에 속하였다. 전통적으로 아르메니아 인이 다수 거주했으나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거의 사라졌다. 현대에는 디야르바크르, [[바트만]], [[반]] 등과 함께 [[PKK]] 세력의 근거지 중 하나로 갈등이 있다. [[유프라테스 강]]의 상류인 무라트 강의 체브리프나르 지류와 산지 사이에 형성된 시가지는 2003년 수백명의 사상자를 낸 대지진으로 파괴되어 옛 건물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나마 서쪽 15km 지점 하세레크 스키장 정도가 얼마 없는 관광지 중 하나다. 시가지 북부 빈괼 지류 북안에는 2007년에 세워진 빈괼 대학교가 있고, 동남쪽 7km 지점에는 2013년에 세워진 빈괼 공항이 있다. 해발 1100m의 고지대에 입지했지만 여름에는 35도가 넘을 정도로 덥다. 다만 겨울에는 영하 20도에 이를 만큼 춥다. == 역사 == 고대 ~ 중세 아르메니아 왕국의 소페네 지역에 속하였고 995년 발루 지진 당시 차팍주르라 불렸다. 942년 [[동로마 제국]]령이 된 후에는 당시 황제 [[로마노스 1세]]의 이름을 따 로마누폴리스 (Ῥωμανούπολις)라 명명되어 메소포타미아 테마에 귀속되었다가 자체적인 테마로 개편되었다. 다만 1071년 [[만지케르트 전투]] 후 [[룸 셀주크]]령이 되었고, 차팍추르라 불렸다. 1200년 무렵에는 [[아이유브 왕조]]령이 되어 [[말라즈기르트]]와 함께 그 북쪽 경계를 이루었다. 곧이어 아이유브 조가 쇠퇴하자 1231년 옛 [[아바스 왕조]]의 세도가이던 바르마크 가문의 후예라 전해지는 수베이디 후국이 세워졌다. === 쿠르드 후국들 === [[일 칸국]], [[흑양 왕조]], [[백양 왕조]]에 차례대로 복속한 수베이디 후국은 16세기 초엽 모술과 디야르바크르 일대로 세력 확장에 나섰으나 신생 [[사파비 왕조]]에게 차팍추르를 잃었다. 사파비 조는 일대의 중심이던 남쪽의 한추크 (현 겐츠)까지 점령하려 했으나 수베이디 에미르 압달 베이에게 저지되었다. 1514년 [[찰디란 전투]] 후 압달 베이의 후계자 이스파한 베이 (재위 1510 ~ 1549년)는 [[오스만 제국]]에 복속하였다. 다만 그 영토는 한추크에 국한되었고, 차팍추르는 1495년에 세워져 1516년 오스만 조에 복속한 팔루 후국에 속하였다. 19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근대화 및 중앙 집권 강화와 함께 팔루 후국과 수베이디 후국은 각각 1850년과 1864년에 멸망하였고, 그 지배 계급은 [[하르푸트]]로 축출되었다. === 현대 : 쿠르드 갈등 === 20세기 초엽 [[아르메니아 대학살]] 이후 일대는 [[쿠르드인]]이 다수를 이루게 되었다. 2003년 5월 규모 6.4의 빈괼 지진으로 176명이 사망하고 520명이 다쳤다. 2010년과 2020년에도 소규모 지진이 잇따랐다. 한편 21세기 들어 중앙 정부와 [[쿠르드 노동자당]] 간의 갈등이 표면화되었다. 2016년 10월 차량 폭탄 테러로 2명의 경찰관이 죽고 19명이 다쳤고, 2018년 6월에는 군사 거점이 습격당하여 튀르키예군 1명이 전사하고 3명이 부상당하였다. [[분류:튀르키예의 도시]] [[분류:튀르키예의 옛 수도]] [[분류:쿠르드 도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