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갈리아 황제)] [include(틀:역대 로마 집정관/3세기)] [include(틀:역대 로마 30인 참주)] ||<-2> [[파일: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jpg|width=100%]] || || '''이름''' ||마르쿠스 피아보니우스 빅토리누스[br](Marcus Piavonius Victorinus)|| || '''출생''' ||미상|| || '''사망''' ||[[271년]]|| || '''직위''' ||[[집정관]], 갈리아 제국 프라이토리아니 사령관|| || '''반란 대상'''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 [목차] [clearfix] == 개요 == [[로마 제국]] [[군인 황제 시대]]의 반란자, [[갈리아 제국]]의 제3대 황제. == 생애 == 빅토리누스의 가계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별로 없지만, 갈리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부유한 집안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갈리아 제국 초대 황제 [[포스투무스]]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266년 포스투무스와 함께 집정관을 역임했으며, 프라이토리아니 사령관을 맡았다. 그러던 269년 초, 모군티아쿰(지금의 마인츠)에서 [[라엘리아누스]]가 반란을 일으켰다. 포스투무스는 즉시 모군티아쿰을 공략하고 라엘리아누스를 붙잡아 처형했다. 그러나 모군티아쿰을 약탈하려는 부하들을 막았다가, 격분한 그들에게 피살되었다. 포스투무스를 살해한 부하들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마리우스]]를 갈리아 제국의 새 황제로 선출했다. 빅토리누스는 이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켰고, 269년 중순경 마리우스를 처단하고 황제로 즉위했다. 270년경, 히스파니아 속주는 더 이상 갈리아 제국에 따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이끄는 로마 제국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아우구스토두눔 헤두오름(현재 프랑스 부르고뉴 오툉)의 군대 역시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이에 빅토리누스는 헤두오름으로 쳐들어갔고, 7개월간의 포위 공격 끝에 270년 여름 도시를 점령하고 [[약탈]]했다. 그 후 그는 쾰른으로 이동하여 제국을 통치하였지만, 271년 초 병참장교 아티티아누스의 아내를 유혹했다가 아티티아누스의 원한을 사 암살당했다. 빅토리누스의 어머니 [[빅토리아(갈리아 제국)|빅토리아]]는 즉시 아들의 신격화를 추진하고, 군대에 상당한 돈을 지불하여 자기 편으로 포섭한 뒤, [[테트리쿠스 1세|테트리쿠스]]를 새 황제로 선출했다. [[분류:갈리아 황제]][[분류:로마 제국 집정관]][[분류:3세기 집정관]][[분류:271년 사망]][[분류:30인 참주(로마 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