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작센안할트/행정구역)] [include(틀:독일의 세계유산)] [[분류:작센-안할트]][[분류:독일의 도시]] [include(틀:지도,장소=비텐베르크,너비=500px,높이=281px)] * [[독일어]]: '''[[마르틴 루터|Luther]]'''stadt Wittenberg [목차] == 개요 == [[엘베강]] 연안에 위치한 [[독일]] [[작센안할트]]의 도시. [[드레스덴]] 이전 [[작센 선제후국]]의 수도였으며 [[마르틴 루터]]의 [[종교 개혁]]이 시작된 도시로, 이를 기념하여 시의 주요 건물이 [[세계유산|유네스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 역사 == 1180년, 아스카니아 가문(Haus Askania)[* [[안할트]]를 통치했던 가문으로 초창기 [[브란덴부르크]]도 지배하였다.]의 영지에 [[플랑드르]] 이주민이 정착하였다는 기록으로 처음 언급된다. 같은 해, 안할트 백작 베른하르트[* Bernhard, Herzog von Sachsen 1140~1212. 안할트 백작이자 초대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알브레히트(Albrecht der Bär 1100~1170)의 막내 아들.]가 작센 [[공작(작위)|공작]]을 칭하면서 이 지역이 [[작센]]으로 불리기 시작했으며 1260년부터는 아스카니아 가문의 작센-비텐베르크 분가의 거주지가 되었다. 1356년, [[신성 로마 제국/역대 황제|신성 로마 제국 황제]] [[카를 4세]]가 발표한 [[금인칙서#s-2.8]]에 따라 작센 [[선제후]]로 공인되었으나 작센-비텐베르크 분가는 3대 5명만에 절손되었다. 카를 4세의 차남인 [[독일왕]] [[지기스문트]]는 아스카니아 가문의 작센-라우엔부르크 분가의 요청을 무시하고 1422년, [[베틴 가문]]의 마이센 변경백 프리드리히 4세에게 작센-비텐베르크 공국을 수여하면서 베틴 가문의 영지에 편입되었다. [[토르가우]], [[라이프치히]], 드레스덴, [[마이센(독일)|마이센]], [[바이마르]] 등과 더불어 베틴 가문의 중요 도시가 되었으며 '현자(der Weise)'로 불린 베틴 가문의 에른스트계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작센)|프리드리히 3세]]는 비텐베르크에 궁정을 마련하였다.[* 초창기 베틴 가문의 작센 선제후들은 중세 유럽의 군주들과 마찬가지로 거주지가 일정하지 않았다. 프리드리히 3세의 할아버지인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2세(작센)|프리드리히 2세]]의 경우 라이프치히, 토르가우, 드레스덴 등을 돌아가면서 머물렀다.] 1502년, 프리드리히 3세가 비텐베르크 대학교를 설립하였다. 1517년, 비텐베르크 대학교의 신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가 95개 논제를 내걸면서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고 프리드리히 3세를 필두로 한 에른스트계는 루터를 보호하면서 [[신성 로마 제국]]의 [[루터교회]] 맹주를 자처하였다. 그러나 [[슈말칼덴 전쟁]]에서 6촌인 작센-마이센 공작 [[모리츠(작센)|모리츠]]에게 패한 프리드리히 3세의 조카 [[요한 프리드리히 1세]]가 1547년, [[황제]] [[카를 5세]]에게 비텐베르크의 항복으로 알려진 항복을 하면서 베틴 가문의 알브레히트계가 선제후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새로 선제후가 된 모리츠는 베틴 가문의 오랜 중심지 중 하나였던 드레스덴으로 천도하면서 쇠퇴일로에 들어섰다. [[7년 전쟁]] 도중에는 선제후의 궁전도 파괴되었다. 1815년, [[빈 회의]]로 [[프로이센 왕국]]에 편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을 당하지는 않았으나 시가지 곳곳에서 전투가 벌어지면서 많은 피해를 입었다. [[냉전]] 시기에는 [[동독]]에 속했으며, [[독일 재통일]] 후 부활한 작센안할트에 속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관광 == 시 곳곳에는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건물들이 있다. 루터의 집이 가장 유명하며, 바로 옆에는 루터의 동료였던 [[필리프 멜란히톤]]의 집도 있다. 비록 선제후 궁정은 7년 전쟁으로 파괴되었지만 성 부속 교회가 남아있으며 이 교회에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 의해 박제된 철판 95개조 반박문이 남아있다. 교회 내부에는 루터와 멜란히톤, 작센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와 그의 동생인 작센 선제후 [[요한(1468)|요한]]이 묻혀있다. [[르네상스]] 시기의 유명한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의 집도 있으나 현재는 협회로 사용하고 있어 관광은 불가능하다. 비텐베르크 대학교는 1817년, [[할레 대학교]]와 통합되었기 때문에 옛 건물만 남아있으며 현재는 교육기관 본부로 사용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