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독일 관련 문서)]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ndenburger_Tor_abends.jpg]] || Das Brandenburger Tor ([[독일어]]) Brandenburg Gate ([[영어]]) || [목차] == 개요 == [[독일]]의 수도 [[베를린]]시 [[미테구]]에 있는 문. [[독일]] [[지도]]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단순화한 도안만으로 [[베를린]]을 표시하기도 할 정도로 [[독일]]과 [[베를린]]의 [[랜드마크]]. 일찍이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 [[프로이센군]]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개선식을 하며 [[독일 통일]]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 재통일]] 또한 브란덴부르크 문이 배경으로 되어있다. [[나폴레옹 전쟁]],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베를린 공방전|제2차 세계 대전]], [[베를린 장벽]], [[독일 재통일|1990년의 통일]]과 같은 격동의 [[독일/역사|독일의 근현대사]]를 함께한 건축물로, [[프랑스]]의 [[에펠탑]],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 [[이탈리아]]의 [[콜로세움]]과 더불어 [[독일]]의 대표적인 상징 건축 유적이자 오늘날에는 [[유럽]]의 단결과 평화를 상징하는 건물로도 인식되고 있다. == 역사 == === 건립 === [[파일:Karte_berlin_akzisemauer.png]] 1734년부터 1860년까지 존재한 [[베를린]] 관세벽과 그에 속한 18개의 문의 위치. Brandenburger Thor가 지금의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바로 그 자리이다.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 수도였던 [[베를린]]은 면적 891km^^2^^, 인구 400만에 달하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지금의 [[미테]](Mitte) 구 중에서도 슈프레 [[강]]에 떠 있는 작은 섬과 그 주위만 [[성형 요새|별모양 요새벽]]으로 둘러싼 작은 도시였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국]]이 [[프로이센 왕국]]으로 승격되고 [[베를린]]이 왕국의 [[수도(행정구역)|수도]]로 지정되면서 도시가 점점 성장해나감에 따라 1734년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가 기존의 요새벽을 허물고 몇 배로 커진 [[베를린]] 시가지를 완전히 둘러싼 새로운 성벽[* 방어상의 이유보다는 도시와 외곽의 경계를 구분하여 통행세를 걷기 위해 지은 것이다. 애초에 이름도 '[[베를린]] 관세벽(Berliner Zollmauer)'이다.]을 건설하였다. 이 새로운 성벽에는 시가지와 외곽을 연결하는 총 18개 문이 존재하였는데 지금 브란덴부르크 문이 있는 자리가 바로 그 문들 중 하나가 있던 자리로 예전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의 [[수도]][* 다만 중심지는 [[카를 4세]] 이후로 탕어뮌데였다.]였던 [[브란덴부르크안데어하펠]]로 향하는 문이기 때문에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hor)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참고로, 이 [[베를린]] 세관벽 역시 대다수의 도심 내 성벽들이 그렇듯 일부를 제외하고 시가지 확장 과정에서 헐렸다.] 이후 1780년대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북[[유럽]]의 강국으로 성장한 [[프로이센]]의 국력을 과시하고 평화의 상징으로서 [[베를린]]에 새로운 관문이자 [[랜드마크]]를 건설할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새로운 관문의 자리는 당시 존재하던 브란덴부르크 문 자리로 결정되었으며 원래 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허물고 계획에 따라 새로 세운 결과물이 바로 지금의 브란덴부르크 문. 카를 고트하르트 랑한스(Carl Gotthard Langhans)가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를 참고하여 설계한 이 문은 1788년에 착공되어 3년만인 1791년 완성. 건설 때에는 평화의 문(Fridenstor)이란 이름이 붙었던 브란덴부르크 문 위에는 평화를 상징하는 [[그리스]] 여신 [[에이레네]]와 그녀를 이끄는 사두마차(Qurdriga)가 조각됐다. [[신고전주의]] 대표적 걸작이기도 한 이 건물은 12개의 [[도리스]]식 기둥이 받치고 있었으며, [[베를린]]으로 향하는 5개의 도로가 건립 당시부터 뻗어있었다.[* 평민들에게는 양 쪽 맨 끝의 두 도로만을 이용하는게 허가됐다한다.] === 19세기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Charles_Meynier_-_Napoleon_in_Berlin.png]] 하지만 브란덴부르크 문이 건립되기 직전 발발한 [[프랑스 혁명]]의 물결이 곧 [[유럽]]을 휩쓸었고,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에서 [[프로이센군]]을 박살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베를린]]에 입성한다. 그리고 [[프로이센]] 입장에서는 굴욕적이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브란덴부르크 문을 통한 첫 개선식의 주인공이 바로 [[나폴레옹]]이었다. 더불어 [[개선문]] 위 사두마차(Qurdriga)까지 [[파리(프랑스)|파리]]로 가져갔다. 1814년 [[나폴레옹의 몰락]] 후 [[프로이센군]]이 거꾸로 파리를 점령하면서 사두마차(Qurdriga)는 다시 [[베를린]]으로 돌아왔다. 브란덴부르크 문과 사두마차(Qurdriga)는 이제 평화가 아닌 [[프로이센]]의 승리를 상징하게 됐고, 여신상 역시 평화의 여신이 아닌 [[승리의 여신]] [[빅토리아]]로 바뀌었다. 이에 발맞춰 기존의 여신상에는 없었던 [[독수리]]와 [[참나무]] 잎으로 둘러싸인 [[철십자]] [[깃발]][* [[독수리]]와 [[철십자]]는 [[게르만족]]의 상징으로 익히 알려져있고, [[참나무]] 역시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 당시 [[교황]]의 파문서를 [[참나무]] 밑에서 불살라버린 것 때문에 [[독일]]민족의 상징이 된다. [[독수리]]는 [[게르만족]]의 상징이 아닌 [[로마제국]]의 영향으로 인해 [[독일]]도 쓴것이며, [[철십자]]는 [[독일]]이 유난히 좋아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유럽]] 여러 곳에서 많이 쓰던 것이다. 이 시기 서서히 대두되기 시작하는 [[민족주의]]를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이 추가된다. 이후로 브란덴부르크 문은 [[개선문]]의 역할을 맡아 전쟁에서 승리한 [[프로이센]] 혹은 [[독일군]]이 반드시 지나가는 장소가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randenburger_tor_1871.jpg|width=100%]]|| ||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 이긴 뒤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개선식을 하는 [[프로이센군]] || 다만 여전히 평민들에게는 양 끝의 도로만을 이용하는 것이 허용됐으며 가운데 도로는 왕족만 사용할 수 있었다.[* 다만 [[프로이센]] [[국왕]]을 알현하고자 하는 외국 [[외교관]]들과, [[프랑스]]에게서 여신상을 되찾아 온 포일 [[장군]] 후손들은 중앙 도로를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도로를 이용해야만 하는 규정은 훗날 [[1차대전]]이 종전 무렵 [[독일제국]]이 붕괴될 때까지 유지된다. === 20세기 === [[1차 대전]] 종전 후 [[독일군]]도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개선식을 열었으며, [[1933년]] 집권한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은 자신들의 상징 [[하켄크로이츠]]를 이 브란덴부르크 문에 덕지덕지 붙여놓기도 했다. [[히틀러]]는 [[독일]]이 전쟁에서 승리 시 [[베를린]]을 세계수도로 탈바꿈시키려는 [[세계수도 게르마니아]] 계획에서 브란덴부르크 문을 뒤덮는 새로운 초거대 [[개선문]]을 세우려 했으나 꿈으로 끝났다. 이후 [[2차 대전]]의 [[베를린 공방전]]을 거치면서 브란덴부르크 문은 심하게 파손된다. 기둥 곳곳이 [[총알]]과 [[포탄]] 파편으로 손상된 것은 물론 가장 중요한 부분인 사두마차(Qurdriga)에서 한 마리를 제외한 세 마리 말이 모두 [[목 없는 말|머리가 날아간 것]]. 이러한 손상은 전쟁 이후로도 몇년간 그대로 유지된다. 물론 대충 복구를 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숭숭 뚫린 구멍을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파일:external/32925a923279e437303139a36a15f8b2744d7398d93ca6963e76bb68cee583c2.jpg]] 브란덴부르크 문 앞의 [[T-34-85]] [[전차]]. 참고로 저 [[T-34/85]] [[전차]] 옆에 달린 철망은 현재 [[슬랫아머]]의 기초가 되는 물건이다. [[판처파우스트]]로 숨펑숨펑 부서지는 [[T-34/85]]를 위해 임시방편으로 설치한 물건. [[파일:냉전시기 브란덴부르크문.jpg]] [[베를린 장벽]]이 건재하던 시절의 브란덴부르크 문. [[2차대전]]을 거치면서 여신이 들던 [[참나무]] 잎과 [[철십자]](혹은 [[나치당]] 집권기에 [[하켄크로이츠]]로 개수되었던?)가 떨어져 나간것을 볼수 있다. 이후 세계는 [[냉전]]의 시기로 돌입하고 그 가운데에 서있던 [[독일]]과 그 수도, [[베를린]] 역시 둘로 나뉘게 되었으며 브란덴부르크 문은 동/서 [[베를린]]을 나누는 경계선의 기점이 되었다. 처음에는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모두 서로를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냉전]]이 시작되고 동서독 양쪽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점점 왕래가 힘들어지더니 1961년 [[동독]]은 일방적으로 [[베를린 장벽]]을 세워 통행을 막았다. 물론 아예 막혀버린 것은 아니지만, 동[[베를린]]에서 서[[베를린]]으로 이 문을 통해 건너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특히나 [[동독]]이 [[베를린 장벽]] 중간중간에 세운 8곳의 검문소 중 하나가 이 브란덴부르크 문이었는데, 그것으로 인해 이 문은 [[냉전]]과 [[독일]] [[분단]]의 상징으로 자리잡는 불운을 겪는다. 이를 증명하듯 방독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의 [[이 장벽을 허무시오]] 연설 또한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열렸으며 브란덴부르크 문 또한 [[베를린 장벽]]의 닫혀있는 문으로 은유된다. [[파일:19900312-21b.jpg]]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진 직후인 1990.3.13, 브란덴부르크 문 사두마차(Qurdriga) 위에 날리는 [[동독]] [[국기]]. 건너편으로는 서[[베를린]]인 [[베를린 전승기념탑]]도 보인다. 동/서 [[베를린]]의 경계 자체는 문에서 서쪽으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기에 문 자체는 [[소련군]] 관할, 즉 동[[베를린]] 소속. 때문에 통일 전까지 브란덴부르크 문 위는 [[동독]] [[국기]]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1990년 [[독일 재통일]]을 이루면서, 다시 통일의 상징으로 바뀌었다. [[헬무트 콜]] [[서독]] [[수상]]이 한스 모드로우 [[동독]] [[수상]]과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서로 만난 것이 대표적이다. === 21세기 === [[통일]] 후엔 [[냉전]]으로 인해 소홀했던 건물 관리에 몰두하고 있는데, 2000년12월~2002년10월까지 6백만 [[유로]] 이상의 엄청난 비용을 들여 재단장을 했다. 이 과정에서 여신 깃대의 [[철십자]]와 [[참나무]]잎이 복구된것을 알 수가 있다. [[2009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는 [[마라톤]]과 [[경보(스포츠)|경보]] 경기의 출발점과 결승점으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2014년에는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이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브라질 월드컵]] 우승 기념식을 이 곳에서 열었다. == 기타 == 낮이건 밤이건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많은 곳이다. [[독일 국회의사당]]은 사실상 바로 옆이고 [[베를린 중앙역]]과 [[포츠담]] 광장도 충분히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 문 바로 앞엔 [[러시아]] [[대사관]]과 [[프랑스]], [[미국]], [[영국]] 등 주요국 [[대사관]]들이 위치해 있으며 [[티어가르텐]] 방면 바로 부근에 [[소련군]] 전승기념비[* 게다가 [[러시아]] [[대사관]] 건물이 가장 높은데, [[독일]]을 점령하였으며 동구권의 맹주였던 [[소련]]의 위상을 보여준다.]도 있다. [[대사관]] 바로 옆에는 [[홀로코스트]] 기념비 공원이 조성되있다. [[영화]] [[언노운]]의 주요 무대로 쓴 아들론 [[호텔]]도 바로 앞에 있다. [[베를린 지하철 U5]], [[베를린 S반]] [[브란덴부르거 토어역]]이 인근에 있다. 문의 양쪽을 보면 바로 붙어있는 건물이 있는데, 그중 한쪽에는 <고요의 방>이라는 명칭이 붙은 방이 있다. 여행객들이 잠시 쉬거나 종교를 막론하고 누구나 기도도 할 수 있는 작은 방이다. 방음처리가 잘 되어있어 항상 관광객이 많아 떠들썩한 광장의 바로 옆이지만 조용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입장료는 자율이다. [[파일:A_German_civilian_looks_at_a_large_poster_portrait_of_Stalin_on_the_Unter-den-Linden_in_Berlin,_3_June_1945._BU8572.jpg]] 원래 문 뒤쪽에 위치한 [[운터 덴 린덴역]]에는 [[베를린 전투]] 종전 후 [[소련]]이 설치한 [[스탈린]] 초상화 조형물이 있었다. 언제 철거 됐는지는 불명 2023년 9월, 환경운동가들이 [[페인트]]를 칠해 논란이 됐다.[[https://www.news1.kr/articles/?5174816|#]] == 매체에서의 등장 == === 게임 === ==== [[문명 5]] ====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완성 후 생산되는 유닛이 모두 15 경험치를 받고 나오며 위대한 장군 하나를 공짜로 주는 강력한 원더 중 하나이다. ==== [[도미네이션즈]] ==== 산업 시대의 불가사의로 등장한다.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불가사의/브란덴부르크 성문)] ==== [[월드 인 컨플릭트]] ==== 소비에트 어썰트 첫째 미션 '서베를린 해방전'에서 볼 수 있으며 고증대로 1989년인지라 동독 관할 영역이라서 베를린 장벽 안쪽에 위치한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말라센코 대위가 서베를린 침공 직전 일장연설할 때 문 앞에서 '오늘 우리가 베를린을 해방한다'라는 연설을 하고 미션이 시작된다. 더군다가 제일 가까이 있는 독일 제국의회 건물은 서독 관할인지라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서독 국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의회 건물과 브란덴부르크 문 모두 광역 포격 2방에 날아간다. 이런 내용 때문에 당시 한정판을 구매하면 독일정부 보증서가 붙은 베를린 장벽 조각을 보내주기까지 했다. [[분류:베를린]][[분류:독일의 랜드마크]][[분류:독일의 건축물]][[분류:1791년 건설]][[분류:화폐의 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