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백제의 제후 및 비정통 국왕)] ||<-3><:>'''{{{+1 泰王[br]태왕}}}'''|| ||<:> '''성씨''' ||||<(> 부여(扶餘) || ||<:> '''휘''' ||||<(> 태(泰) || ||<:> '''부왕''' ||||<(> [[의자왕]](義慈王) || ||<:> '''재위 기간''' ||<:> 음력 ||660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백제]] [[의자왕]]의 둘째 아들이다. [[백제멸망전]] 당시 [[사비성]]이 함락될 위기에 처하자 칭왕하고 나당연합군과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 생애 ==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 웅진강 입구의 전투에서 당군에게,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에게 패배해 수도 [[사비성]] 공격이 눈앞에 다가오자 부왕 [[의자왕]]과 태자 [[부여효]]는 좀 더 수비하기 좋은 북쪽 [[웅진성]]으로 피신했다. 이 때 부여태는 사비성에 남아서 떠난 아버지 대신 멋대로 백제왕을 자칭하며 [[사비성]]을 군사로 굳게 지켰다. 그러나 형 [[부여융]]과 조카 [[부여문사]](태자 [[부여효]]의 아들) 등은 서로 논의하기를, [[의자왕]]이 잠시 [[사비성]]을 떠났을 뿐인데, 부여태가 이렇게 멋대로 왕 행세를 했다간 나중에 당군이 물러나기라도 한다면 우리도 부여태에게 동조한 것으로 몰려 안전하지 못할 것이라 여겨 측근을 데리고 밧줄을 타며 사비성을 탈출했다. 부여태는 탈출하는 이들을 보고도 어쩔 수 없어 막지 못했다. 결국 몇 차례 나당연합군과의 전투가 있었고 당군 병사가 사비성에 뛰어올라와 깃발을 세우자 부여태는 성문을 열고 항복했다. 후에 백제가 멸망한 뒤 당의 [[소정방]]은 의자왕과 왕족, 귀족, 백성들을 당나라로 끌고 갔고 부여태 역시 함께 끌려가 당에서 일생을 마쳤다. [[분류:백제의 왕자]][[분류:비정통 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