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유적지)] [include(틀:한국의 정원)] {{{+1 浮碧樓 / Bubyeongnu}}} [[파일:external/pds14.egloos.com/a0114420_49a66dd0b796c.jpg]] [[파일:external/photos.wikimapia.org/97_big.jpg]] ||||<#000000><:>{{{#white {{{+3 부벽루}}}}}}|| ||<:><-2>[include(틀:지도, 장소=부벽루, 높이=250px, 너비=100%)] || [목차] == 개요 == [[북한]] [[평양시]] [[중구역]] 금수산 [[모란봉]] 내의 청류벽(淸流壁) 위에 위치한 [[대동강]]변의 정자. == 상세 == 원래는 [[고구려]] 시대인 393년에 창건된 사찰인 [[영명사]](永明寺)[* 영명사 자체는 [[일제강점기]]까지 보존되어 오다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전소되어 버렸다.]에 부속된 정자였는데, [[임진왜란]] 때 [[평양부]] 전역이 전란으로 불탄 것을 [[광해군]] 6년(1614)에 중건하여 현재에 이른다. 정자의 현판은 [[조선]] 후기 [[평양부]]의 서예가 눌인(訥人) 조광진(曺匡振 1772-1840)이 썼다.[* 조광진이 쓴 부벽루 현판은 당대의 유명한 문인인 추사 [[김정희]] 역시 감탄하였다고 한다. 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4 - 평양의 날은 개었습니다』, 창작과 비평사, 2011에서 인용.] 원래 이름은 [[고구려]] 시기에 건립된 이래로 영명사의 이름을 따서 '영명루(永明樓)'로 불렸는데, [[고려]] 중엽인 12세기에 [[평장사]] [[이오(고려)|이오]]가 정자의 풍경이 마치 [[대동강]]의 푸른 물결 위에 떠 있는 듯하다고 하여 오늘날의 '부벽루(浮碧樓)'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예로부터 부벽루 및 청류벽을 중심으로 한 주변과 부벽루에서 바라본 대동강변의 풍경이 아름다운 것으로 유명하여 '평양8경' 중 하나인 '부벽완월(浮碧玩月)'[* 부벽루에서 바라본 보름달의 풍경.]로 꼽히기도 하였으며, [[진주시|진주]] [[진주성|촉석루]], [[밀양시|밀양]] [[영남루]]와 함께 조선 3대 정자에 속하기도 했다. [[정지상]], [[김황원]], [[이색(고려)|이색]], [[김시습]], [[김정희]] 등의 많은 문인들이 방문하여 부벽루의 풍경을 소재로 많은 시를 남겼고, 현재 부벽루에는 이들의 시가 수많이 걸렸다. 현재 [[북한의 국보]] 제 17호로 등록되었다.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의하면 옛 영명사 자리에 요양소가 세워졌기 때문에 1998년 기준으로는 일반 관광객의 출입이 제한된다고 한다. === [[동명성왕]]과 관련된 설화 === >아래 층안(層岸) 위에 누(樓)가 있어 이름을 [[부벽루]](浮碧樓)라 하는데, 보이는 경치가 이루 다 기록할 수 없다. > >옆에 영명사(永明寺)가 있으니, 곧 [[동명왕]]의 [[구제궁]](九梯宮)이다. > >안에 [[기린(상상의 동물)|기린]](麒麟)을 기르던 굴(窟)이 있는데, 후인(後人)이 비석을 세워서 그 사실을 기록하였다. > >굴 남쪽 백은탄(白銀灘)에 바위가 있는데, 밀물에는 묻히고 썰물에는 드러난다. 이름을 [[조천석]](朝天石)이라 한다. > >민간에서 전하기를, "[[동명왕]]이 기린을 타고 굴 속에서 나와 조천석에 올라서 천상(天上)에 주사(奏事)하였다." 한다. > >[[이승휴]](李承休)가 이르기를, "천상을 오가며 천정(天政)에 나아가니, 조천석 위에 기린이 날쌔도다."한 것은 곧 이를 말한 것이다. >---- > -『[[세종실록지리지]]』, 평안도 평양부 중 부벽루 설명. >[[기린굴]](麒麟窟) [[구제궁]](九梯宮) 안 [[부벽루]] 아래에 있다. [[동명왕]](東明王)이 이곳에서 [[기린(상상의 동물)|기린말]]을 길렀다고 하는데, 뒷사람이 비석을 세워 기념하였다. > >세상에서 전하기를, 왕이 기린말을 타고 이 굴에 들어오니 땅속에서 조천석(朝天石)이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 한다. 그 말발굽 자국이 지금까지 돌 위에 있다.(이하 생략) >-------- >[[조천석]](朝天石) 기린굴 남쪽에 있다. 위에도 보인다. > >고려 [[이승휴]](李承休)의 시에, “하늘로 갔다 왔다 하늘 정사(政事)에 참예했으니, 조천석 위에 기린의 발굽이 가벼웠네.” 하였다. > >김극기의 시에 “기린을 한번 타고 하늘에 올라 조회하니, 부질없이 인간에게 눈물이 줄줄 흐르게 하네. 오직 신령한 바위 서너 개 삐쭉 남아 있어, 푸른 강가에 밀물이 나고 드네.” 하였다.(중략) > >[[권근]]의 시에, “강 가운데 반석(盤石)을 조천이라 이름하니, 황당한 이 말이 예로부터 전하네. 굴속 구멍이 어찌 도로로 통한단 말인가. 허공에 운연(雲煙)을 타기가 쉽지 않도다. 신인(神人)은 절로 범인과는 달랐겠지. 지난 일은 모두 가는 물 따라 옮아갔네. 천 년 뒤 백은탄(白銀灘) 아래 나루터에는, 이제는 오직 오가는 배만 있을 뿐.” 하였다.(이하생략) >---- > -『[[신증동국여지승람]]』 권 제 51, 평안도 평양부 중 기린굴, 조천석 설명 중 일부. 한편, 부벽루 근처 청류벽에는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이 [[기린(상상의 동물)|기린]]을 길들였다는 [[기린굴]](麒麟窟)과 기린을 타고 승천했다는 [[조천석]](朝天石)이 있었다는 설화가 내려온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동명성왕은 [[졸본성]]에서 승하했을 것으로 추정되므로[* 애초에 동명성왕이 [[고구려]]를 건국하고 왕위에 있을 때 평양을 비롯한 한반도 서북지역에는 [[낙랑군]]이 굳건히 존재해 있었고, 평양 지역은 [[미천왕]]대에 들어서야 고구려에 복속된다.] 이 설화를 그대로 믿기는 곤란해 보이지만 평양 일대에 동명성왕과 관련된 설화가 많은 것은 아무래도 [[장수왕]]대에 [[평양성]]으로 천도하면서 동명성왕과 관련된 유적[* [[동명왕릉]], [[정릉사]] 등.]을 옮겨왔고 설화 역시 그대로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 여하간 고려 말기에는 이 설화를 [[권근]], [[이색(고려)|이색]], [[이승휴]] 등의 문인들을 비롯하여 민간에서는 사실상 정설로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이며, 심지어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위와 같이 조천석 및 기린굴과 관련된 기록이 나온다. 아무래도 통일이 돼야 확인해볼 수 있을 듯. 2011년에 북한 사학계에 의해서 부벽루 근처에서 기린굴로 보이는 유적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5649|통일뉴스 기사]] == 문학작품 및 예술작품에서의 부벽루 == [[파일:external/blogimg.ohmynews.com/1008565991.jpg]] [[평안감사환영도]] 중 하나인 부벽루연회도. 앞서 본 것과 같이 부벽루는 [[고려]]ㆍ[[조선]]시대의 수많은 문인들에 의하여 문학작품 및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는데, 이 중 유명한 것을 꼽아 보면, [[정지상]]의 시 [[송인]](送人)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과 이색의 동명의 시를 들 수 있고, [[김시습]]의 『[[금오신화]]』 중 한 부분인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취하여 부벽루에서 노닐다) 역시 부벽루를 배경으로 한 청년과 [[고조선]] 왕족 출신 선녀[* 정확히는 [[고조선]]([[기자조선]]?) 마지막 임금인 [[준왕]]의 공주라는 설정.] 간의 연정을 그린 것으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김홍도]]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인 '부벽루연회도(浮碧樓宴會圖)'가 전해져 내려온다. === [[이색(고려)|목은 이색]]이 지은 동명의 시 === >{{{+2 [ruby(昨過永明寺, ruby=작 과 영 명 사)] }}} 어제 영명사를 지나다가 >{{{+2 [ruby(暫登浮碧樓, ruby=잠 등 부 벽 루)] }}} 잠시 부벽루에 올랐는데 >{{{+2 [ruby(城空月一片, ruby=성 공 월 일 편)] }}} 성벽 하늘엔 달 한 조각 떠 있고 >{{{+2 [ruby(石老雲千秋, ruby=석 로 운 천 추)] }}} 오래된 조천석 위엔 천년 세월의 구름이 흐르네. >{{{+2 [ruby(麟馬去不返, ruby=인 마 거 불 반)] }}} [[기린(상상의 동물)|기린마]]는 떠나서 돌아오지 않았으니 >{{{+2 [ruby(天孫何處遊, ruby=천 손 하 처 유)] }}} [[동명성왕|천손]]은 어디에서 노니시는가? >{{{+2 [ruby(長嘯倚風磴, ruby=장 소 의 풍 등)] }}} 바람부는 돌다리에 기대어 길게 휘파람 부니 >{{{+2 [ruby(山靑江自流, ruby=산 청 강 자 류)] }}} 산은 푸르고 [[대동강|강물]]은 절로 흐르더라. >---- >[[이색(고려)|이색]](李穡), 부벽루(浮碧樓) 부벽루에 올라 바라본 옛 [[고구려]]의 수도였던 [[평양성]]과 [[동명성왕]]의 설화가 내려오는 조천석을 통하여 옛 [[고구려]]의 영광과 비교하여 산천은 그대로이나 [[맥수지탄|지금은 쓸쓸한 터만 남은 왕조의 무상함]]을 노래하고 있으며, [[위화도 회군|당시]] [[여말선초|몰락해 가던]] [[고려]]에 대한 애정과 미련, 아쉬움 등의 복잡한 감정을 표현한 시이다. === [[정도전|삼봉 정도전]]이 지은 시 === >{{{+1 '''평양 부벽루에 제하다(題平壤浮碧樓)'''}}} >{{{+2 [ruby(永明山下大江流, ruby=영 명 산 하 대 강 류)] }}}영명산 아래로 큰 강 흐르니 >{{{+2 [ruby(畫舸來尋浮碧樓, ruby=화 가 래 심 부 벽 루)] }}}배를 타고 부벽루를 찾아왔다오 >{{{+2 [ruby(風篴正高天欲暮, ruby=풍 적 정 고 천 욕 모)] }}}젓대 소리 드높고 날은 저문데 >{{{+2 [ruby(煙波渺渺使人愁, ruby=연 파 묘 묘 사 인 수)] }}}연파는 아득아득 시름을 주네 >---- >『삼봉집』 삼봉 정도전이 지은 시이다. === [[유정(조선)|사명대사 유정]]이 지은 시 === >{{{+1 '''부벽루에서 이 한림(이색)의 운을 따라 쓰다(浮碧樓用李翰林韻)'''}}} >{{{+2 [ruby(天孫何處去, ruby=천 손 하 처 거)] }}}[[동명성왕|천손(天孫)]][* 주몽을 말한다.]은 어느 곳으로 떠나가고 >{{{+2 [ruby(波撼故城樓, ruby=파 감 고 성 루)] }}}강 물결만 옛 성루를 뒤흔드는가 >{{{+2 [ruby(日暮碧雲散, ruby=일 모 벽 운 산)] }}}날 저무는데 푸른 구름 흩어지고 >{{{+2 [ruby(月明紅樹秋, ruby=월 명 홍 수 추)] }}}달이 밝으니 가을 나무 붉도다 >{{{+2 [ruby(人間風雨急, ruby=인 간 풍 우 급)] }}}인간 세상은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2 [ruby(天上鳳凰游, ruby=천 상 봉 황 유)] }}}천상에서 봉황 타고 노니시는지 >{{{+2 [ruby(一闋後庭曲, ruby=일 결 후 정 곡)] }}}한 곡조 후정(後庭)의 그 노래[* 후정곡은 망국의 노래를 뜻한다.]여 >{{{+2 [ruby(千年江水流, ruby=천 년 강 수 류)] }}}천년토록 [[대동강|강물]]만 흐르는구나[* 왕조는 망해도 대동강을 계속 흐른다는 뜻이다.]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1 '''부벽루에서 이 한림(이색)의 운을 따라 쓰다(浮碧樓用李翰林韻)'''}}} >{{{+2 [ruby(箕王古城下, ruby=기 왕 고 성 하)] }}}[[기자(상)|기자(箕子)]]가 다스리던 옛 성의 아래 >{{{+2 [ruby(波動古城樓, ruby=파 동 고 성 루)] }}}강 물결이 고대의 성루를 뒤흔드네 >{{{+2 [ruby(國破碧雲暮, ruby=국 파 벽 운 모)] }}}나라는 망해도 저녁 구름은 푸르고 >{{{+2 [ruby(月明紅樹秋, ruby=월 명 홍 수 추)] }}}밝은 달빛 아래 가을 나무 붉도다 >{{{+2 [ruby(人間風雨惡, ruby=인 간 풍 우 악)] }}}인간 세상은 비바람이 험악한데 >{{{+2 [ruby(天上鳳凰遊, ruby=천 상 봉 황 유)] }}}천상에서는 봉황 타고 노닐겠지 >{{{+2 [ruby(一曲後庭罷, ruby=일 곡 후 정 파)] }}}후정(後庭)의 한 곡조[* 망국의 노래를 뜻한다.] 끝난 뒤에도 >{{{+2 [ruby(蒼蒼江水流, ruby=창 창 강 수 류)] }}}희부옇게 [[대동강|강물]]은 절로 흐르네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사명대사가 목은 이색의 시와 같이 쓴 시이다. >{{{+1 '''부벽루에 오르다(登浮碧樓)'''}}} >{{{+2 [ruby(落花春晩箕城路, ruby=낙 화 춘 만 기 성 로)] }}}늦은 봄날 꽃잎 지는 평양의 거리 >{{{+2 [ruby(遠客初登浮碧樓, ruby=원 객 초 등 부 벽 루)] }}}먼 나그네 부벽루에 처음 올랐네 >{{{+2 [ruby(鳳去帝鄕天似水, ruby=봉 거 제 향 천 사 수)] }}}제향(帝鄕)으로 봉황 떠난 하늘은 물과 흡사하고 >{{{+2 [ruby(月高汀樹夜如秋, ruby=월 고 정 수 야 여 추)] }}}물가 숲의 달 높은 밤은 가을과도 비슷해라 >{{{+2 [ruby(未央踈柳千年色, ruby=미 앙 소 류 천 년 색)] }}}미앙(未央)의 성근 버들은 천년토록 한 빛이요 >{{{+2 [ruby(長樂殘鐘此日愁, ruby=장 락 잔 종 차 일 수)] }}}장락(長樂)의 쇠잔한 종소리는 오늘의 근심이로다 >{{{+2 [ruby(人事已隨雲雨散, ruby=인 사 이 수 운 우 산)] }}}인사(人事)는 이미 운우(雲雨) 따라 흩어지고 >{{{+2 [ruby(浿江依舊向西流, ruby=패 강 의 구 향 서 류)] }}}대동강만 여전히 서쪽으로 흐르네 >---- >『사명당대사집(四溟堂大師集)』 === [[이수일과 심순애|장한몽]]에서의 언급 === 사실 평양 밖에서 부벽루라는 지명이 알려지게 된 건 오로지 장한몽 주제가의 첫 구절 '대동강변 부벽루에 산보하는' 때문이다. 일본 신파소설 금색야차가 평양으로 로컬라이징되면서 원작의 [[아타미]] 해변가가 대동강 부벽루로 바뀌었다. 이수일이 심순애를 걷어차는 장면이 부벽루 앞에서 연출되었고, 이 때문에 부벽루가 평양 바깥에서도 알려지게 된다. 남원에 가 본 적이 없어도 [[춘향전]] 때문에 [[광한루원|광한루]]는 다들 아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 관련 문서 == * [[대동강]] * [[동명성왕]] * [[동명왕릉]] * [[모란봉]] * [[영명사]] * [[이색(고려)|이색]] * [[평양성]] [[분류:고구려/건축]][[분류:조선/건축]][[분류:성채/대한민국]][[분류:북한의 국보]][[분류:중구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