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한자 : 奉元寺 / 로마자 : Bongwonsa [[http://www.bongwonsa.or.kr/index.php|홈페이지]] == 개요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에 위치한 사찰이며, [[한국불교태고종|한국불교 태고종]]의 총본산이다. == 역사 == 889년(신라 진성여왕 3년)에 [[도선]]국사가 금화산 서쪽에 있는 신도의 집을 희사받아 창건한 뒤 반야사(般若寺)라 했다고 한다. 그뒤 고려말 공민왕 때 태고(太古) [[보우(고려)|보우]]가 중건·보수하고 금화사라고 개칭했다. 1651년 봄경, 큰 화재로 많은 피해가 있었지만, 1655년 다시 중건하였다. 구한말에는 개화파인 [[이동인]][* 물론 학계에서는 이동인이 친일파나 당시 일본의 이중스파이였을 가능성이 있다는 설도 있다.]이 대각사에 주석하여, 이곳 봉원사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 등, 많은 개화파 인사들과 비밀리에 접촉하여 근대문명과 관련된 책을 읽고, 자주 모여 토론을 벌이며, [[갑신정변]]도 모의하기도 했다. 이같은 역사적 사실 때문에, 서재필은 자신의 자서전에서 이곳 봉원사를 개화파의 온상이라고 하였다.[* [[https://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209265|참고자료]]] 6.25전쟁때 많은 피해가 있었는데, 복원을 해서 지금의 봉원사가 되었다.[* 이 때, 흥선대원군의 별장이었던 공덕리(현재의 염리동) 소재 아소당의 본채 건물을 옮겨와서 현재 대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신도들 사이에선 봉원사를 [[새절역|새절]]이라 부르기도 하나, 서재필의 자서전에서도 새절이라고 표현되어 있어서, 언제부터 새절이라고 불렀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봉원사에 있는 동종(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64호)은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조성하기 위해 철거했던 [[가야사]]의 종이었다. 이 절에서 이름을 따온 [[봉원천]]이라는 하천도 있으나[* [[서대문구]] [[창천동]]의 '''창천'''이 바로 이 하천이다.] 현재는 전구간 [[복개천|복개]]되었다. [[분류:한국의 절]][[분류: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