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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white 고사성어}}}]]''' || || {{{+5 '''[[病]]'''}}} || {{{+5 '''[[入]]'''}}} || {{{+5 '''[[膏]]'''}}} || {{{+5 '''[[肓]]'''}}} || || 병 병 || 들 입 || 염통 밑 고 || 명치끝 황 || [목차] == 개요 == 병이 고황까지 들었다는 말로, 본디는 난치나 불치병에 쓰던 말이었다. 지금은 의미가 확장되어 어떠한 상황이 이리 꼬이고 저리 꼬여 회복 불능에 빠진 상태를 비유하는 데도 쓰인다. [[줄임말]]인 고황(膏肓) 역시 이제는 같은 의미로 사용되나, 간혹 '남은 물론 자신도 도저히 어쩔 수 없을 만큼 무언가에 깊이 빠져든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연 풍경을 사랑하는 태도가 지나침을 자조적으로 표현할 때 쓰는 천석고황(泉石膏肓)이라는 [[사자성어]]가 이런 용례에 해당한다.] 출전은 [[관우]]의 애독서였던 [[춘추좌씨전]]. == 상세 == [[춘추시대]]의 [[진(춘추오패)|진(晉)]]나라 군주였던 [[진경공|경공]](景公)의 일화에서 유래되었다. 경공은 즉위한 후 대장군 도안고(屠岸賈)를 사구(司寇)[* 오늘날의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문제는 도안고가 진의 호족이었던 조씨 문중[* 후일 진을 갈라 [[조(전국시대)|조나라]]를 세우는 바로 그 집안이다.]과 원한관계에 있었던 것. 경공의 선선대 군주였던 영공(靈公)이 재상 [[조선자|조돈]](趙盾)[* 진문공이 공자 중이로 열국을 편력하던 시절의 가신인 조최,,,趙衰,,,의 아들이다.][* 盾의 보편적인 독음은 '순'이지만([[모순]]의 순이 바로 이 글자이다), 사람 이름에 쓰일 경우에는 돈으로 읽는다.]의 간언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폭정을 하자 빡친 조돈의 동생 조천(趙穿)이 영공을 시해하고 영공의 숙부였던 흑둔(黑臀)[* 여담이지만 사람 이름이 진짜로 '''검은 엉덩이'''다. 춘추오패의 한 사람인 [[진문공]]의 아들인데, 대체 진문공은 무슨 생각으로 아들 이름을 검은 엉덩이라고 지은 걸까나... --진짜 엉덩이가 까맸다 보다--]을 성공(成公)으로 옹립한 일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조씨와 도안고 사이가 벌어진 것. 당장 성공의 치세에서는 조돈의 아들 조삭(趙朔)이 성공의 누이와 결혼하여 부마가 되는 등 조씨 가문이 잘 나갔으나, 경공이 즉위한 후 정세가 일변했다. 도안고가 영공 시해의 책임을 물어 조씨 가문을 습격해 멸족했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임신 중이던 조삭의 아내는 공실의 여인이었던 까닭에 목숨을 건졌는데, 이후 유복자로 태어난 것이 조문자(趙文子) 무(武)이다. 조무는 공손저구(公孫杵臼), 정영(程嬰), 한궐(韓厥)[* [[한(전국시대)|한나라]]를 세운 집안의 인물이다.] 등의 도움으로 목숨을 부지하고 세력을 길러 복수에 성공했으며, 이를 그린 작품이 중국 고전 4대 비극의 하나로 꼽히는 [[조씨고아]]이다. 세월이 흘러 10여년 뒤, 경공이 잠을 자는데 꿈에 귀신이 나와 '어째서 너는 나의 자손을 죽였는가! 용서할 수 없다'고 쫓아왔다. 꿈에서 깬 경공이 점쟁이를 불러 대체 어떻게 된 조화인지 물어보자 점쟁이가 해몽했다. > "죄 없이 죽은 [[공신]]의 조상이 저주를 내렸습니다. 그의 혼이 분노하고 있습니다." > "그를 달랠 수 있겠는가?" > "그게 말입니다... 실은 이게 보통 원한이라면 달랠 수 있지만 이 원한은 여간 사무친 원한이 아닙니다. 소신이 감히 말씀드리건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내년 햇보리를 맛보실 수 없을 것입니다." 불안해진 경공은 근심하다 결국 병이 나고 말았는데, 병이 깊어 위중해지도록 진의 의사들은 '시간을 더 주셔야'라는 말 외엔 똑같이 속수무책이었다. 국내에서 답이 나오지 않으니 외국의 의사들을 초빙할 수밖에. 마침 이웃 국가였던 [[진(통일왕조)|진나라]]가 이 소식을 듣고 딱히 여겨 자국의 고완(高緩)이라는 명의를 보내주겠다고 연락해왔다. 당대의 명의가 왕진을 온다는 말에 경공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이대로 병이 나았다면 고사성어로 성립될 리가. 경공의 꿈에 병이 두 동자로 변하여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는 것이었다. > "큰일났다. 진의 의사인 고완이 여기로 온다는데, 고완은 명의야. 그가 손을 쓴다면 우리는 끝장이야." > "큰일이네, 가만! 그럼 어딘가로 도망가면 되지 않을까? 심장과 횡격막 사이는 어때?" > "그거 좋겠다. 그리 들어가서 숨어 있기로 하자." 괴이한 꿈도 다 있다고 생각한 경공이었으나, 곧 고완이 도착해서 진맥을 한 후 > "어렵겠습니다. 병이 심장과 횡격막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약도 듣지 않고 침도 닿지 않는 곳이니 제 능력으로는 미치지 못합니다." 하고 진단을 내리자 '과연 고완은 천하의 명의로구나. 후히 대접해 보내주거라.'고 말할 뿐 뭔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포기하면 편해|포기하고 편해진]] 경공은 마음이 안정되니 오늘 내일 하던 병의 진전도 멎고 건강을 되찾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듬해 봄이 되자 햇보리가 수확되어 맏물이 임금인 경공의 수랏간에 올라왔는데, 숟가락을 들던 경공에게 '햇보리도 못 먹고 죽을 것'이라던 점쟁이의 예언이 떠올랐다. 햇보리가 올라온 밥상이 눈 앞에 놓이자 작년 점쟁이의 예언에 새삼 빡친 경공은 요망한 점쟁이을 참하라는 명을 내리고 돌아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뱃 속이 꾸르륵거리며 난리가 난 것 아닌가. 아픈 배를 쥐고 화장실로 달려가 배변작업을 시작할 때까지는 좋았지만, 갑자기 변소 바닥이 무너져버렸다! 놀란 시위가 달려왔을 때는 이미 경공이 화장실에 빠져 [[https://m.ruliweb.com/best/board/300143/read/53126654|죽은 다음이었다]][* 판본에 따라서는 즉사하지는 않고 변소에서 구조되었지만 똥독이 심하게 올라와 시름시름 앓다가 결국 사망했다는 얘기도 있다.][* 1184년 [[신성 로마 제국]]의 [[에어푸르트]]에서도 [[https://ko.wikipedia.org/wiki/%EC%97%90%EB%A5%B4%ED%91%B8%EB%A5%B4%ED%8A%B8_%EB%98%A5%ED%86%B5_%EC%82%AC%EA%B3%A0|에르푸르트 똥통 사고]]라 하여, 60여 명의 [[귀족]]들이 정치적인 문제로 회의를 하다가 바닥이 꺼지면서 똥통에 빠져죽은 사건이 있었다(...). 옛날 화장실의 구조 상, 황당하긴 해도 충분히 있음직한 사고였던 듯 하다.]. 결국 점쟁이의 말대로 [[그러나 이 사진이 표지로 사용되는 일은 없었다|경공이 햇보리를 맛보는 일은 없었다]]. 역대 왕들의 사인 중 최악으로 당당히 이름 올릴 수 있을 듯...[* 다만, 변소에 빠져 죽지는 않고 변소에 가려다가 [[돌연사|갑자기 쓰러져서 죽었다]]는 판본도 있다. 여기서도 햇보리밥을 먹지 못했다는 건 동일하다.] 베개에 눌려 죽은 동진의 [[효무제(동진)|효무제]] 사마요는 그나마 침대에서 죽기라도 했지... 여담으로, 경공의 환관인 강충은 그날 아침에 '경공을 업고 하늘로 오르는 꿈'을 꾸고 이를 동료들에게 자랑했는데, 말이 씨가 되어 [[순장]]당했다. 꿈을 떠벌이다 결국 입이 방정으로 순장당해 경공을 진짜 모신 것. [각주] [[분류:고사성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