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벨라베자조약.jpg|width=100%]]}}} || || [[1991년]] [[12월 8일]]에 열린 벨로베즈스카야 조약 서명식 || [목차] [clearfix] == 개요 == > Союз ССР как субъект международного права и геополитическая реальность прекращает своё существование >[[국제법]]적 및 [[지정학]]적 실체로서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멸망|더 이상 실존하지 않는다]].''' >---- >- [[벨라루스]]의 [[벨로베즈스카야 숲]]에서 이루어진 [[러시아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러시아]],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벨로루시]],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우크라이나]]의 정상들이 합의한 내용 중 >1991년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독립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에 대거 참여해 강대국 소련을 역사의 쓰레기통에 쳐박히도록 만들었다. >----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 2022 [[https://www.aladin.co.kr/m/mletslooks.aspx?ISBN=8935677582|알라딘 미리보기p.33]] [[1991년]]에 [[소련]]의 일부 구성국간에 체결한 [[조약]]. [[벨라루스]] [[벨라베자 숲]]의 명칭에서 유래하며 영어식으로는 벨로베자 조약(Belovezha Accords)이라 한다. [[1991년]] [[12월 8일]] [[러시아 SFSR]] 대통령 [[보리스 옐친]], [[벨라루스 SSR]] 최고회의 의장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우크라이나 SSR]] 대통령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소련]]을 해체하고 [[독립국가연합]](CIS)을 창설하는 것에 합의한 [[조약]]이다. 이 조약을 끝으로 소련은 완전히 해체됐다. == 역사 == [[8월 쿠데타]] 실패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 이후 [[12월 8일]]에 [[벨라루스]]에 위치한 벨라베자 숲의 [[별장]]에 모여서 서명한 조약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러한 행위가 소련 정부의 동의를 거치지 않았다고 비판하였으나 다른 [[소련 #5|공화국]]들이 이를 동의하자 고르바초프도 결국 승인하게 되었다. 이 조약과 함께 같은 해 [[12월 21일]]에 체결된 ''''알마아타 조약(Alma-Ata Protocol)\''''[* 러시아어: Алма-Атинская декларация]으로 인해 [[독립국가연합]]이 수립되면서 고르바초프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났고 [[12월 26일]]에 소련이 [[소련 해체|해체되었다]]. [[1991년 소련 국민투표]] 결과에서 보듯이 소련 해체 반대 여론이 훨씬 더 높았던 과거가 있지만 소련의 핵심국가인 우크라이나가 [[1991년 12월 1일 우크라이나 독립 국민투표]]를 통해 압도적인 찬성표로 독립을 찬성하자 소련 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우크라이나 독립 투표는 소련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국민투표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뿐만 아니라 세계 역사의 방향도 바꾸어 놓았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모스크바에 종속되어 있는 나머지 공화국들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옐친은 1991년 12월 8일 벨라루스 벨라베자의 사냥 휴양숲에서 크라프추크를 만났을 때 한 번 더 새 연방조약안에 서명하도록 설득했다. 크라프추크는 크림 반도와 동부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모든 주의 국민투표 결과를 언급하며 이를 거부했다. 만일 우크라이나가 연방조약안에 서명하지 않는다면, 러시아도 서명할 수 없다고 옐친은 새로우 대통령에 선출된 크라프추크에게 말했다. 옐친은 몇 차례에 걸쳐 미국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가 없는 상태에서 연방에 러시아가 남아 있으면 이슬람계 주민들에 비해 수적 열세에 처한다고 말했다. '''거대한 에너지 자원을 가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포함되지 않는 연방은 다른 공화국들에게 아무런 정치적·경제적 매력이 없었다.''' 벨라베자에서 세 슬라브 공화국 지도자인 옐친과 크라프추크, 스타니슬라우 슈스케비치는 새로운 국제적 연합체인 독립국가연합을 창설했고,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12월 21일 여기에 가입했다. 소비에트 연방을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 >세르히 플로히, 『유럽의 문 우크라이나 : 독립과 생존을 위한 투쟁의 역사』, 허승철 역, (서울 : 한길사, 2022), p.550. 세르히 플로히는 하버드 대학 역사학과 석좌교수로 그의 저서는 아마존 서점 독자 리뷰가 1,200개 이상 달릴 정도로 전문가나 일반 독자들에 이르기까지 우크라이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읽을 만한 역사서로 인정받는다.[[https://www.aladin.co.kr/m/mproduct.aspx?ItemId=297878801&start=slayer|#]]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 교수의 서적을 부정하는 국내의 극소수 측은 "카자흐 SSR 대통령이었던 나자르바예프는 해당 조약을 당일에 강력 비판"했지만, 세르히 플로히가 이런 사실을 왜곡했다고 음해한다. 하지만 세르히 플로히 하버드 교수의 서적에는 그에 대해 부정하는 주장이 __명시된 문장은 존재하지 않는다__. 즉, 플로히 교수에게 반론한 근거가 없는 측이 플로히 교수의 신뢰성을 깍아내기 퍼트린 유언비어다. 2007년에 [[보리스 옐친]]이 사망하고, 2022년 5월 4일에 [[스타니슬라우 슈시케비치]], 2022년 5월 10일에 [[레오니드 크라우추크]]가 사망함으로써 벨로베즈스카야 조약의 3인방이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각주][include(틀:표절, version=3~15, source=한국어 위키백과 벨라베자 조약 문서)] [[분류:조약, 협약, 협정]][[분류:소련의 역사]][[분류:러시아-우크라이나 관계]][[분류:러시아-벨라루스 관계]][[분류:우크라이나-벨라루스 관계]][[분류:우크라이나의 역사]][[분류:벨라루스의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