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중국의 관광지]][[분류:중국의 박물관]] [include(틀:중국 관련 문서)] || [[파일:China_Nationalities_Museum_-_panoramio.jpg|width=100%]] || [[파일:7a72a9a4726843d89a7941f89ff1b87a.jpg|width=100%]] || [[파일:820f6d6d65144b81b1b43ff5570a0bd4.jpg|width=100%]] || || 중화민족박물원 남원의 다리3탑(大理三塔) || [[조선족]] 마을의 한옥 || [[만주족|만족]]박물원의 당자 || || [[파일:7e87114f997e443593a36771599c0d54.jpg|width=100%]] || [[파일:65ecc299a2af41a2a8c30a6e1998ffdb.jpg|width=100%]] || [[파일:c4cb422a22ff46b89654ddfe3f5d42d7.jpg|width=100%]] || || [[고산족]] 전통가옥 || [[강족]] 마을 || [[포의족]] 마을 || || [[파일:32e9270a2ca04e5d9c1f76fcb366076d.jpg|width=100%]] || [[파일:8502e0ecb8c74551b6555a765548a3cd.jpg|width=100%]] || [[파일:f0b592afe3964beda872c5b1f06e5147.jpg|width=100%]] || || [[동족(민족)|동족]] 다리 || [[티베트인]] 전통가옥 || [[토족]] 전통가옥 || '''{{{+1 [ruby(中华民族博物院, ruby=zhōnghuámínzú bówùyuàn)] | China Ethnic Museum }}}''' == 개요 == [[중화인민공화국]] [[차오양구]]에 위치한 인류학박물관. 이름에서 느껴지듯 중국에 존재하는 민족들을 모아놓은 박물관이다. 운영은 베이징중화민족원유한공사(北京中华民族园有限公司)에서 전담중이다. 사실 이름이 너무 임펙트가 세서 그렇지 나름 중국 내 소수민족들에 대한 설명 등도 잘 해 놓은 곳이라서 꽤 유익한 곳이기는 하다. 참고로, 여기는 박물관이지만 내부에 존재하는 소수민족 안내원들은 이 박물관에 '''거주한다'''. 그래서 사실상 테마파크나 박물관보다는 민속촌의 역할을 더 강하게 하는 지역이다. 현재 AAAA급 여유경구로 지정된 상태이다. == 상세 == 내부에는 총 36개의 민족박물관이 존재하며[* [[조선족]]도 존재한다. 조선족의 위치는 북원. 단, 현지인이 고용된 민속촌이 36개인거지 박물관 전시 자체는 56개 민족 전부 전시를 해 놓았다.], 남원과 북원의 2개의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이 두 공간 사이에는 대로가 하나 지나가기 때문에 따로 왕래를 위한 구름다리도 설치되어있다. 또한 동계에는 남원이 휴관에 들어가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남원은 남방, 북원은 북방계 소수민족들 전시관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착각하나, 실제로는 그냥 무작위로 배치를 해 놓았다.[* 일례로, [[위구르족]]은 남원인데 [[묘족]]은 북원이다.] 그러나 북원은 동남아계 건물들 위주로 꾸미고 남원은 대초원 분위기로 꾸미는 등, 아예 일관성 없게 배치를 하지는 않았다. 상술한 대로 이 곳에서 설치된 민족원의 현지인 가이드들은 여기서 직접 거주중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민족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 또한 민속촌 형태로 꾸며진 박물관인지라 각 민족구역의 건축물들도 해당 소수민족의 전통 건축양식대로 지어졌다. == 가는 법 == [[베이징 지하철]] [[베이징 지하철|8호선]] [[아오티중신역(베이징)|아오티중신역]]과 [[베이투청역]] 사이에 걸쳐있다. 아오티중신역은 북원, 베이투청역은 남원에서 가까우며, 어디로 가든 입장이 가능하고 입장료는 90위안으로 똑같다. 단, 동계에는 남원이 휴관에 들어가므로 유의해야 한다. == 기타 == 박물원 북원에 위치한 [[만주족|만족]]박물원(满族博物院)은 박물관 조성을 위해 건축된 곳이 아닌 [[9단8묘]] 중 하나인 당자(堂子/ᡨᠠᠩᠰᡝ)이다. 이곳은 본디 [[청나라]]에서 만주족 전통신을 모시기 위해 건설한 제단으로, 오직 만주족만이 해당 제례에 참여할 수 있었기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그로 인해서 9단8묘 중 유일하게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로도 지정되지 못 하였고, 제묘로써의 역할도 잃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 건축물에 입주한 민족이 만주족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