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북한의 유적지)] [목차] ||||<#000000><:>{{{#white {{{+3 법운암 }}}}}}|| ||<:><-2>[include(틀:지도, 장소=39.03510587279644%2C125.6187352121366, 높이=250px, 너비=100%)] || == 개요 == [[북한]] 평양시 만경대구역 룡봉리에 있는 암자다. == 상세 == [[고구려]] 시대 때 건설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시대에 다시 한번 재건되었다. [[종교]]를 매우 삼엄하게 통제하는 북한에서, 그것도 수도인 [[평양]] 시내에[* [[모란봉구역]]의 [[룡화사]]도 있긴 하다. 평양 근교에 [[광법사]]도 있으나, 이 절은 본평양과 조금 떨어진 [[대성산]]에 위치해 있다.] [[불교]] 암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김일성]]이 [[1967년]]과 [[1974년]] 두 차례에 걸쳐 이곳을 방문해서 보수하라는 교시를 내렸기 때문이다. [[봉수교회]]나 [[칠골교회]] 등과는 달리, 법운암은 종교시설로서의 기능을 잃어버린 채 문화유적이자 휴양지로서만 기능하고 있다. 나한전, 산신각, 칠성각, 승방 등 다섯 채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본전은 전면 5칸(10.27m), 측면 3칸(6.2m)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4개의 흘림기둥이 합각지붕을 받치고 있다. 전면 5칸 중에서 서쪽 2칸은 본래 [[부엌]]으로 사용되었다. 1974년 보수되면서 건물의 구조가 변경되어 전면 5칸이 모두 툇마루가 되었다. 주존불은 [[비로자나불]]이다. 현판의 낙관은 [[안동 김씨]] 가문의 김이인(金履寅)이라는 사람이 썼다.[* 이 사람은 [[영조]] 48년 동네 사람에게 [[사적제재]]를 가해 죽음에 이르게 했다가 인맥을 동원해서 겨우 처벌을 피했다는 기록이 있다.] [[2003년]] 남한 측의 단청 기술자가 평양에 파견되어 단청 불사 작업을 지원했다. 이때 불상에 대한 개금(금박 입히기) 작업도 새로 이루어졌다. [[2007년]]에는 담장과 대문이 새로 설치되었다. == 여담 == 법운암이 위치한 곳이 용악산이라서 이곳에서 평양 시내와 대동강변이 잘 보인다고 한다. [각주] [[분류:북한의 절]][[분류:평양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