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nguard rocket (Vanguard) Vanguard TV-3 (Vanguard Test Vehicle-Three) [목차] == 개요 == [[미국]]이 [[해군]] 주도로 개발한 로켓 및 인공위성의 이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으로 예정되었으나 소련의 스푸트니크가 선수를 치면서 패배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 상세 == 원래는 세계 최초로 발사된 인공위성이 될 예정이었으나, [[소련]]에서 선수를 쳐서 [[스푸트니크]] 1호를 먼저 발사함으로써 미국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놀란 미국은 1957년 12월 6일 급히 뱅가드 TV 3호를 발사했지만, 발사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되면서 대대적인 망신을 당했다. '''고작 4피트(1.2미터)가량 떠오르다가 그대로 주저앉으면서 폭발했기 때문.''' [[https://www.youtube.com/watch?v=ZvnKfgDANKY|당시 생중계된 영상]][* 원본이 아닌 컬러로 복원된 영상이다.]으로 그야말로 [[나라 망신]]이 아닐 수 없다. 이때 [[소련]]은 공식적으로 '''조문'''을 보냈는데, 무인 로켓이니 죽은 사람도 없었으므로 이건 그냥 놀려먹기 위해서였다. 이 조문에서 소련은 뱅가드([[전위대|전위부대]])가 아니라 리어가드(후방부대)라고 부르자는 정중한(?) 제안을 했고, 미국 언론은 뱅가드 TV3에 카푸트니크(Kaputnik, 결딴난 스푸트니크) 스테이푸트니크(Stayputnik, 주저 앉은 스푸트니크) 플롭니크(Flopnik, 뒤집힌 스푸트니크), 웁스니크(Oopsnik, 자빠진 스푸트니크), 더드니크(Dudnik. 불발탄 스푸트니크) 등 별의 별 조롱섞인 별명을 붙였다. 미국은 소련에게 대굴욕을 당한 것이기에 부들부들거리면서도 복수를 다짐했다. 그래서 미국은 다시금 뱅가드를 만들어서 TV3BU(백업) 발사 계획을 수립했지만 악천후와 기체 손상 때문에 발사일정이 지연되었다. 겨우 수리를 한 이후 1958년 2월 5일 2차 발사를 했지만, 이번에는 잘 날아가다가 [[https://www.youtube.com/watch?v=s945M9qfGvs|1분이 조금 안 되어 2단 로켓이 반으로 부러져서 다시 한 번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1958년 1월 31일 [[베르너 폰 브라운]]이 만든 육군의 [[익스플로러]] 1호가 발사에 성공했기에 그나마 약간의 체면은 세웠지만, 이미 세계최초 타이틀은 물건너간지 오래였고, 스푸트니크에 비해 매우 작았기 때문에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은 '''"(익스플로러가) 작은 오렌지만 하군!"'''이라며 비웃었다. 스푸트니크가 84kg 정도였던 데 반해, 익스플로러 1은 14kg 정도. 참고로 뱅가드 TV3과 TV3BU는 위성체 무게 1.36kg, 뱅가드 1은 1.47kg. 사실 미국이 진작 폰 브라운에게 일을 맡겼다면 몇 년 일찍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었다. 미국은 폰 브라운을 독일에서 데려오긴 했지만 이것은 소련이 폰 브라운 팀을 데려가지 못하도록 하는 목적이 컸고, 미국은 데려온 폰 브라운 팀을 미국 과학자들에게 V2 로켓을 설명하도록 한 후 그들을 로켓 개발에서 완전히 배제시켰었다. 그러다가 소련이 핵개발에 성공하고 소련과 중국이 개입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미국도 다급해져서 미사일이 필요했다. 하지만 폰 브라운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미국 과학자들의 로켓 개발은 너무나 더뎠고, 결국 한국 전쟁이 터진 직후 미국은 5년 동안 놀고 있던 폰 브라운에게 미사일 개발을 시켰다. 그러자 이미 머릿속에 로켓 개발만 생각하고 있던 폰 브라운은 2년여 만에 레드스톤 미사일을 개발을 완료하여 1953년부터 미 육군 탄도 미사일로 실전 배치되었고, 1956년 레드스톤 미사일의 출력을 소폭 개선한 형제 모델인 주피터-C 미사일을 실전배치했다. 그런 와중에 1955년 미국은 1957년 국제지구물리학관측년을 맞아 인공위성을 개발하겠다고 선언했고,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폰 브라운팀이 이미 실물 개발한 레드스톤 로켓은 기각시키면서 해군이 제안한 뱅가드를 채택했던 것. 하지만 육군의 레드스톤이 1953년 이미 실전배치가 된 물건임에 반해 해군의 뱅가드는 1955년 설계가 시작되었고 그마저도 레드스톤 추력의 1/3밖에 안되는 것이었다. 로켓을 2년 반 만에 개발된다는 것은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었고, 결국 [[스푸트니크 쇼크|소련에게 첫 인공위성 발사를 허용하자]] 뱅가드는 그간 테스트에서 한 번도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서 부랴부랴 발사를 시도했고, 실패는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뱅가드가 실패하자 미국은 결국 폰 브라운 팀이 이미 개발해서 실전 배치 중인 주피터-C 로켓을 가져와 여기에 실을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를 부랴부랴 한 달 만에 급조하여 발사하여 성공했던 것이다. 육군의 레드스톤이나 주피터-C 로켓은 이미 수 년 전에 개발된 것이었고, 익스플로러 1호를 발사한 주피터-C 로켓은 인공위성 발사용으로 제작된 것이 아니라 육군 병기창에 예비 미사일로 보관하고 있던 걸 그냥 꺼내와서 발사한 것이었다. 때문에 미국이 진작에 폰 브라운에게 기회를 줬다면 미국은 사실 1950년 이전에라도 인공위성을 쏘아올릴 수 있었다. 같은 해 3월 17일 세 번째 발사에서 뱅가드 TV4가 인공위성으로서 제 궤도에 올랐고, 이후 미국은 이 위성의 명칭을 뱅가드 1로 바꿨다. 이후 숫자는 성공한 위성에만 붙게 된다. 그러나 이미 주노 1 로켓이 1월 31일 익스플로러 1 인공위성을 궤도에 올려놓아서 미국 최초 타이틀도 따지 못했고, 따라서 명예 회복에는 실패했다. 순번으로 따지면 스푸트니크 1호, 스푸트니크 2호, 익스플로러 1호에 이은 '''네 번째 인공위성'''이니 명예로울 리 없다. 그리고 이후 4번 연속 실패하고 나서야 뱅가드 2가 성공한다. 총 11회 발사 중 성공한 것은 1(3회차), 2(8회차, 10.8kg), 3(11회차, 22.7kg) 뿐이다. 게다가 소련은 미국을 놀리기라도 하듯이 1958년 5월 15일에 1,327kg에 달하는 스푸트니크 3호를 쏘아올렸다. 때문에 이를 주도했던 당시 [[해군참모총장]] [[알레이 버크]] [[제독]]의 몇 안 되는 [[흑역사]]로 기록되어 있다. 사실 아는 사람이 적을 뿐 엄청난 기록을 가지고 있다. '''현재 지구궤도상에 있는 위성 중 가장 오래된 인공위성'''이다. 예상 수명은 무려 240년인데 그나마도 처음엔 2000년 이상 갈 것으로 예상됐으나 태양의 활동이 증가하면서 태양압[* [[태양풍]]과는 다른 현상이다.] 때문에 예상치보다 줄어든 것. 자체 신호 발신은 궤도진입 후 약 7년 정도 송신했다. 스푸트니크가 신호발신이 고작 3주 정도에 3달 만에 궤도를 벗어난 것을 생각하면 엄청난 수명이다. 그리고 훌륭한 [[우주쓰레기|우주파편]][* 송신능력도 없고 더 이상 임무수행을 하지 않으니 우주 파편으로 취급된다.]으로 다른 인공위성 발사에 장애물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발사된 후 6년 동안 많은 자료를 지구에 보냈는데, 그 덕에 [[지구]]가 완전한 공 모양이 아니라 [[적도]]면이 튀어나온 타원형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뱅가드, version=105, paragraph=3)] [[분류:인공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