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교권주의]][[분류:자유주의와 종교]] || [[파일:반교권주의.webp|width=400]] || || 종교적 권위와 가치를 비방하는 낙서. || [목차] [clearfix] == 개요 == {{{+2 Anti-clericalism}}} '''반교권주의(反敎權主義)'''또는 교권 반대주의는 [[교권주의|사회정치적 문제에 있어서 종교가 갖는 권위]]에 반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근대적인 반교권주의는 [[프랑스 혁명]]때 최초로 나타났으며 [[19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과 [[성직자]]들의 권위를 박탈하고 [[세속 국가]]를 만들려는 [[고전적 자유주의|자유주의]]~[[급진주의]]자들의 운동이 있었다. == 각국의 사례 == === [[프랑스]]에서 === 현 프랑스의 [[라이시테]] 또한 반교권주의의 산물이다. 첫 근대적 반교권주의의 사례는 [[프랑스 혁명]]기에 나타났는데 부패한 [[교회]]와 [[성직자]]들의 부유함에 대한 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프랑스 혁명기의 [[로베스피에르]]파도 반교권주의적 성향을 보였으나 [[최고 존재의 제전|이성신]]을 모욕하지 않는다면 예배의 자유 자체는 보장하자는 식이였던 반면에, [[에베르파]]는 [[귀족]]과 성직자들에 대한 증오와 폭력을 옹호했다. 또한 반교권주의가 프랑스 혁명의 주요한 목표가 되자 [[반동주의]] 세력들은 [[방데 전쟁]]에서 정권에 탄압받던 농민들을 꼬드겨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통치기에는 [[교황]] [[비오 6세]]가 반혁명, 반나폴레옹 세력인 [[프랑스 혁명 전쟁|제1차 대프랑스 동맹]]을 편들자 [[1796년]] [[이탈리아]]를 침공하기도 하였다. [[프랑스 제3공화국]] 시기에는 [[프랑스 정부|공화국 정부]]와 [[가톨릭교회]]가 갈등을 일으키면서 다시 [[반가톨릭]], 반교권 운동이 심화되었다. [[1880년대]]에는 [[프랑스]] [[파리(프랑스)|파리]]에서 반교권주의 국제모임이 결성되었고 여기에는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아나키스트]] 등 다양한 [[좌파]]들이 참가했다. 이에 영향받은 정부는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퇴출시키기도 했으며 [[1900년대]] 초에는 종교 집회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하기도 했다. 이것은 [[라이시테]]로 발전했으며, 이후 가톨릭 보수주의자들도 [[공화정]]과 [[세속주의]]를 받이들이기 시작하면서 반교권주의 운동은 점차 사그라든다. === [[독일]]에서 === 좌파가 반교권주의를 주도했던 프랑스와 달리 독일에서는 우파 정권인 [[프로이센 왕국|프로이센]]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총리가 [[1871년]]부터 [[1878년]]까지 "[[문화 투쟁]]"(Kulturkampf)을 일으켜 가톨릭교회의 법적, 제도적, 사회적 권위를 박탈하고 세력을 약화시키는 정책을 폈다. 또한 [[가톨릭 중앙당]]을 탄압하기도 했다. == 같이 보기 == * [[라이시테]] * [[급진주의(역사적)]] * [[반가톨릭주의]] * [[반종교]] * [[너의 운동]] - 폴란드의 반교권주의, 좌파 자유지상주의 정당 == 둘러보기 == [include(틀:자유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