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대한민국 공군 창설 간부 7인)] [include(틀:대한민국 역대 공군참모차장)] [목차] == 개요 == 朴範集 [[대한민국]]의 [[군인]]으로, 최종 계급은 [[소장(계급)|소장]]이다. 일본식 이름은 히가시바야시 마스노리 / 도바야시 마스노리(東林益範). == 생애 == [[1917년]] [[9월 7일]] [[함경남도]] [[신흥군]]에서 출생했다. [[1936년]] [[일본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939년]]부터 [[일본 육군]] 항공대에서 해방 때까지 복무하였다. 공군 창설간부 중 유일하게 조종사 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육군 항공기지부대 작전처장을 역임하면서 조종술을 배워 전투 조종사가 된 입지전적인 군인이다. [[1948년]] 4월에 [[조선경비대]] 보병학교에 입학하였고, 졸업한 뒤 [[대한민국 국군]]의 항공부대 창설을 [[최용덕]], [[김정렬(1917)|김정렬]], [[장덕창]], [[이근석]] 등과 함께 주도하였다 [[1949년]]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항공국장을 역임하여 [[대한민국 공군|공군]] 창설의 기반을 마련하였고 초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차장]][* 당시에는 참모부장.]을 역임하였다. [[6.25 전쟁]] 중이었던 [[1950년]] [[11월 12일]], [[함흥]] 지역 지휘비행 중 비행기 사고로 순직하였다. 이후 [[1957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장성급 장교 중 최초로 유해가 안장되었다. == 친일 == [[일본군]]에서 복무하다 최종 계급 [[소좌]]로 해방을 맞았는데, 그 이전 [[1943년]] [[9월 20일]], [[매일신보]]와의 인터뷰가 문제가 되었다. 박범집은 당시 인터뷰에서 [[일본군]] 항공장교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해 전사한 조선인들을 추모하면서, 패배는 동양인종이 [[미국]]과 [[영국]]의 노예가 되는 길이니, 승리를 위해 [[일본군]]에 입대할 것을 권유했다. 이 때문에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고 말았다. [[분류:6.25 전쟁/군인]][[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 공군참모차장]][[분류:1917년 출생]][[분류:1950년 사망]][[분류:신흥군 출신 인물]][[분류:항공사고로 죽은 인물]][[분류:국립서울현충원 안장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