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lude(틀:역대 바그라티온 왕조 군주)] ||<-3><#40E0D0> '''{{{#FFF 클라제티 공국 3대 공작}}}''' [br] {{{+2 {{{#FFF '''ბაგრატ | 바그라트 1세'''}}}}}} || ||<|3><#40E0D0> '''{{{#FFF 제호}}}''' ||<#40E0D0> '''[[한국어|{{{#FFF 한국어}}}]]''' ||바그라트 1세 || ||<#40E0D0> '''[[조지아어|{{{#FFF 조지아어}}}]]''' ||ბაგრატ || ||<#40E0D0> '''[[라틴어|{{{#FFF 라틴어}}}]]''' ||Bagrat I || ||<-2><#40E0D0> '''{{{#FFF 생몰 년도}}}''' ||미상 ~ 900년 || ||<|4><-2><#40E0D0> '''{{{#FFF 재위 기간}}}''' ||889년 ~ 900년 || [목차] [clearfix] == 개요 == 클라제티 공국 3대 공작. == 생애 == 클라제티 공국 초대 공작 [[숨바트 1세(클라제티)|숨바트 1세]]의 아들로, 889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형 [[다비트 1세(클라제티)|다비트 1세]]와 함께 클라제티를 분할했다. 다비트 1세는 아자라와 니갈리를 맡았고, 클라제티 본토는 그가 맡았다. 그는 891년 이베리아 왕 [[아다르나세]]와 타오 제2대 공작 [[구르겐 1세(타오)|구르겐 1세]]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아다르나세를 지원해 승리에 일조했다. 그에게는 3명의 아들 아다르나세, 구르겐, 아쇼트가 있었다. [[콘스탄티노스 7세]]의 기록에 따르면 900년 그가 사망했을 때 아다르나세, 구르겐, 아쇼트가 아버지의 영지를 3개로 나눠가졌다. 그러다 구르겐이 곧 죽자, 아쇼트는 구르겐이 가지고 있던 클라제티의 무역도시 아르타누지를 자기 것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쇼트의 딸과 결혼했던 타오 공작 [[구르겐 2세]]가 아르타누지에 눈독을 들이자, 아쇼트는 동로마 제국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그 대가로 도시를 제국에 넘기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로마노스 1세]] 황제는 콘스탄스에게 칼디아 군대를 맡겨 아르타누지를 점거하게 했다. 졸지에 도시를 잃게 된 것에 분노한 다른 조지아 왕자들이 당장 아르타누지를 돌려주지 않으면 아랍인들과 손을 잡겠다고 위협했고, 로마노스 1세는 아랍과의 전쟁에서 조지아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계획을 취소했다. 그 후 구르겐 2세는 아르타누지를 점령하고 장인에게 자파케티 서부와 안자라를 명목상 영지로 삼게 했다. 그 후 아쇼트는 구르겐 2세의 궁정에서 조용히 지내다 사망했다. 한편 바그라트 1세의 장남 아다르나세 역시 구르겐 2세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삼촌 다비트 1세에게 영지를 내준 뒤 [[수도자]]로 살았다. [[콘스탄티노스 7세]]의 기록에 따르면, 바그라트 1세에겐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딸이 있었는데 형 다비트 1세의 아들 [[숨바트 2세]]와 결혼했다고 한다. [[분류:바그라티온 가문]][[분류:900년 사망]]